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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전기: 초창기 로마 시절의 작품들에 대해

카라바조의 초창기 로마 시절의 작품들에 대해


작품 리스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카라바조는 로마에 도착한 첫 해인 1592년부터 그림을 그렸다.

카라바조가 1592년에 그린 작품으로는 <Boy Peeling Fruit>(과일을 깎는 소년)이란 동일한 주제의 그림이 4점 전해지고 있다.


이것을 통해 로마는, 밀라노와는 다르게, 화가 카라바조의 실력을 일찍부터 알아보았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카라바조가 밀라노를 중심으로 생활한 1592년 이전의 작품은 아직까지 단 한 점도 발견되고 있지 않다.


당시 로마의 예술품 판매시장의 규모는 밀라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예술작품 중에서도 그림에 대한 수요가 많았기에 로마의 무명화가들은 그림의 판매를 통해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후원자의 후원이나, 작품 의뢰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1592년의 카라바조 또한 그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 중에서도 소비자가 주로 찾는 것은 주택의 벽면에 걸어 두기에 좋은 소위 ‘캐비닛 그림’이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보면 그림을 판매하는 화실이나 상점을 만나는 것은 당시 로마에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요가 많다고 하더라고 판매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화가라고 해서 누구나가 그림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로마는 약 2천여 명의 예술가들로 넘쳐나고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화가였다.

카라바조가 로마에 도착한 첫 해부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또는 수완이 좋았던 것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 그때부터 카라바조의 그림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초창기 로마시절의 작품리스트-1.JPG

카라바조의 작품 리스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592년부터 1595년까지 첫 3년 동안 카라바조가 그린 작품은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11점이다.


초창기 로마시절의 작품리스트-2.JPG


또한 1596년부터 1597년까지 그다음 2년 동안 그린 그림 또한 11점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니 소실되었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작품들까지 고려한다면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채 이십 년도 되지 않는 기간(카라바조가 작품 활동을 한 것은 1592년부터 1610년까지 18년이다.) 동안 카라바조가 남긴 작품의 수는 90점이 넘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과 비교한다면 카라바조는 그야말로 ‘다작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카라바조가 1592년부터 몇 년간 그린 작품의 상당수는 정물화와 인물화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당시의 회화작품 소비자들이 선호한 것은, 액자에 보기 좋게 담을 수 있는 가로 세로 약 60센티 정도인 정물화와 인물화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서 독립적으로 활동한 화가이건 특정 화실에 소속된 화가이건, 무명의 생계형 화가라면 ‘크기와 가격이 적당하여 판매하기에 쉬운’ 정물화와 인물화를 그려야만 했다.


하긴 가로와 세로가 약 60센티 안팎의 캐비닛 그림이었으니, 그리기에도 쉬웠을 것이고 액자에 끼워 넣어 화실이나 상점에 걸어 놓으면, 당시의 시장 여건을 고려해 보면, 판매하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리스트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은 초기 로마시절의 카라바조는 동일한 주제의 그림을 여러 점 반복해서 그렸다는 것이다.

물론 주제가 같긴 하지만 사진을 그대로 인화한 것이 아니기에 그림마다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마치 어떤 원본 그림을 보면서 그린 것처럼 거의 동일하다.

물론 이전에 그린 그림을 떠올리면서 그렸을 수도 있긴 하다.


아무튼 이 시기의 카라바조가 동일한 주제의 작품을 반복해서 그린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그 주제의 그림이 잘 팔렸기에 반복해서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주문자가 누구인지는 보다는 주문자가 ‘이전 그림과 완전하게 동일하게 그려 달라’는 요청을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즉 그림을 주문한 것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화실이나 판매점이란 얘기이다.


누가 누구의 것을 보고 베낀 것인지, 원본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카라바조가 그린 그 주제의 그림들은 분명 다른 화가들도 비슷하게 그렸을 것이다.

무명의 그들이나 초창기 로마시절의 카라바조나, 빵과 거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그려야만 하는 생계형 화가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말은 초창기 로마시절의 카라바조가 그린 [카라바조의 작품 리스트]에 있는 것과 동일한 주제의 그림이 앞으로도 더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로마에 도착한 카라바조는 처음 한동안은 거주지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로 이곳저곳, 주로 개인 화가가 운영하는 화실과 같이,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몸을 의탁해서 그곳에서 요구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지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정이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이 시기의 카라바조에게 로마의 거리는, 그중에서도 로마의 저잣거리(또는 뒷골목)는, 그가 견뎌내어야만 하는 현실 그 자체이면서, 그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성전과도 같은 곳이었다.

카라바조에게 로마의 저잣거리는 현실의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벌거숭이와도 같은 자신을 막아주는 외투였고 또한 자신의 불안정한 내면을 가려주는 가면이었다.


당시 로마는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지상 최대의 메트로폴리탄이었다.

원래 메트로폴리탄에서는 빛이 강한 만큼이나 어둠 또한 짙은 법이다.

로마라는 메트로폴리탄의 짙은 어둠에는 카라바조의 내면을 들뜨게 하는 긍정의 기운만이 아니라 부정의 기운 또한 강력하게 서려있었다.


이 시기에 카라바조가 경험한 저잣거리에서의 유흥과 쾌락은,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치료제이면서 또한 카라바조라는 젊은 사내의 몸과 영혼을 완전하게 중독시켜 버린 금단의 열매이기도 했다.

결국 카라바조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다.

카라바조는 일생 동안 ‘죽음의 트라우마’에 시달렸기에 스스로가 그 중독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싫어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림을 팔아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날이면 로마의 뒷골목은 카라바조의 거실이자 잠자리가 되었다.

카라바조는 더 이상 밀라노에서 그림을 익히며 지내던 카라바조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쾌락과 유흥의 메트로폴리탄, 세상의 중심 로마의 화가 카라바조였다.

카라바조의 불안정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이 시기의 로마에서 카라바조의 불안정성은 점차 방탕함으로 발현되어 갔다.

많지는 않았지만 도제생활이 끝난 십 대의(당시 카라바조의 나이는 17살이었다.) 카라바조에게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당시 카라바조의 나이는 13살이었다.)

물려준 유산이 남아있었다. 따라서 밀라노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그림을 익히면 지내던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는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카라바조의 수중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카라바조가 처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제 생활을 마친 후 4년간의 독립적인 생활이 카라바조가 로마에 도착한 후의 궁핍한 생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볼 수 있다.


카라바조의 이 시기의 생활을 기록하고 있는 텍스트들에 따라서는 카라바조의 초창기 로마시절의 궁핍이 ‘방탕’과 ‘무절제함’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또한 카라바조를 기술하고 있는 다른 텍스트들처럼 어느 부분에서는 맞을 것이고 어느 부분에서는 틀렸을 것이다.


카라바조를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이들 각자는 저마다의 ‘카라바조라면 그랬을 것’이라는 ‘카라바조에 대한 인식의 허용치’를 생성하게 된다.

그래서 카라바조를 말하는 그들의 텍스트에는 그들 각자마다의 인식의 허용치가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카라바조의 로마에서의 초기시절의 궁핍함이, 도제생활이 끝난 후 4년 동안의 카라바조의 방탕함과 무절제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4년 동안의 예술적 성숙을 위한 물질적인 자유 때문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나의 '카라바조에 대한 인식의 허용치’는 어디까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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