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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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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희 Dec 29. 2021

[피의 게임] 우리는 피폐하다며 왜 계속 쳐다볼까

# <머니 게임>, 그리고 <피의 게임>


 2021년 하반기, MBC와 <머니 게임> 기획자 진용진의 합작인 <피의 게임>이 이를 잇고 있다. <피의 게임> 이전, 약 600만-900만 회 조회수를 유지하며 유튜브에서 많은 인기를 끈 <머니 게임>은 미묘했다. 

 의식주 자체가 보장되지 않는 생활, 그 환경에서 다시 커다란 자본주의 경쟁을 해야 할 때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이를 꽤 사실적으로, 또는 자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큰 성공의 요인이라 생각했다. 말 그대로 ‘매운맛’으로 인기를 얻은 콘텐츠이니, 공중파 MBC가 <피의 게임>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궁금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머니 게임>과 <피의 게임>의 눈에 띄는 차이점은 이러하다. <머니 게임> ‘아무것도 없는’ 방에 생리현상, 소통할 수 있는 시간마저도 통제된 환경이었다. 이와 반대로 <피의 게임>은 모두가 의식주를 아주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대저택에서 진행된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또 지상파이기에 비교적 공중파 친화적인 출연자들의 성향으로 프로그램은 조금 더 순하게 진행된다. <머니 게임>이 의식주 자체에 결핍을 만들어 인간성의 끝을 보여주려 파고들었다면 <피의 게임>은 기본적인 사항들을 제공해 두뇌와 관계의 갈등, 즉 게임에 주력하는 듯한 차이가 보였다. 



#2, 피, P, 피자


 <피의 게임>을 4화까지 시청하며 가장 소름이 돋았던 세 장면이 있다. 첫째는 첫 회에서 허준영 참가자가 첫 소개에서 나이를 속일 때, 둘째는 한 회차 내내 예상했던 투표 결과가 2, 3화에서의 박지민 참가자의 공략처럼 소수에 의해 반전될 때였다.

 

이 장면들은 공통적으로 ‘게임’ 임에 충실한 모습들이었다. 이들은 플레이어로서 최선을 다한다. 하루 동안 함께 웃기도, 서로를 떠보기도, 의리를 다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누군가는 자신의 생존을, 연합의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 결국 하루 끝에는 생존을 위해 투표 싸움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행동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재미를 더해준다.

 이렇듯 게임과 투표가 주는 재미보다도 더 짜릿했던 장면은, 첫 화에서 탈락한 이나영이 집에 가지 않았을 때였다. 잔인함이나 공격성을 떠올리게 하는 피(blood)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P(parking)의 게임임이 밝혀졌을 때, 비로소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볼 이유가 생겼다. 지하에 떨어진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접는 ‘피자’ 박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몰래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를 크게 높였다. 


 

이 세계관은 시청자들에게 매 회차마다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하나씩 더 열어준다. 지하층이 마치 사후세계처럼 등장하며 나름의 대비되는 서사를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다. 지하층 덕분에, 한 회차 안에서도 더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참여자들 간의 즐거운 모습이 나올 때에는 예능으로, 그들이 플레이어로서 충실하며 소름 돋는 서사를 만들 때에나 지하층에서 암울한 모습을 보일 때에는 기생충과 같은 영화로 보인다. 반전되는 설정과 적절한 BGM의 차이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한몫을 해주고 있다.



#3. 우리는 피폐하다며 왜 계속 쳐다볼까

 생존 게임으로 묶이는 이러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곱씹게 되는 문장이다. 출연자들은 대개 살아남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쓰고 서로를 제거하려 사투한다. 시청자들은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폐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본다면, 그 지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피의 게임> 또한 ‘자극적인’이라는 수식어로 분류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극되는가, 왜 계속 보게 되는가? 이 질문에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서’, 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극대화해 보여주어서’였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때. 경쟁자를 제거해야만 내가 하루 더 현상 유지할 수 있을 때. 극한의 상황에서는 누구나 이기적인 계산으로 행동한다는 전제를 두고 게임판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피의 게임> 속 플레이어들은 꼭 그렇지 않았다. 당장의 이득보다 신념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도 하고, 이익을 모두 계산하고도 이에 상충되는 감정에 충실하기도 했다. 


 오히려 보는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기대했을 추악한 이기심의 마찰보다는 플레이어로서 솔직한 이들처럼 보여 피폐하다는 느낌이 덜했고, 신선했다. 또한 그래서 조금 더 공감하며 볼 수 있었다. 생존 게임 프로그램에 괴로워하면서도 빠져드는 핵심적인 이유는 어쩌면 공감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과 사이에 오고 가는 미묘한 계산과 혼란들. 두뇌 싸움, 관계의 변동, 신념과 이익 사이의 갈등. 프로그램처럼 큰돈을 걸고 게임판 안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사회 속 모두가 겪는 일이다. 이를 슬기롭게 활용해 적당한 정도의 공감대에, 피폐해지지 않는 정도의 자극을 섞어 균형을 맞추는 것이 <피의 게임>이 다루고 있는 숙제 아닐까. 

 매운맛이라 외치면서도 다음 화를 틀도록, 그리고 인간이 서로를 너무 불신하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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