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맑음!
2021년 9월 26일 곡성에 입주하며
청춘작당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입주 전에 스스로의 새로운 이름을 먼저 고민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나이대, 성별, 지역, 학벌,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이 모든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 크고 작게 작용한다.
사회가 만들어낸 나이와 성별에 따르는 ‘호칭’의 영향력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새 닉네임을 만든다. 또 나이를 먼저 묻기보다는 상호 존대하며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한다.
어떤 닉네임을 챙겨갈지는 내게 큰 숙제였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애정을 담은 별명을 지어주는 것
그리고 좋아한다면 그렇게 불러주는 것은 참 쉽던데
내가 내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라,,
공지가 온 순간부터 고민했다!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열해보고
또 나와 어울리는 단어들을 고민해보다가
그냥 이름의 발음과 비슷해 불리던
내겐 좀 시시한 닉네임을 가져갈까도 했다.
오프닝 날 결국 쓴 이름은
조금 쑥스럽더라도 가장 마음에 들고,
닮고 싶은 느낌의 단어.
오늘부터 한 달간 나의 이름은 맑음이 되었다.
어딜 가든 가장 먼저 묻고 답하는 본명과 나이를
우리는 중요치 않게 두기로 했다.
대신 닉네임을 지은 이유를 함께 소개했다.
나는 맑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내 이름과 분리된 닉네임을 써보고 싶어서
또 불리는 어감도 좋은 것 같아서!
긴장한 탓에 이 날 들은 다른 사람들의 닉네임의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좋았던 점은 정말 닉네임만 보고는, 나이나 성별을 유추하기가 비교적 어렵다는 점
그것을 경계하도록 인지하게 된다는 점
한 달간 지내며 물어보았을 때에는
나처럼 새 이름을 오래 고민한 사람보단 그냥 탁 떠올린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 신기했다.
처음엔 닉네임으로 부르기가 조금 어색했다.
특히 홈 사람들과는 입주 날 서로 본명을 공개했기 때문에 닉네임으로 바꾸는 로딩 시간이 좀 필요하더라.
그렇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려웠던 내겐
처음부터, 막내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좀 더 꿋꿋할 수 있는 큰 계기였다.
언니, 오빠, 동생이 아니라 모두 스스로가 붙인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서로를 평등하게 부르는 그 한 달 동안,
나이나 경험을 앞세워 조언하는 말들을 조금 더 경계할 수 있었다.
물론 결국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되었고 이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상호 존대’와 ‘상호 반말’의 합의가 지켜지는 게 상식인 울타리가
나이가 어려도 꽤 안전하다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들은 정말로 나이를 막론하고 친구가 되었으니
이 규칙이 내게 준 건
생각보다 커다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