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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베네치아

괴테의 베네치아


베네치아에서는 수로와 곤돌라, 햇살과 바람, 물과 하늘, 가면과 유리, 골목길과 광장 그리고 성전과 다리, 눈길 닿고 마음 가는 것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곤 찾기 힘들다. 

그중에서도 검은 곤돌라가 좁은 물길을 바쁠 것 하나 없다는 듯 뉘엿뉘엿 지나가는 모습은 결코 지워낼 수 없는 베네치아만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잘 익은 붉은 포도주빛 벨벳 천을 곱게 깐 곤돌라에 앉아 자잘하게 일렁이는 물길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얼굴을 간질이는 바닷바람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딘가에서 코발트빛 촉촉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 느낌이란 건 마치 바다요정의 목소리를 닮은 검은 악기의 마법에 빨려 들어간 듯해서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베네치아의 곤돌라   

 

와인빛 벨벳 천을 가지런히 깐 

베네치아의 곤돌라는

잘 익은 포도주를 품은 오크통에서 

달콤하고 향기로운 노랫가락이

퉁 퉁 튕겨 나오는 듯

금세라도 행복한 음악소리를

코발트빛 일렁임에 뿜어낼 것만 같은

잘빠진 검은 악기이다          


괴테가 묘사한 베네치아의 곤돌라는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워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맑은 햇살에 반짝이는 코발트빛 물길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기분 좋은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호수 같은 연안의 바다를 지나가는 동안 화려하고 가볍게 팔랑거리는 멋진 옷을 입은 곤돌라 뱃사공이 뱃전에 서서 푸른 하늘 아래의 연녹색 수면 위로 노를 저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어느 베네치아파 화가가 최근에 그린 최고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햇빛은 베네치아만의 특유한 색을 화려하게 부각시켜서 그늘이 진 부분에서조차 빛의 근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정도로 아주 강하고 환하다. 연청의 수면에서 반사되는 빛 또한 마찬가지여서 모든 것이 아주 밝은 배경 속에 환하게 그려져있다.”

-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1786년 10월 18일의 베네치아에 대한 글 중에서 풀어서 번역.    

 

곤돌라의 검은 반짝임에 몸을 맡긴 달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며 달빛 찰랑이는 밤 물살에 오른 검은 곤돌라에서는 또 어떤 낭만이 진하게 배어날까. 어쩌면 팽팽하게 물오른 여행자의 낭만이 곤돌라가 흘러가는 수로 위로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톡톡 터져서 뽀얀 밤안개로 슬며시 번져나지나 않을까.      


“베네치아 밤하늘의 달빛을 받으며 곤돌라에 오른다. 두 명의 가수가 한 소절씩을 번갈아가며 노래 부른다. 이쪽에서 먼저 한 소절을 부르면 저쪽에서는 답으로 그다음 소절을 부른다. 앞서 불렀던 사람이 다시 그다음 소절을 이어가며 노래의 향락은 며칠 밤이고 지치지 않고 계속된다. 잔잔한 수면 위로 퍼져가는 그들의 즐거운 노래놀이는 곤돌라의 거리가 멀어져갈수록 더욱 매력적이 된다. 그 두 사람의 중간쯤에 앉아 노래를 듣게 된다면 가장 좋은 위치를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1786년 10월 6일의 베네치아에 대한 글 중에서 풀어서 번역. 

    

잠시 눈을 감으니 괴테가 듣던 그 밤의 노랫소리가 물길 저기쯤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이미 살짝 벌어진 입술에 침을 축여가며 끼어들어갈 순서를 기다린다. 이제 세 사람의 노랫소리가 한 소절씩 번갈아가며 달빛이 일렁이는 연안 호수의 수면 위에 음의 파고를 더해 넣는다. 잔물결의 신비한 출렁임이 기억 없는 엄마의 심장박동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서재 책장의 중간 선반에 꽂아두었던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꺼내 뒤적이다가 걱정이 앞선다. 

“이미 괴테가 그려낸 베네치아에게 작게나마 내가 덧붙일 수 있는 글줄이란 게 남아있기나 한 것일까.”

“혹시 나의 덧칠이란 게 단지 이방여행자의 한낱 허술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나의 베네치아는 너무 남루해지지나 않을까.”


어쩌지, 부끄러움에 뺨이 달아오르지만 그래도 검은 흘림은 멈추어 서질 않으니, 이 흘림이 비록 허술한 글재주로 맨몸을 속속들이 드러내는 허튼짓일 뿐이라 해도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처 깨닫기도 전에 너무 멀리 와버린 이 황홀한 상황도 어쩌면 베네치아가 부리는 마법이라 여겨야겠다. 


<베네치아, 낭만과 사색으로의 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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