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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전기: 로마에 도착한 카라바조

로마에 도착한 카라바조


1592년, 밀라노를 떠난 카라바조는 드디어 ‘영원의 도시 로마’에 도착하였다.

밀라노를 떠날 당시 일개 무명 화가에 불과했던 카라바조를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 일으켜 세운 것은 로마이다.

따라서 카라바조가 로마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예술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커다란 꿈을 안고 로마에 도착하였지만 로마에서 카라바조가 맞이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당시 로마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100명 중에 약 2명이 예술가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로마는 부와 명성을 쫓아 흘러든 수많은 무명의 예술가들로 북적거리는 도시였다.


카라바조는 그 많은 예술가들 중에 단지 한 명일 뿐이었다.

얼마가지 않아 카라바조는 알아차렸다.

그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나 자신만의 자리를 잡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입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출구는 오직 한 사람만에게 열리는 것이 성공이라는 문이라는 것을.

만약 그 문을 열지 못하게 된다면 영원히 이곳에 갇혀버릴 것이라는 것을.

예술가들에게 로마는 정글 그 자체였다.


밀라노에서 로마까지는 아주 먼 길이었다.

그 길을 걷고 또 걸어 천신만고 끝에 로마에 도착했지만 로마에는 카라바조를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주머니조차 비어있으니 당장에 묵을 곳을 마련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해야 할 만큼 물질적으로는 곤궁했지만 카라바조의 가슴에는 성공을 향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차올라 있었다.

카라바조는 화가로서 자신의 실력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누구를 만나든지, 그곳이 어디이든지 간에 늘 당당할 수 있었다.


카라바조가 로마라는 메트로폴리탄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에는 그 당당함이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 카라바조라면 충분히 그랬을 거야.”


카라바조의 이때의 삶을 두고 애송이였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는 문헌들이 있다. 사실 그 당시 카라바조가 처해 있던 형편만을 놓고 보게 되면 이런 류의 텍스트를 사용한 것을 두고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당시의 카라바조에게 그런 텍스트를 사용한 것은, 로마에 도착한 카라바조의 나이가 21살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의 눈에 스물하나는 사회적인 경험에서 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제대로 갖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로만 보였던 것 같다.


또한 당시의 로마는 모든 것이 몰려드는 세상의 중심이었기에 이탈리아에서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몰려든 ‘나름 한 실력 하는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예술의 중심 무대’였다는 점이, 카라바조만의 화가로서의 실력과 천재성을 간과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

카라바조가 로마에 도착한 것은 16세기의 끝 무렵인 1592년의 일이다.

당시 카라바조의 나이는 21살이었다.

16세기의 21살을 지금의 21살과 비교하는 것은 우스운 짓일 뿐이다.

1900년대 초반(20세기 초반)에, 아직 우리가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던 시기와 그 이후 제국주의자의 지배를 받던 시기의 사진자료들을 찾아보게 되면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21살이라는 나이는 더도 덜도 아닌 21살 딱 그 나이일 뿐이다.

스물하나에는, 이미 많은 것들을 알고 있기에 혼자 알아서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것은 자만이 섞인 확신이라서 막상은 여기저기에 빈 구멍이 숭숭 뚫려 있을 때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허술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무조건 싫고,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할 수도 있는 나이가 바로 그 나이인 것이다.

그렇듯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스물하나는 젊다 못해, 정황여건에 따라서는 아직 어리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1592년의 카라바조는 용모에서는 아직 앳된 기가 남아있긴 했겠지만(물론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눈에는 그러했겠지만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중년의 초입에 들어선 용모로 보일 수도 있다.) 화가로서는 결코 애송이라고 불릴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분명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는 상당한 서투름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마치 당시의 카라바조가 예술에서도 서투름이 있었던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텍스트’로 설명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카라바조와 같은 천재 예술가를 우리와 같은 일반인과 견주려는 것은, 아무리 조심에 조심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고 어리석은 짓이 되지나 않을지, 행여 걱정이 앞서야만 하는 일이다.


어떤 것을 이루어내는 것에 있어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실’이다.

또한 스물하나가 그런 경험을 제대로 갖추기에는 아직 충분치 못한 나이라는 것 또한 ‘일반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는 그렇다.”라는 상식선에서의 사실을 얘기한 것일 뿐이다.

일반화의 과정에서는 항상 예외란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상식이란 것은 일반화를 근간으로 만들어낸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 카라바조이다.

카라바조에 관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져야만 하는 것이 또한 상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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