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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깨어난 시간의 사색, 피렌체에서

갓 깨어난 시간의 사색, 피렌체에서


삶의 어떤 것은, 개살궂은 사내놈의 모습이거나 변덕스러운 계집아이의 표정으로 불쑥 나타났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순간 사라져 버리곤 한다.


그렇기에 인생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예측할 수 없었던 어떤 것에서 기인한 예정되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과, 의미는 동일한 것 같지만 어딘가 다르게도 느껴지는, 그래서 이물스러움이 풍겨 나는 색다른 문장처럼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삶이란 지금의 이 길을 걷는 것과, 저기에 있을 것 같은 또 다른 길을 걷는 것이 결국에는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여기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기에 이 두 개의 길 걷기를 '동질성'이라든가 '이음동의'라는 짧은 글귀에 짓이겨 넣는다 해도 어느 누구도 강하게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새벽의 어둠은 아직 돌길을 적시고 있다. 갓 눈을 뜬 플로렌스에서 오늘 첫 해의 떠오름을 기다리는 것은 여느 여행지에서의 기다림보다 더욱 가슴을 먹하게 만든다. 돌길에 깔려 있는 새벽어둠에 더해진 진한 먹먹함은 새롭기까지 하다. 새로움이 전해오는 긴장감은 작은 것들에 대한 떨림으로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새벽의 떨림은 사랑의 감정만큼이나 미묘한 것 같다.


며칠 더 돌길을 서성거리다가 보면 두고 온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하겠지만 걸음과 눈길은 어느 사이엔가 플로렌스의 그것들에게 익숙해져 있다. 익숙해졌다는 것은 그것에게 길들여진 것이고 그것이 스며든 것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것 또한 나에게 길들여졌던 것일까."

길들여 놓고도 길들여지지 않았던 그것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부유한다. 다행이다. 행여 누군가 알아차릴 일 따위는 없을 테니. 그래서 부끄러움에 얼굴 붉힐 일은 없을 테니. 


‘도착했다’라고 말해지는 지나간 시점을 분명하게 헤아릴 수 있고, ‘떠난다’라고 표현되는 끝의 시점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 이방인의 여정이기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의 숙명이기에, 플로렌스에서의 길 걷기는 살랑이는 바람을 향해 휘파람을 뿜어내던 어린 시절의 그날들처럼 그저 해맑고 편안한 행위일 뿐이라고 여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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