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생일
호주에서 보내는 첫 생일은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
호주에서 보내는 생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편과 사귈 때도 호주를 여러 번 오갔지만, 내 생일인 5월에는 호주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 생일은 난생처음 호주에서 보내는 생일이었다.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카톡에 뜨는 생일 알람도 다 꺼놓은 나로서는 ‘호주에서 보내는 첫 생일‘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뭐랄까… 뭔가 더 특별하게 보내고 행복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이 있다고나 할까? 거주국을 바꾼 첫 해인 만큼 그 변화가 의미 있을 수 있는 생일을 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주는 부담은 떨쳐버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내기로 했다.
생일 낮은 혼자 울릉공 시티를 돌아다니면서 보냈고, 저녁에는 일찍 퇴근한 남편과 태국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주문해 준 레몬 크림 케이크를 먹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호주에 온 지 3개월을 채워가는 시점에 불안정한 내 상태에 대해 많이 울적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무탈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평온하게 보낸 하루가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카톡 생일 알림을 꺼놓았지만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친구들의 축하를 받는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항상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의 온전한 축하와 보살핌도 태어났음을 감사하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생일에 자원봉사 박람회에 가기
사실 지금도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호주에서 이방인의 느낌으로 지내는 것이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다. 삶의 굵직한 변화들을 한국에서 다 겪고 나서 호주에 오니 당황스러움만 가득했다. 한국에서 살아온 대로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여기서 무엇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이 될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변화와 가능성이 많은 20대에 호주에 왔다면 내 앞에 펼쳐진 다양한 기회에 오히려 흥분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정감을 찾고 싶은 30대에 호주에 오고 나니 내가 여태까지 한국에서 쌓아온 것들이 다 부질없어지고 여기서 새롭게 땅부터 다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살기 좋기로 유명한 호주이지만, 이곳의 일상 하나하나가 어색하기만 한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작아지는 내 모습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그러던 와중에 호주에서 인생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당했다. 남편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한 무리의 고등학생이 옆을 지나가면서 ‘니하오’하고 외친 것이다. 정말 기본적이고 어이없는 인종차별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당하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무시가 가장 좋은 대처라고 하지만 뭐라고 한마디 못한 것이 오랫동안 분하기까지 했다. 미친개는 피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일반 개가 아닌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해서 물린 곳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호주에서 의기소침해진 나에게 그 인종차별은 너무나 임팩트가 컸다. 계속해서 그 상황을 되짚어 생각하게 되고, 되짚어 생각하다 보니 인종차별자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누군가의 기분을 열심히 노력해서 상하게 만드는 것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게 잘못된 행동인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에 만족하고 낄낄대며 웃는 그 사람의 인생이 불쌍해졌다.
뭔가 서론이 길었지만 이런 종합적인 상황의 결론으로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니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호주 사회에 소속감 또한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생각이 든 참에 남편과 자원봉사에 대한 얘기를 했고, 며칠 뒤 남편이 울릉공 시티에서 내 생일에 자원봉사 박람회를 한다는 정보를 얻어다 주었다. 혼자서 방문할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 이왕 내 생일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기는 아깝지 하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박람회에 참석했다.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의 자원봉사가 있었고, 주로 운전이나 언어 실력이 중요한 자원봉사였지만 내가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귀찮은 데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박람회에 들렀다가 근처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버스킹을 들었던 그 분위기는 잊지 못할 호주에서의 내 첫 생일의 기억이 되었다.
처음으로 미역국을 안 먹은 생일
내 기억이 존재할 때부터 생일에는 꼭 엄마가 만들어준 미역국을 먹었다. 이번 생일에서 특별히 달랐던 점은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산다는 것도 있었지만, 미역국의 부재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타국살이가 헛헛할 내 마음을 이해하고 하루종일 살뜰히 축하해 준 남편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한국에서 내 미역국을 끓여서 먹은 엄마와 가족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별한 것 같으면서도 무탈하게 지나간 생일 덕분에 올 한 해 열심히 호주살이에 적응하고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힘이 생겼다.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이 상황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에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압박감보다는 기대감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해도 괜찮고, 거창한 걸 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깨에 힘 빼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