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터지게 느림과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름의 차이
안경점에 갔다.
내 시력에 맞는 안경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호주에서는 2주가 넘는 시간이 걸렸고, 한국에서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호주는 느림은 선택적이고 차별적이다.
외노자인 내가 일을 할 때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길 바라면서도 내가 손님이 되었을 때는 그들의
여유로운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 모두에게 느림이
허용되는 이곳에서 우리 이방인들은 마치 다른 우주에 있어서 시간의 흐름이 다른 사람들 같다.
그래서인가, 한국에선 30분이면 끝날 일도 2주 길게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할 때에는 '그래, 호주가 그렇지 뭐 답답하면 한국 가서 살아야지' 하면서도 묘하게
억울한 감정도 든다.
한국의 빠름도 선택적이고 차별적이다.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러 갔을 때,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호주에서 처럼 직원이 포장해줄 때까지 호주에서처럼 잠자코 기다렸는데, 세명의 직원 중 아무도 내 케이크를 포장하지 않았고 늦게 주문한 사람들 걸 먼저 포장해주었다.
30분쯤 기다렸을 때 비로소 아, 한국은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원에게 ‘키오스크로 주문했으니 빨리 포장해주시오’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직원을 재촉하지 않으면 직원은 내가 주문을 했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아마 대부분의 손님들이 주문 후 직원에게 빨리 좀 달라고 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코 순서를 기다리는 게 기본 매너인 호주와는 달리 가만히 있으면 직원에게 ‘왜 주문하시고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라는 소리를 듣는, 얌전히 기다렸다고 핀잔받는 대한민국이다.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나라와 그러면 바보가 되는 나라. 극단적으로 다른 이 두 나라의 속도 차이는
서비스 업종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 3년 만에 입국하게 되었는데, 공항에서 부터 느꼈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와이파이, 인터넷 속도 차이였다. 한국 인터넷 빠른 건 알고 있었지만 호주 인터넷에 어느덧 적응해서 이것도 쓸만하네 싶었는데, 오랜만에 한국의 속도를 체감해 보니 이때까지 이 느린 인터넷 속도를 어떻게 써왔나 싶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려고 뉴스를 클릭했는데, 0.1초 만에 화면이 바뀌어서 당황스러웠다.
카카오톡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낼 때도, 호주에서는 몇 번의 전송 실패 후에 겨우겨우 전송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5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카페 와이파이도 마찬가지이다. 공짜 와이파이 주제에 속도가 왜 이렇게 빠른 건지, 동영상을 재생하면 끊길 일이 없다. 반면에 호주는... 호주의 와이파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라의 빠른 속도에 자랑스러우면서도, 호주에 돌아가서 다시 느린 속도에 어떻게 적응하나 막막했다.
오죽했으면, 한국 IT업계에서 제발 호주에 사는 불쌍한 한인들을 위해 인터넷 망을 발전시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택배 시스템이다.
호주는 땅이 넓고 한국은 좁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모 회사의 로켓 배송 시스템은 빠름 그 이상이다.
저녁 늦게 주문한 물건이 다음날 아침에 온다는 것.
더 이상 배송시간 때문에 인터넷 쇼핑을 망설일 필요가 없어진 대한민국과는 다르게 호주는 여전히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내가 뭔가 주문했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 즈음 배송이 온다. 3년 만에 한국에서 느낀 택배의 빠름에 감탄하면서도, 한국의 택배 노동자들은 참 힘들겠다 싶었다. 어쩌면 이 빠른 택배는 배송기사들의 수명을 갈아 넣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은 살기 참 팍팍한 나라인 것도 맞고, 호주는 비교적 살기 좋은 나라인 건 인정하지만, 시스템의 편의성에 있어서는 한국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
뭐, 불편하고 억울하면 한국 가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