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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안갯속으로 걸어 나온 헤세의 <안갯속에서>

피렌체의 안갯속으로 걸어 나온 헤세의 <안갯속에서> 


객실 한쪽 면을 가린 늘어진 커튼을 걷어내고 허공을 향해 난 창문을 두 손으로 밀어 연다. 피렌체 구시가지의 돌길은 여전히 짙은 안개의 어둠에 잠겨 있다. 저기 어디쯤에서 오늘의 태양이 곧 떠오를 것 같지만 돌을 쌓아 만든 도시 가운데에 자리 잡은 고만고만한 높이의 호텔 객실에서는 그 방향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하긴 동쪽이 어느 방향인지를 미처 살펴두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창문 턱을 넘어 들어서는 새벽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진다. 창문을 안으로 당겨 닫고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두었던 얇은 겉옷을 몸에 걸친다. 

“따뜻한 차나 한 잔 마셔야겠다.”

차의 온기가 피어 올린 물의 입자가 머릿속을 적신다.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부터 자연의 영역과 신의 영역, 물질계와 정신계,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을 텍스트의 결로 그려낸 헤르만 헤세를 ‘북쪽 마을 피렌체’의 <안갯속에서> 다시 만난다.  헤세의 <안갯속에서>가 기억의 안갯속에서 가만히 걸어 나온다.  


         

안갯속에서(In the Fog 또는 In the Mist)     


안갯속을 거니는 것은 이상도 하다

덤불과 돌들은 저마다 외로우며

나무는 서로를 알지 못하니 

모든 것이 혼자이다.

Strange, to wander in the fog.

Each bush and stone stands alone,

No tree sees the next one,

Each is alone.     


내 인생 빛으로 가득했던 시절

세상은 익숙한 것들로 가득하였지만,

안개 자욱이 내린 지금은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My world was full of friends

When my life was filled with light,

Now as the fog descends

None is still to be seen.     


어둠은 피할 수 없이 우리를

모든 것으로부터 가만히 떼어 놓으니 

그 어둠 모르는 자는 

결코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Truly there is no wise man

Who does not know the dark

Which quietly and inescapably

Separates him from everything else.     


안갯속에서 거니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독한 일이고

그 누구도 서로를 알지 못하니

모든 것이 혼자이다

Strange, to wander in the fog,

To live is to be alone.

No man knows the next man,

Each is alone.     


- Hermann Hesse, Im Nebel from Unterwegs(1911) in: Gesammelte Schriften, vol. 5, p. 517 (S.H. transl.) 

    

*** ***     


헤세의 <안갯속에서>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과 문학가들의 다양한 번역이 있어왔지만, 오늘은 직접 번역한 것을 소환해도 좋을 것 같은 날이다. 사실 독일어에 대한 이해란 게, 고등학교 시절 제2 외국어 차원으로 어설프게 익힌 정도일 뿐이니, 영어 버전을 원문 삼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에게 헤세의 원전이란 독일어판이 아니라 영문판인 것이다.  


헤세의 <안갯속에서>를 한글로 옮긴 대부분의 출간에서는 영문에서의 ‘friends’를 ‘친구들’이라고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나 또한 상당한 시간을 그 번역을 그대로 받아들여 왔었다. 물론 문장을 보게 되면 그것을 전혀 틀린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헤세의 삶과 작품세계를 탐구해 온 이의 입장에서는 이런 번역에 대해 박수를 치기도 어렵다. 


‘친구들’이라는 전통적인 해석은, 헤세가 <안갯속에서> 말하고자 한 것을 너무 좁은 관점으로 받아들인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시간의 숙성작용’이 잔뜩 일어난 후에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헤세가 말한 ‘friends’는 ‘친구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익숙한 것들’(여기에는 친구들도 포함된다.)을 말하는 것으로도 보아야 한다. ‘어둠은 우리를 어쩔 수 없이, 밝았던 시절에 익숙해진 모든 것들로부터 슬며시 떼어내는 무엇’이며 ‘그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둠을 모르는 이는 현명치 않은 이’라는 것이 헤르만 헤세가 어둠에 잠겨 있는 새벽의 <안갯속에서> 건져 올린 ‘지혜의 텍스트’들이다. 


물론 그 어둠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어둠에 갇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어둠에 갇히는 것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기에,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고독한 존재’라는 것이 헤세가 <안갯속에서>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by Dr. Franz Ko(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

매거진의 이전글 두고 온 행복의 도시, 헤세의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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