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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철학자 May 19. 2023

트롤리 딜레마

한달한권 문철환콜 프로젝트 그 열 번째 이야기 <누구를 구할 것인가>

    우선 그동안 저의 글에 애정을 가져와 주셨던 적지 않은 분들께 학기 중 한달한권에 대한 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 만큼, 이번 글은 저의 강점인 철학과 보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그중에서도 우리의 윤리관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인 <누구를 구할 것인가?>를 대상으로 선택하여 색다른 방식으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은 우리가 흔히 '트롤리 딜레마'라고 알고 있는 멈출 수 없는 기차와 두 갈래의 길, 그리고 일하고 있는 인부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마이클 센델의 강연 등을 유튜브나 릴스 등으로 접한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특히, 이번에는 책의 내용을 저 혼자 곱씹어 본 것이 아닌 철학을 좋아하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한 내용을 일종의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보았으니 천천히 읽어보시면서 딜레마에 대한 생각이 여러분들과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떤 점은 유사한지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


    편의상 두 인물을 A와 B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질문 1. 당신이 기관차 조작수라면 기존 방향 5명을 죽이는 상황이고, 레일을 바꾸면 한 명을 죽이게 된다. 핸들을 조작하겠는가?


A는 일반적인 감정에 있어서는 한 명을 죽이는 것이 5명을 죽이는 일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B도 이에 대해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면서, 결과주의에 따르면 k5보다 k1이 당연히 나은 일이 아니겠냐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과정의 정당화 측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토론 내용이 심화되었습니다.  

A는 '적극적인 의무 위반 vs 소극적인 의무 위반'의 두 가지를 구분하며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B도 어쩌면 핸들을 돌리는 행위가 적극적인 행동의 개입을 뜻할지도 모른다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어쩌면 핸들을 돌리는 행위가 원래의 상황에 연관성이 없는 사람을 비극적인 상황에 끌어드리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는 핸들을 돌리는 것에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핸들을 돌리는 행위가 5명을 위한 다기 보다 운전자의 마음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행위에 가까운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이에 B도 어쩌면 5명을 살리려는 고귀한 뜻보다는 일종의 책임회피적인 측면으로도 고려할 수 있다는 지점에 있어서는 동의하였습니다.  

A는, 다시 돌아와서 만약 원래 행선지에 25명이 일하고 있고 비상 철로에 한 명이 일하고 있다면 무조건 핸들을 틀지 않겠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5명 1명도 똑같은 논리로서 방향을 트는 행위가 인간적으로 비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1-1) 만약 비상 철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나와 관계된 사람이라면?

B는 이에 대해서 핸들 돌리지 않고 부도덕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되면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A 또한 동의하면서 어떠한 윤리적 원칙이나 공리주의보다 결국 급박한 상황에서는 나의 가장 내밀한 감정에 치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A, B 모두 비슷한 상황에서 챗 gpt 등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는 것은 오히려 그것 자체로 책임회피이며 또 어차피 인공지능도 답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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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그렇다면 당신이 구경꾼이다. 다리 위에 (뚱뚱한) 사람이 있는데 밀면 기차를 멈출 수 있다. 당신은 밀 것인가?

A, B는 이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인간의 심성이라면 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미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B는 이에 대해 마음 편함의 문제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핸들을 돌리는 것과 사람을 직접 밀어 떨어뜨리는 것에는 심리적인 압박감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A도 전체적인 이유의 맥락에 대해 동의하면서 총이랑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느낌이 다르지 않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행위에 있어서 도구의 사용여부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했습니다.  

B도 도구 사용의 영향력에 동의하면서도 접촉과 관련된 행위에 있어서의 거리의 측면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내가 영향을 미치는 대상 인물과의 물리적 거리가 나의 심리 (죄책감 등)에 파동의 차이를 일으키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미는 것과 핸들을 돌리는 것에 경향성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2-1) 내가 떨어져서 기차를 살릴 수 있다면 할 것인가?

A는 이에 대해서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만약 큰 뜻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기꺼이 희생한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의 행위에 대해 비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B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자살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살을 한 사람의 주변 사람들에게 멈출 수 없는 슬픔의 굴레를 맛보게 할 것이라는 지점에서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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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건강한 사람 한 명의 장기를 적출하여 생명이 위급한 5명을 살리는 건에 대해서는?

A와 B 모두 이 사례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우선 A는 이 건에 대해서 다른 5명의 생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수단화하여 부품처럼 빼내서 사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B도 이 지점에 대해 동의하면서, 멀쩡한 사람의 장기를 빼내는 것은 멈출 수 없는 기차에서 핸들을 돌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지점이 다른지에 대해서 A는 경향의 측면에서 기차선로에 있던 6명은 어찌 보면 같은 확률로 죽음 앞에 놓인 상황이었지만, 장기 적출의 사례에서의 한 명은 전혀 죽음에 가깝지 않던 상황에서 죽음을 앞둔 다른 5명을 위해 의도적으로 살해당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B도 이에 대해 동의하면서, 또 앞선 다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핸들을 돌리는 것과 달리 장기를 적출하는 행위는 인간의 몸에 칼을 들이대는 물리적 거리도 적고, 직접적인 살인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적 감정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A, B는 장기적출을 절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 그것의 악용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그 행위를 원천 차단해야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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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생명을 다루는 논의는 생각보다 그 정답이 우리의 보편적인 이성과 감정에 따라 쉽게 결정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점을 느끼셨나요? 아니면 기존의 여러분들의 윤리관이 더 강화되셨나요?


저는 이번 시간을 통하여 고장 난 기차 운전사가 선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딜레마에서 출발하여, 그에 따라 파생되어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이번 문철환콜은 '혼자'가 아닌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윤리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같이 이야기를 하니 생각과 논의의 깊이가 한층 더 깊어질 수 있었다고도 생각합니다.


...


그리고, 그 열정이 여러분들의 삶 속 여러 가지 갈림길에서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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