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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Jul 13. 2022

캐나다 일기

어떻게 나를 빼고 만날 수가 있어?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시작된지 몇일 안 된것 같은데, 막 몇달은 된것 같은 무한 늘어짐과 정신없음, 바쁜데 아무것도 안 한 시간들의 연속, 계속 밥을 하는 것 같은 느낌에 마지막으로, 놀아줘야 할 것 같은데 게임만 하고 있고 뭘 할지도 막상 생각이 안나는, 그런 시간들이 계속 되고 있다. 방학, 맞네. ㅎ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왠지 말 한마디에 토라져서 혼자 가는 둘째. 아 감정노동....ㅠㅠ


딱 방학이란 이런 느낌이다.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 엄청난 자유임에도, 막상 그런 막강한 자유가 주어지면,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오히려 시간이 없고 바쁠 때에 우리는 많은 성취들을 이뤄내곤 하는 것 같다.



자, 아이들의 방학이란 세 아이에게 엄청난 빈 시간이 생긴다는 뜻. 이 쯔음 되면, 또 고민되는 문제가, 누구랑 얼마나 자주 놀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작년까지만 해도 친구들을 엄청 부르고, 불려가고, 정신없이 오가며 집이 북적북적대도록 지냈었다.



함께 모여 놀 때는 당연히 신나고,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로써 기쁘고 행복하지만, 아이들이 매우 가까이 지내던 친구와 관계가 가끔씩 틀어지는 모습을 보면 또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고민도 되고,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 아이를 출산하고, 세 아이의 육아를 하고, 이제는 세 아이의 친구들까지 조절해 줘야 하는 머리가 터지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슬슬 사춘기에, 친구관계에 예민해지는 시기가 도래하다보니, 나 혼자만의 인간관계로도 골머리가 썩는데, 아이들의 고민을 마주할 때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캐나다 스위트콘, 완전 달콤


이번 주말에 놀러온 큰 딸의 친구들에게 간식을 주다가 나도 모르게 대화에 끼게 되었는데, 아이들의 이슈는, 친한 5명의 그룹에 있는 두 아이가 따로 비밀리에 만나 자기들 끼리만 노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배신감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아이들의 입으로, "어떻게 나를 빼고 만날 수가 있어?" 라는 말을 듣자, 나도 극강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래, 그건 진짜 서운하지! 라며 나도 모르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말았네. ㅋㅋ 어른으로서 위신도 없이.

노는 모습이 귀여운 둘째와 둘째의 친구

사실, 그정도의 투정은 귀여운 정도이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배신과 뒷담화, 그리도 따돌림은 생각보다 깊고, 상처가 오래간다.



인간관계란 모름지기 헐렁한 관계가 최고다. 몇 달동안 연락안하다가도 만나면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시덥잖은 농담부터, 깊은 삶의 애환까지 나눌 수 있는 관계. 하지만 분명히, 너는 모르는 나만의 세계가 존재하는 관계, 나는 모르는 너만의 세계를 존중해 주는 관계. 분명 연결은 되어 있으나 아무도 이 헐렁해진 끈을 당기지는 않는 관계. 가끔 너무 당겨서 가까워지면 서로 놓을 줄도 아는 관계. 그런 관계가 제일 좋은 관계이다.



매일 매일 연락하고, 그 집에 에어프라이어를 샀는지, 머리를 파마를 했는지, 수분크림이 떨어졌는지, 시시콜콜하게 아는 관계는, 위험하다. 그런건, 가족끼리만 공유하면 된다.



하지만, 이민을 와보니, 남편과 아내가 맞벌이를 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이민 시계에 서로가 외롭고 힘들다보니, 이런 건강한 선을 넘나들다 파국을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친밀하게 지낼래야 지낼수가 없을 만큼 다양한 관계들을 맺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성적인 조절을 할 수가 있었는데, 여기는 해외라는 특수한 상황에 내가 놓여있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자하는 마음이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다.



시민권을 따도, 나는 케네디언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드는 만큼, 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지 않은 이상, 내 나라에서 살 때의 꽉찬 느낌이 없이, 늘 허하고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이민 온 사람들의 불안감과 고립감을 나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민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은 그래서인지 갑자기 친해지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지만, 또 정성껏 대해주시는 모습들을 많이 본다. 그게 바로 연륜인거 같다. 어쩌다 갑자기 이민을 오게 되어 새로운 나라에 적응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오히려 캐나다 사회보다도, 한국이민사회가 더 어려운 느낌이다. 아직 첩첩산중에서 헤매는 기분이지만, 언젠가는 숲을 지나, 고속도로를 만날 날도 있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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