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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뜨, 이방 파리지앵의 섬

몽마르트르, 이방 파리지앵의 섬

                    

몽마르트르(Montmartre, 몽마르뜨)를 오르면서 나 자신에게 화를 내었다. 그것은 갑자기 밀려든 심한 모멸감 때문이었다. 사실 화가 났기 때문에 모멸감이 든 것인지, 모멸감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몽마르트르에서는 화가 나는 것과 모멸감이 드는 것을 따로 떼어내어 느끼기는 어려웠다. 나의 감각이 생각했던 것보다 몹시 무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화가 난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화를 낸 직접적인 원인은 '내려두지 못하는 집착'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것들에게 집착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들을 향한 집착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고, 다른 모든 이들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면서 살아왔다. 세상이란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대상이었고, 그래야만 쟁취할 수 있게 된다고, 집착은 나의 바로 옆에 서서 달콤하게 속삭여 왔다.  

  

살아가는 것은,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 것을 파리의 낮은 언덕 몽마르트르를 오르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기에 화가 난 것이고,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기에 심한 모멸감을 받게 된 것이다.  


세상은 어쩌면 나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세상은 어느 누구와도 맞추려 하지 않는 완고한 늙은이와도 같은 곳이다. 세상에 맞출 것인가 나에게 맞출 것인가.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괜한 집착이 파리의 이 낮은 언덕에선 질기게 물고 늘어져야만 하는 또 다른 집착이 되었다. 그래서 화가 더 났고 모멸감이 점점 더 심해지게 되었다.


*** ***   


가야 할 방향만을 대충 살피고서는 지도 한 장의 안내에 따라 제법 멀리까지 걸어왔다. 별의 광장에서 여기까진, 걷지 못할 만큼은 아니라도 해도 그리 녹록지 않은 길이다. 게다가 발길 가고 눈길 이끄는 대로 둘러둘러 걸었으니 예정보다 더 먼 길이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볍게 꾸려 나섰다고는 하지만 멀어진 길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법이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고, 여기서 숨 한번 크게 고르면 된다고, 파리지앵인지 파리지앤느인지 지나는 그이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저기 언덕 위에 하얀 구름 덩이를 날렵하게 깎아놓은 것 같은 비잔틴 양식의 성전이 솟아 있다. 샤쿠르퀘레 대성당이 몽마르트르의 꼭대기에 걸터앉아 도도하게 파리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인간의 세상과는 거리를 두려는 듯 햇살을 산란시키고 있는 저 성전은 '여기가 파리 순례의 종점'이라고 눈부시게 말하고 있다. 그래도 곁에 다가가면 와락 안아줄 것 같다.


***   ***


돌계단과 경사로를 따라 파리의 낮은 언덕을 한발 한발 기어오른다. 아무리 낮아도 언덕은 언덕이다. 정상에 이르러서야 평온해진 몸뚱이는 성전 바로 아래 돌계단에 주저앉아 짧지만 긴 사유에 빠진다. 가빠졌던 호흡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샤크레퀘르 대성당은 파리라는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섬마을 몽마르트르의 언덕 꼭대기에 꽂아 놓은 하얀 등대 같다." 

    

몽마르트르에서 바라보는 파리는 호수만큼이나 바다의 내해만큼이나 넓고 평평하다.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그 풍경에 누군가 파리를 담은 풍경화가를 한가득 그려 넣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 위에서는 별빛이 총총하게 어른거린다.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 박혀 있는 별을 헤아린다. 몽마르트르의 낮하늘에 별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떠나올 때 별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가만히 보면 몽마르트르는 이방 여행자에게 쉽사리 자신을 허락하는 듯하다. 하긴 이런 것쯤이야 별것도 아닐 수 있다. 언덕을 조금만 내려가면 물랑루주의 붉은 풍차가 그 화려한 속살을 부끄럼 하나 없이 활짝 드러내고 있으니.


 몽마르트르에서 굽어보는 파리는 에펠탑에서 바라보는 파리와는 사뭇 다르다. 에펠탑의 파리는 이방인에게 각을 세우려는 듯 날카롭게 느껴지지만, 몽마르트르에서 바라보는 파리는 모든 것을 다 안아줄 듯,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몽마르트르에 오른 이방인은 철없는 아이처럼 한 없이 여려진다. 파리를 내려다보는 것은 몽마르트르일 뿐이지 이방인은 결코 파리를 내려다보지 못한다.   

"몽마르트르는 파리를 바라보게 할 뿐이지 결코 내려다보게 만들지는 않는다."


***   ***


파리를 돌아 몽마르트르를 기어오른 바람이 이방 여행자의 여정에 끼어든다. 일단 이 언덕에 올라서면 괜한 간섭이 성가시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입술을 들썩거려 표현하자니 왠지 뭣해질 것만 같은 묘한 매력이라니"

“금세 다가설 것 같은데 막상은 배척할 것 같기도 해서 자꾸 주변을 맴돌게 만드는 알 수 없는 매력이라니"


몽마르트르에 올라서도 행여 외떨어진 느낌을 지워버리지 못한 이가 있다면, 어쩌면 그이는 진정한 이방 파리지앵가 된 것일 수 있다. 나직한 언덕에서 바라보는 파리는 이방 여행자의 가슴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 몇 모금 호흡을 고르자 유화 물감을 잔뜩 이겨 바른 파리가 캔버스에 가득 차오른다.

돌계단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는다. 지금이 언제인지 시간을 잊는다. 지금이 어디인지 계절을 지운다. 몽마르트르에서 바라보는 파리는 이미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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