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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닛 워커 Jun 12. 2021

자발디카 성당에서

행복한 순례자



둘째 날, 머리 위로 내려쬐는 뜨거운 햇볕에 나는 열사병 증세가 일어났다. 남편보다 내가 먼저 지쳐서 일찌 감치 더 걷기를 포기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를 물어서 들어간 곳이 자발디카의 오래된 성당이었다.

 오픈 시간보다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조그만 정원의 야외용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오후 2시가 되자 머리가 하얀 나이 드신 수녀님이 우리를 인도해서 순례객을 위한 방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기부제 알베르게였던 것이다.


  저녁이 되자 나그네 서너 명이 더 들어왔고 이곳에서 잠시 봉사를 하기 위해 온,  눈이 파란 젊은 네덜란드인 수사 두 분이 감자, 강낭콩 등의 저녁거리의 장을  봐왔다.


이 분들은 돕겠다는 순례자들을 뿌리치고 둘이서 모든 준비를 다하여 강낭콩을 삶고, 감자를 찌고, 계란을 프라이 하여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놓고는 종을 울려서 순례객들을 불렀다.


꿀 맛 같은 저녁을 먹고 나자 두 분의 수사는  순례객들에게 역할 분담의 제비뽑기를 하게 하였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기력이 회복된 나는 설거지 하기가 뽑혔고, 남편은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응원자의 역할을 맡게 되어 이탈리아 청년과 같이 '오 솔레미오!' 노래를 부르며 부엌 청소를 도왔다.  


  식사 후 나이 드신 수녀님이 예배당에 모두를 모이게 한 후, 저녁 예배를 드렸다.  이후 작은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순례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다. 수녀님은 둥글게  앉은 순서대로  한 사람씩 

 "그대는 왜 이 길에 서게 되었는가?"

를 묻고 기도제목을 말하게 하였다. 모두 다른  국적의 나그네들이 한 사람씩 자신들의 기도 제목을  내놓으면 다 함께 그를 위한 기도를 해 주었다.


 우리 부부 차례가 오자 우리의 기도제목과 길 위의 여정을 듣고는 함께 눈물의 기도를 해 주는데, 가슴이 벅차 오른 감동이 왔다.  우리는  결코  이 길을 우리의 의지로 온 게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따뜻한 손을  우리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위로하는 듯했고 마음은 너무나 가볍고 평안했다. 


다음 날 아침 길을 떠나는데 두 분의 수사님과 수녀님이 우리 가족을 한 번씩 모두 포옹을 해 주고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천사였다.  

행복한 순례의 길 <그림: 플래닛워커>

까미노 데 산티아고 

그 길을 끝까지 걸으면서 만난 날마다의 천사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부드러운 바람도

길가의 풀 한 섶도

선하디 선한 눈망울의 망아지

스틱에 흩날리는 먼지 한 톨까지도


노란 화살표를 따라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그 길 위의 모든 이들은 우리의 친구요 천사였다.

그들은 그 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발디카 성 스테판 교회 (13세기에  건축됨)





     자발디카 성당에서 나눠준 순례자의 행복( The beautiful of the pilgrim)


첫째: 행복하여라! 순례의 길이 눈을 열게 하여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둘째: 행복하여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향하여 함께 걸어가는 것에 마음을 두는 순례자여!

셋째: 행복하여라! 길을 명상할 때 그 길이 수많은 이름들과 여명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넷째: 행복하여라! 진정한 길은 그것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다섯째: 행복하여라! 배낭은 비어 있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느낌들과 벅찬 감동으로 가득해진 순례자여!

여섯째: 행복하여라! 옆에 있는 것을 돌아보지 못하고 혼자서 백 걸음 앞서 나가는 것보다는 한 걸음 뒤로 가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훨씬 더 가치롭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일곱째: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길을 벗어나 빗나간 것에도 놀라워하는, 그 모든 것에  할 말을 잃을 때도 감사하는 순례자여!

여덟째: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만약 진리를 찾고 있고 , 그 길에서 생명을 만들며 자신의 삶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면 , 그리고 그것이 결국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아홉째: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이 길에서 참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서둘지 않고 충분히 머물면서 마음속에 그 이미지를 잘 간직할 수 있다면!

열 번째: 순례자여! 이 길이 큰 침묵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침묵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대는 정녕 행복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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