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리스 아테네
그리스 아테네라고 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대 문화의 정수’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멋진 신전들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철학의 시작이기도 하니 말이다. 고상하면서도 번성한 이미지의 아테네여서 유럽 여행이라고 하면 아테네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리스 신화, 고대 철학 이런 것만 생각하고 아테네 여행에 대해서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이번 여행기에서 여행에 대해 미리 찾아보지 않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 같은데, 진짜로 찾아보지를 않았다. 그저 느낌대로 여행지를 선택했을 뿐 그 여행지에서 무엇이 유명하고 어떤 먹거리가 유명한지는 그날그날 찾아보면서 여행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기 전 내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그 여행지의 모습과 실제 여행을 하면서 맞닥뜨린 현실의 괴리가 꽤 크게 나타났던 것 같다.
아테네는 다른 도시 중 상상과 현실의 괴리가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문화적으로 번성한 이미지의 아테네는 이미 20년 전의 이야기였다. 현재의 아테네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로 쇠락을 겪으면서 현재는 아테네 도심은 거의 붕괴되었다고 봐야 한다. 아테네 도심은 관광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기 꺼려지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아테네 시민들은 도심보다는 그 외곽지역으로 이주했고, 도심에는 이전에는 고급 주택이나 학교였던 건물들이 버려진 채 있기도 하고 이민자가 난민들이 거주한다고 한다.
아테네 여행 첫날, 이러한 정보 없이 아테네를 여행했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 곳곳의 건물은 물론이고 관광지 근처에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 그리고 지하철까지 그래피티로 빼곡하게 덮여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피티라는 예술적인 용어를 쓰고 싶지도 않게, 낙서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좋게 봐주는 것일 정도로 지저분한 스프레이칠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호주의 멜버른처럼 그래피티가 도시의 예술성의 표출인 것처럼 보이지 않고 아테네의 그래피티는 진짜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에어비앤비가 있는 외곽의 동네는 그러려니 했다. 아니 사실 외곽 동네가 관광지 근처보다 훨씬 깔끔했다. 우선 지하철부터 심상치 않았다. 지하철의 원래 색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낙서로 빼곡하게 덮여 있었다. 정부에서 지하철에 낙서를 하도록 법안이라도 만든 것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지하철이 낙서 투성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에어컨이 없는 지하철 내부와, 터널을 통과하면서도 먼지가 고스란히 들어올 정도로 창문이 뻥 뚫려있는 지하철도 많았다.
그래피티도 그래피티이지만 도심을 거닐다 보면 분명 큰 건물인데 비어있거나 폐허처럼 느껴지는 건물들이 꽤 많았다. 단순히 공사 중이라거나 잠시 비어있는 느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건물들이었다. 아테네가 왜 이런 분위기일까 하는 궁금한 마음에 유튜브에 아테네 여행을 검색해 보았는데 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아테네의 ‘다크 투어’ 후기가 있었다.
다크 투어는 말 그대로 아테네의 어두운 구석을 살펴보는 투어이다. 현지인도 절대 가지 않는 곳, 택시기사에게 이 지역에 간다고 하면 사기가 일상인(?) 택시기사조차도 말릴 거라는 곳을 탐방해 보는 투어인데, 이 지역이 서울로 치면 도심 중앙에 있는 환승역이라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이 지역 길거리에서 주사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예전에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건물이 방치되어 노숙자들만이 방문하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테네에 간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아테네에 갔었기 때문에 지금의 아테네는 어떤 모습인지도 알 수 있었고, 오히려 과거의 번영했던 역사가 현재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세월의 흐름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테네에 또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