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다는 것(이세히데코 글, 그림, 황진희 옮김)-
코로나 시기에 줌으로 미술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일단 매일 산책하는 곳이 있다면 그때 보았던 것을 우선 그려보세요.”
그때 그 선생님의 말과같이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무엇을 어떻게 그릴까하는 생각은 남아있었다.
이세 히데코의 책은 워낙 좋은 작품이 많아서 이 책은 그냥 도서관에서 보자마자 빌리게 되었다. 맨 앞의 책 표지에는 아마도 고흐의 방에 주인공인 듯한 소년이 들어가는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는 저자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한 소년을 화자로 세워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세상의 곳곳을 다니면서 여러상황을 겪고 그것들을 그려가는 모습이다. 작고 낯선 마을이나 기차의 창가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스케치북을 가져오지 않은 어떤 날은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좋다.
고흐의 방에 다시 들어가서 소년은 여러 생각을 한다. 고흐와 미야자와 겐지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소년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사우한다. 노래를 부르듯이 그림을 그리고 소리를 듣듯이 색을 듣는다.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이고, 기억은 하늘로 연결되어 있다. 캔버스에서 맡았던 냄새와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을 발견한다.
이와같이 작품 창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나온다. 느낌과 감정을 그리는 것, 그것을 알고 표현하기 위해 세상을 여행하고 사랑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지막 그림은 큰 캔버스 앞에 서서 자신의 뒷모습을 그린다. 뒷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창작을 위한 소통에서 이제는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로 떠난다는 것이 어닐까?
내가 무엇이든 그려보라던 선생님의 이야기도 나무를 보고 나의 느낌과 감정을 그려보고, 아침의 강물을 보고나서는 그 강물에 대한 기억을 그려보라던 것이 아닐까하는 조금은 늦은 깨달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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