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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행복의 도시, 헤세의 피렌체

두고 온 행복의 도시, 헤세의 피렌체


아무리 손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어도, 꼬깃꼬깃하게나마 걸려드는 천 원짜리 한두 장조차 찾기 힘들었던 곤궁했던 시절, 헌책방들을 전전하며 건져 올린 텍스트들로 허기진 영혼을 채울 수 있었다. 그것들은 구멍 난 두레박으로 힘겹게 길어 올린 몇 모금의 우물물이었다.


들길에 박혀 있는 돌부리처럼, 텍스트를 따라가던 눈길을 걸고넘어지던 어색한 문장들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오타들로 인해 적지 않은 실망감을 맛볼게 될 때도 있었지만, 그 책들은, 나의 삶에 있어서 어떻게든 나름의 역할을 하려 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역자의 다소 어설픈 번역은, 좋게 보자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읽는 이를 단련시키는 아주 값싼 도구일 뿐이었다. 싼 값에 얻은 것은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든다고 얘길 하지만 그 도구들은,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운이 좋은 덕분일 수도 있기에 그것에게 ‘행운’이라는 표식을 달아주어도 어색 치는 않을 것이다.  


젊은 날의 곤궁은 어떤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거나 바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세상을 향해 난 주술의 창’이다. 긍정과 비관은 '구름 없는 하늘'과 '구름 낀 하늘'과도 같아서 수시로 모습을 바꾸고 갑자기 끼어들어, 바람이 이리저리로 방향 없이 불어오고 불어가듯 사람을 변덕스럽게 만드는 주술이다. 그 주술에 걸려들게 되는 것은 다른 이들 누구나가 그랬던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긍정이라는 창 앞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서성이면서 그 시간을 어떻게든 견뎌내려 하였다.  


헌책방에서 건져 올린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교 도서관의 서고에서 빌릴 수 있었던 평론이나 원전을 통해, 작가와 작품에 대해 좀 더 많은 지식을 갖췄어야만 했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어색한 텍스트를 만날 때면 앞뒤 문맥을 살피며 재해석하거나, 원문을 찾아 번역하도록 하는 수고 정도는 아끼지 말아야 했다.


그 덕분에 손에 잡았던 작품마다 내용에서뿐만이 아니라 작가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을 대체로 온전하게 들이켤 수 있었으니, 적어도 나에게 있어 결핍은 청춘의 곤궁함을 보완시켜 주는 '지적 보충제'였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오직 긍정의 창을 열고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인 자가 섭취할 수 있는 강력하지만 사람을 가리는 까다로운 보충제였을 것이다.   

      

헤세의 시 <북쪽에서>에 대해서도 의역이나 재해석이 다소 가해졌다고 한들, 헤세의 작품 대부분을 읽고 이해하고자 노력하였고, 헤세학회에서 나온 각종 연구논문집들과, 헤세와 관련된 많은 기고문들을 통해 이미 헤세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의 머리와 손이 닿은 것이니, 그런 행위가 피렌체에 대한 헤세의 낭만에 어떤 부정적인 변이를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북쪽에서>에서 말하고 있는 ‘기다리고 있는 행복’에 대한 믿음은 피렌체에서 헤세가 느꼈던 행복에 대한 믿음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오직 헤세의 것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피렌체라는 지명을 떠올리게 되면, 피렌체로 가는 길에서 여행자의 가슴은, 파담 파담, 파리의 작은 참새 에디뜨 피아프가 부르는 노래 같이, 행복한 설렘이 주는 신비로운 떨림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피렌체를 떠날 때면 누구나 헤세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행복 몇 개쯤은 피렌체 어딘가에 남겨두게 된다. 인간은 ‘뒤돌아보기’에 능한 존재이다. 그것은 뒤돌아 보게 만드는 ‘두고 온 그것’이 그 자리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복의 모습으로 남겨져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뒤돌아봄으로 인해 인간은, 가슴을 적시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피렌체는 미처 다 못 누린 행복을 남겨두게 만드는, 그래서 아련한 그리움이 그 이름에 스며들어 있는 도시이다. 그 ‘두고 온 행복’을, 언젠간 다시 찾을 피렌체의 골목에서, 열여덟의 피 끓는 괴테가 열일곱의 아리따운 베아트리체를 다시 마주치듯이, 문득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는 살아가면서 누리게 될 행복한 상상이 된다.

         

행복해진다는 것 / 헤르만 헤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

하지만 그 온갖 도덕과 계명 아래에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이다


인간은 선을 행할 때 누구나 행복에 이르고

사랑을 하며 마음속에 조화를 찾을 때

스스로 행복해한다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이며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다

예수님께서도 부처님께서도

공자님께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모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의 사랑하는 능력이다     


보리죽을 떠먹든지 맛있는 빵을 먹든지

누더기를 걸치든지 보석을 휘감든지 간에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이 울리고

언제나 좋고 옳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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