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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이방 파리지앵의 영혼의 쉼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이방 파리지앵의 영혼의 쉼터

리는 날마다 축제, 파리의 책방 세익


"누군가에겐 지난 일들을 돌아보는 것이 채 아물지 않은 생채기를 더듬는 것 같이 쓰라린 일일 수 있다."   

   

젊은 날은 아름답긴 하지만 배가 고픈 시절이었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먹음직한 음식은커녕 제대로 넉넉하게 채우거나 책 한 권 편하게 살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삶에서의 궁핍은 자잘한 궁리를 만들어내게 만들었다. 헌책방의 선반을 뒤지던 마른 손과 함바집을 찾아다니던 종종걸음은 삶의 허기와 영혼의 허기를 어떻게든 달래주곤 했다.  


젊은 날의 허기는 육체뿐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곤혹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식당의 환풍구에서 뿜어내는 음식냄새를 참기 힘든 것만큼이나 서점 문틈으로 번져 나오는 활자의 향기를 견디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기에 차선이나 그다음의 차선을 최선으로 삼아야만 했던 그것들이 이제와서는 인생길에 잔뜩 늘어놓은 낭만의 오브제가 되고 있으니, 사람의 인생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로를 걸어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젊은 시절의 궁핍이 낭만의 모습으로만 기억되어 있는지’를 물어온다면, 금방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는 자신할 수 없다. 때때로 젊은 날의 낭만은, 우중충해진 기억을 솔질로 살살 벗겨내다 보면 희끄무레한 표면이 드러나게 되는, 장식이며 틈새에 낀 때를 조각 천으로 하나하나 닦아내다 보면 색깔이며 윤곽을 알 수 있게 되는, 그렇지만 그것조차도 오롯한 그것이 아닐 수 있는, 가면을 쓴 궁핍의 페르소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어 배가 고픈 것은 하루도 견디기 힘든 서러운 일이지만 젊은 날의 허기는 며칠 정도는 그냥 참아낼 만한 '고역스러운 일' 정도로 여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   ***     


파리에선 빵 냄새를 맡는 것과 버터 냄새를 맡는 것이, 저녁밥을 거른 채 술을 마신 귀갓길에 누군가의 집에서 뿜어지고 있는 해장국 냄새를 맡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럴 때면 젊은 날의 그의 파리와 젊은 날의 나의 파리가 말릴 새도 없이 뒤죽박죽 엉켜 붙었다. 파리에선 그런 일 따위는 애써 말리고 싶지도 않았고 말려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젊은 날이란 배가 고프긴 하지만 어떻게든 책은 읽어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예술의 다리며 퐁 네프를 지나, 생 루이 섬 건너편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올려다보며 센강의 강변을 걷다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활자를 더듬는 것은 파리의 행복한 일상이었다.


강변에 늘어선 노점 책방에서는 어니스트의 발길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오래된 낡은 책들이 생의 끝물을 흘려보내고 있는 노인네처럼 낮 빛에 졸고 있었다. 피식 입 꼬리가 늘어났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안쓰러움이 일으킨 마음의 경련이었다. 

     

센강변에서 헌책을 팔고 있는 책방

책방 주인의 느릿한 움직임과 느긋한 눈길을 보고 있자면, 책방 선반에 늘려 있는 것은 책이 아니라 세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게 된다.  


***   ***     


헌책방은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마법의 성 같은 곳이기도 하였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한 나절을 뒤진다 해도 싼 값에 손에 쥘 수 읽는 책을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간혹 주머니 사정에 맞아떨어지는 꼭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집어드는 날이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던 지난 몇 날들의 수고가 결국에는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며 여러 날과 밤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겨울이면 긴 연통을 목줄처럼 달고 있는 연탄난로 가에서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여학생의 하얀 얼굴을 훔쳐다 보는 날에는, 말 한 번 건네 본 적 없었기에 그녀가 누군지는 몰랐어도, 그곳에선 괜한 작업질 따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어떤 암시적인 규칙이 있는 것 같았기에, 멜로영화 속의 한 장면과도 같고, 너무 뻔해서 통속의 주술과도 같은 레퍼토리의 상상 속으로 혼자 빠져들곤 하였다.     


언젠가 강변길을 같이 걷던 날 어니스트가 얘길 했다.    

  

“오데옹 거리 12번지(12 rue de l'Odéon)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라는 책방을 종종 들리곤 해. 원래 1919년 11월 19일에 듀푸이트렌 거리 8번지(8 rue Dupuytren)에서 미국인인 실비아 비치(Sylvia Beach)가 오픈하였다는데 192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더군. 지난번에 책방 주인인 실비아를 만났더니 돈을 내지 않고 맘껏 책을 빌려가도 좋다기에 나이를 잊은 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마터면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뻐 날뛸 뻔했지 뭐야.”   

파리의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내부

실내 공간이 좁고 선반의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책들이 가득 차 있어서 몸을 움직이기가 편치 않는 곳이다. 시간을 갖고 선반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차림새며 가방이 가벼워야 할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는 지나는 이와 머무는 이가 자칫 어깨를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서로 간에 배려가 필요하다. 여차저차한 이런 사정들이 젊은 날에 뒤적이든 헌책방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을 찍은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흐리고 쌀쌀한 날씨 덕분이었을 것이다. 평소와는 달리 여유롭게 이 책 저책을 뒤져볼 수 있었던 것은.  

     

***   ***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7.21 - 1961.7.2)는 내가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옆구리에 끼고 파리를 찾기 아주 한 참 전에, 그의 나이 스물둘이었던 1921년부터 스물아홉이었던 1928년까지 첫 부인인 헤들라와 파리의 하늘 아래에서 곤궁하지만 싱싱하고 아름답게, 파리지앵과 파리지앤느로 살았었다. 그의 이름으로 발간된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어니스트가 세상을 떠나기 네 해 전인 1957년의 가을부터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60년의 봄 사이에, 파리에서 살았던 푸르렀던 날의 추억을 옮겨 적은 책이다.           


어니스트가 단골로 드나들었던 오데옹 거리에 있는 실비아 비치의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파리가 독일의 치하에 있을 때 폐점하였다. 

그 후 십여 년이 지난 1951년에 또 다른 미국인 조지 위트먼(George Whitman)이 노트르담 성당이 바라다 보이는 센 강 건너의 생 미셸 광장 근처(37 rue de la Bûcherie, in the 5th arrondissement)에 [르 미스트럴](Le Mistral)이란 이름의 책방을 오픈하였고, 그 후 13년이 지난 1964년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책방의 창업자였던 실비라 비치를 기리는 의미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개명하면서 현재까지 책방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어니스트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나오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와 현재 노트르담대성당이 보이는 센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책방의 이름만이 같을 뿐이지 장소도 다르고 창업자도 다르지만, 파리를 들를 때면 꼭 찾게 되는, 파리라는 별을 찾은 이방 파리지앵의 영혼의 쉼터와도 같은 곳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따라 흐르는 센강 건너편에 있는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외부 모습

실내가 좁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 끊이질 않아 분잡하고 산만한 느낌을 받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쌀쌀하고 우중충한 날에 찾게 된다면, 책방의 안과 밖을 느긋하게 둘러볼 있다. 책방의 선반에는 프랑스어로 출간된 책들뿐만이 아니라 영어로 출간된 책들도 함께 꽂혀 있어,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쯤은 간혹 길어 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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