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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제인 Sep 10. 2023

과소평가해서 미안해, 이스탄불

튀르키예 이스탄불

이스탄불에 도착하고 처음 느낀 감정은 ‘어? 거리가 왜 예쁘지?’였다. 여행하기 전, 튀르키예 하면 나도 모르게 인도가 생각났다. 왠지 튀르키예의 분위기는 인도처럼 복잡하고 정신없고 호객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 같았다. 사실 인도에 가보지도 않았고 튀르키예에 대해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이스탄불의 길거리만 봤을 뿐인데도 ‘어? 생각보다 예쁘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유럽’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낭만적인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유럽에 처음 가는 나도 꿈꿔오던 유럽의 이미지가 있었다. 예스러운 돌바닥, 알록달록한 집들, 붉은 기와의 지붕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거리들… 이스탄불이 이런 모습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걸 발견한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왜 이스탄불이 유럽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대체 어디서부터 튀르키예에 대한 내 선입견이 생겼는지 이 글을 쓰면서 차근차근 짚어봤다.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짚으면서 가봤더니 그 끝에는 ‘터키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이제는 튀르키예 아이스크림으로 불러야 하는 터키 아이스크림은 쫀득쫀득한 젤라또인 길거리 간식인데, 아이스크림 자체보다는 아이스크림을 건네받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한 번에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줄 듯 말 듯 떨어뜨릴 듯 말 듯 하면서 손님에게 있는 대로 모든 장난을 치다가 손님이 짜증을 내기 직전에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는 것이다. 이러한 가벼움과 장난스러움이 튀르키예에 대한 내 이미지였던 것 같다.


농락 끝에 얻은 아이스크림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은 마치 학창 시절에 수업시간에 장난만 치고 까불거리던 아이가 알고 보니 매번 수학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똑똑한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던 것 같다. 너무나 특색 있고 아름다운 거리와 멋진 뷰, 길고 복잡한 역사, 튀르키예만의 독특한 문화 등 어딜 가나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스탄불의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꼭 ‘갈라타 탑’에 가보라고 하고 싶다. 날씨가 좋다면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이국적인 이스탄불의 뷰를 360도로 볼 수 있다. 어느 쪽으로 시선을 두어도 화려하다 못해 장엄한 느낌이 드는 모스크들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저 뷰일 뿐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어디로 고개를 돌리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의 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탑의 외관도 너무나 아름답게 생겼다. 마치 라푼젤이 살고 있었을 것 같은 동화 속 탑의 모습이다.


갈라타 탑
갈라타 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전경 일부


이스탄불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았다. 새로운 거리에는 그 거리만의 특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스탄불이어도 어떤 지역, 어떤 거리를 걷느냐에 따라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목적지를 가는 길 중간에 예상치 못하게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스탄불에서는 멋진 장소를 찾기 위해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내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아름다운 장소를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목적지를 가는 중이어도 잠시 멈춰서 그 장소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겼으면 한다. 그 아름다움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번 이스탄불 여행에서 관광지도 아니고 유명한 뷰 포인트도 아니지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나만의 장소를 만날 수 있었다. 예술 대학교 안에 있는 카페였는데, 넓은 마당과 그 앞에 펼쳐지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름다운 뷰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관광지가 아니지만 멋진 분위기의 장소를 우연히 찾아내면 먼 타국에 나만의 아지트를 하나 만들어 낸 느낌이 든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던 이스탄불에서 보물처럼 찾아낸 장소


사실 튀르키예와 유럽의 역사를 빠삭하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여행의 최우선 목적이 정보와 지식을 수집하는 것 같은 남편의 말에 따르면 이스탄불은 과거에 콘스탄티노플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정확한 역사와 그 의미는 모르지만 이스탄불이 과거에 유럽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한 지역이었다는 것은 명확해 보였다. 이 때문인지 이스탄불에서는 굉장히 다양하고 풍부한 그들만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


가장 독특했던 문화는 바로 ‘하맘’이었다. 사실 한국인이라면 하맘이 뭔지 알게 되면 그 콘셉트 자체가 어색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맘은 튀르키예의 목욕 문화인데, 한국으로 따지면 목욕탕의 세신과 비슷하다. 누군가가 내 몸을 씻겨주고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튀르키예의 하맘이다. 이스탄불에서도 하맘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가격대는 매우 다양하다. 고급스러운 스파부터 동네 허름한 목욕탕 같은 곳까지 천차만별이다.


남편과 나는 고민하다가 평이 나쁘지 않은 한 호텔 소속의 저렴한 편인 하맘을 경험해 보았는데, 뭔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하맘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너무나 열정적인 여자 관리사분께서 해주셨는데 약간 기치료사 같았다. 몸에 비누칠을 당하면서 계속해서 파이팅 넘치는 관리사의 외침을 듣고 있자니 저절로 긍정적인 기운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마사지를 기대하고 갔는데 목욕의 비중이 훨씬 커서 아쉬웠지만 오히려 에너지가 넘치는 관리사분 덕분에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맘 체험이 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날 씻겨주고 말려주고 몸에 향기로운 오일을 발라주는 것이 어색했지만 목욕 후 노곤해진 느낌이 좋았다.


터키(튀르키예) 아이스크림으로 시작된 이스탄불의 이미지가 실제로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종국에는 이스탄불을 과소평가한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이스탄불의 독특한 문화, 특색 있는 음식, 장엄한 뷰, 오래된 역사,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얽혀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과소평가해서 미안했고, 지금이라도 어마어마한 매력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스탄불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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