세상을 바라보는 세 가지 믿음
<도식, 동화와 조절>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경험을 접하며 자신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도식(schema)이라고 부릅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곧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타인을,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가 결정되는 거죠.
바라보는 방식, 관점이란 달리 말하면 내가 어떤 믿음, 신념을 갖고 있느냐와 같습니다. 세상은 어떤 구조로 돌아가고 있고, 타인은 내게 있어 어떤 존재이며,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지에 따라서 당연히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지도 결정됩니다. 신념은 내가 무엇을 가치로 삼을지에 영향을 주고, 그게 바로 '가치관',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그에 맞춰 에너지를 쏟을지를 결정합니다.
도식은 삶의 전반에서 수정과 보완을 끊임없이 처리하며 견고해집니다. 이 수정과 보완은 '동화'와 '조절'이라는 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동화'는 쉽게 설명하면 내가 갖고 있는 상자에 새로운 물건을 집어넣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떤 아이가 '네 발로 기어서 움직이는 건 강아지다'라는 걸 배웠다고 해봅시다. 아이는 '네 발 = 강아지'라는 분류 상자를 얻게 된 거예요. 이후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걸 볼 때면 그게 무엇이든 모두 이 상자에 넣습니다. 죄다 강아지라고 부르는 거죠. 제 친구의 세 살 베기 아들은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자기 동생을 강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기억이 납니다.
'조절'은 내가 갖고 있던 상자의 분류를 좀 더 세분화하거나 변경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명문 고등학교에서 1년을 생활하고, 2학년이 되면서 부모님의 전근으로 지방의 작은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됩니다. 새로 간 고등학교는 이전의 학교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명문 고등학교에서는 경쟁적이고, 공부에 매진하느라 다른 활동은 뒷선으로 밀렸었다면 지금 학교에서는 같은 학급은 물론이고 전교의 학생들이 서로 사이가 좋고, 부활동이나 단체 활동으로 끈끈한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고등학생이라면 수능 준비에 전념하며 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곧 올바르고 좋은 학생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이 아이는 새로운 학교에서 자신의 상자에 붙은 분류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꼭 그게 전부는 아니구나'라는 걸 받아들이며 자신의 신념 체계를 환경에 맞춰 조절하는 거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동화와 조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세상 최고의 가치는 돈이다'라는 도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이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 어떤 경험을 하든 돈이 최고의 가치인 이유로서 경험합니다. 동화 작업을 하는 거죠.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는 엮이지 않으려 하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받은 만큼만 일하고, 받은 만큼만 되돌려 줍니다. 때론 받은 만큼 돌려주지도 않을 수 있어요. 그래야 내 수중에 남는 게 더 많아지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게 돈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걸 경험하는 순간 충격을 받게 됩니다. 난 받은 만큼 일했을 뿐인데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딱히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이 굉장히 즐거웠다는 등 자신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는 거죠. 그러면서 '내가 믿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며 이 사람의 도식에서 조절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주 단적으로 예시를 들은 거라 학문적인 개념 설명에서 다소 비약이 있긴 합니다만, 우리는 이렇게 신념과 가치를 계속 검증하고 점검하며,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살아갑니다. 자신이 갖고 태어난, 타고난 심리적 특성과 외부 환경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타인을, 자신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이 세 가지 믿음에 관한 질문을 '인지 삼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지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 의제'라는 의미죠. 인지 삼제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삶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공원처럼 평화로울지 아니면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굽이치는 바다처럼 험난할지가, 어떤 인지적 신념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문장들의 빈칸을 채워보세요.
"이 세상은 __________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다."
"세상은 __________ 해야만 한다/하길 바란다."
"타인은 내게 있어 __________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이 __________ 해야만 한다/하길 바란다."
"나는 __________ 한 사람이다."
"나는 __________ 해야만 한다/하길 바란다."
이 정도의 간단한 질문으로 여러분의 세 가지 신념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신념이란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 마음 아주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질문들로 자주 떠올리는 생각은 어렴풋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떠올리는 생각이 주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신념을 거쳐 생겨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죠. 자신의 신념을 잠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신념이, 심리적 건강과 안정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이라는 배에 불어오는 순풍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