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니스트의 파리에서 길을 잃다

어니스트의 파리에서 길을 잃다


아직 가을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파리는, 처음 발을 디뎠던 그날처럼 아무리 종종거리며 돌아다녀도 여전히 멜랑꼴리 하다.  

“젠장, 이게 파리인가 보다.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파리의 기억은 어니스트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처럼 어느 초겨울의 저녁 무렵에서 시작되었다.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에 어렵게 찾았던 파리는, 비록 냉랭하기는 하였지만, 가난한 작가 시절의 어니스트의 파리처럼 마냥 좋았다. 그날의 기억이 남겨진 것에는 어니스트의 문장들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날 파리의 거리에서 만난 낙엽은 어니스트의 뒷모습을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외투 깃을 올려 세우고 걸어가는 어니스트의 발아래에서는 생기 잃은 낙엽이 기복 심하고 떨림 깊은 마지막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다.

"두고 보라고, 너는 언젠가, 되고 싶은 것과 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거니까."   


***   ***     


여느 해의 이맘때처럼 추적추적하고 을씨년스러워서, 심술궂고 고약하게만 느껴지는 파리의 겨울이 다시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다. 가을이 저물어 가는 파리의 저녁은 겨우 몇 걸음 딛는 동안에 어두워진다.


싸구려 술집의 알코올에 비틀거리는, 어쩌면 헛디뎠던 삶의 걸음을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초로의 남정네 같은 진회색의 바람이 금세라도 불쑥 들이닥칠 것만 같은,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문을 꼭꼭 걸어 닫아야만 하는 파리의 겨울이 바로 창밖까지 다가온 것이다.       


온종일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샹젤리제의 보도 한가운데에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에뚜와 광장에서 불어온 바람이 줄 맞춰 늘어선 가로수들의 겉옷을 벗겨내고 있었고, 보도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저녁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듯 사람들의 발걸음 속으로 이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속살까지 파고든 냉기에도 걸음을 재촉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파리의 시간은, 그것이 비록 잠시일 뿐이라고 해도, 자꾸 무언가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기미조차 가물가물한 것을 찾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헛된 손짓일 뿐이지."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허공을 휘젓게 되는 것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이게 파리인가 보다. 괜히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정답 없는 질문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게 만드는 것도 파리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치열했고,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   ***     


제법 한참을 걷고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미 도착했어야 할 숙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검은 어둠이 네모난 건물들이며 지나는 이들을 검뿌연 실루엣에 가두었다.

저기 좁은 골목 안 구석에서 취기 오른 남정네들의 허허한 기운이 불그레하게 번져 오르고 있다. 허름한 카페들이 구석구석 박혀있는 골목 모퉁이는 술꾼들의 허풍으로 왁자지껄 붐비고 있다.  

"파리의 어둠에 갇히면, 술에 취하지 않더라도, 담배를 빨아대지 않더라도, 환영을 만날 수가 있지."   


지난 어느 날의 내가 어느 젊은 날의 어니스트와, 깊어가는 초겨울 밤의 파리의 뒷골목을 비틀거리며 돌아다닌다. 이 술집 저 술집의 낡아 빠진 문을 성지순례에 나선 순례자들처럼 진지하게 눈을 반짝이며 밀어젖힌다. 채 한 블록이 떨어지지 않은 샹젤리제에서는 사람보다 더 느리게 굴러가는 자동차들이 싸구려 담배연기보다 독한 배기가스를 거나하게 토해내고 있다.   

"결국 지난 시간 동안 뱉어낸 것은, 편향된 삶의 기호들은 아니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이방 파리지앵의 영혼의 쉼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