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공개된 <먹보와 털보>를 보려면 넷플릭스로 가야 한다. 반드시 말이다. 즉, 이 시리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재생해보아도 ‘아, 넷플릭스다!’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MBC와 넷플릭스가 제작 파트너를 맺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먹보와 털보>는 ‘MBC PD들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무한도전>에서 <놀면 뭐하니?>까지 함께한 김태호, 장우성, 이주원 PD부터 MBC의 음향감독, 그래픽 디자이너, 테크니컬 프로듀서까지 참여했다. 이 도전적인 조합은 최초였다. 바로 지상파 방송사와 넷플릭스가 협업한 첫 번째 콘텐츠이다.
가장 모범적이고도, 오래되었고 따분하다는 말을 듣는 곳이 지상파이다. 반대로 가장 따끈따끈하게 뜨고 있는 실험적 미디어 플랫폼이 넷플릭스이다. 지상파 방송국 사람들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니, 시청자로서 제법 궁금했다. 제작진들 또한 제작발표회에서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이 모였다’고 말했고, ‘MBC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경험한 것이 큰 수확’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콘텐츠는 어땠냐면, 처음 마주한 설정은 꽤나 익숙했다. ‘친한 친구 두 명의 국내 우정 여행’, 그리고 이것이 제주에서 시작하니 말이다. MBC와 넷플릭스가 이것을 특별하게 풀어간 두 키워드는 바이크, 그리고 역시 사람이다.
김태호 PD는 촬영이 철저한 기획 속에 전개된 게 아니라, 한 번 두 사람의 여행을 따라다녀보자고 시작되었다 말했다. 주인공인 비와 노홍철은 자주 만나는 친구라고 했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거의 매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두 사람은 그럼에도 참 다르다.
비는 MBTI로 치자면 뼛속까지 J인 듯한 여행 계획에, 바이크에 실을 짐을 위해 개조하는 맥시멀리스트이다. 노홍철은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는 말로 비에게 반박하고, 심플한 자신의 바이크를 개조한 바이크와 비교하며 강조한다. 이효리는 두 사람을 보고 “프로그램 컨셉이 멍청한 놈, 미친놈이야?”라는 농담을 던졌다. 넷플릭스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를 형님이라 외치며, 넷플릭스 타투까지 새긴 노홍철과 그 옆에서 최대한 얌전하고 착실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비의 조합은 볼수록 특이했다.
프로그램 속 노홍철은 비에 대해 ‘언제든 멀어질 수 있는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흔이 넘어서 친밀하게 이어가는 친구는 귀하다는데, 두 사람은 핀트가 다른 듯하다가 맞는다. <먹보와 털보>를 보면서 묘한 안정감이 생겼다. 서로를 꼭 붙잡고 있진 않은데도 매일 보는, 바이크를 타고 전국을 함께 달릴 수 있는 우정이 계속될 수 있다니 말이다.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싶었던 매력은 어쩌면 여행과 풍경을 통한 힐링이 아니라 두 사람의 묘한 우정, 그 관계성이었던 것 같다.
<먹보와 털보>는 특이하게도 음악까지 오리지널로 구현해냈다. 그리고 그 음악감독은 바로 이상순이다. 보통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음악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10곡을 넘게 새로 작업했다. 그리고 이를 자연스레 보여주었는데, 첫 화와 마지막화는 제주도이며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가 두 회차 모두에 등장한다.
‘제주도 +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가 떠오르게 하는 안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JTBC의 <효리네 민박>이 여전히 많은 시청자의 마음속에 심겨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첫 화에 등장함으로써 무해한 힐링 코드와 음악이 제주도의 장면에 적당히 스며들었다. 첫 화에서 이효리가 즉흥으로 썼다는 곡은, 마지막 회에서 노홍철이 직접 부른다. 네 사람은 꽤 친밀한 관계라는 것이 첫 화에서 보였기에 이것이 자연스러웠다.
이효리와 이상순의 등장으로 상기된 것은 ‘따뜻한 제주도’뿐이 아니라 그들과 김태호 PD의 관계성이었다. 그러고 보니 노홍철은 김태호 PD와 <무한도전>을 오래 함께했고, 그러고 보니 이효리와 비는 당장 작년에도 함께 싹쓰리로 활동하며 <놀면 뭐하니?>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느낄 수 있던 관계성은 비와 노홍철 두 주인공 간의 우정뿐 아니라 이효리 부부, 그리고 출연자와 PD의 끈끈한 시간까지 확장되었다.
부부의 등장으로 서로서로 오래 함께한 이들이 또 한 번 보여줄 케미스트리를 기대하게 되었으니, 이상순은 음악감독으로도, 이효리는 두 주인공의 친구로도 참 적당하게 등장해 시작과 마무리를 도운 셈이다.
김태호 PD는 <먹보와 털보>에 대해 “MBC와의 마지막 뜨거운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20년 간 몸 담은 MBC를 떠난다. 시청자에게도 MBC 예능의 상징이었던 PD인 그의 떠남은 큰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보여준 근사한 마무리 덕에 이는 기대로 전환되었다.
마지막으로 MBC PD였던 김태호가 예고한 넷플릭스와 그의 여정을 기대한다. 그리고 <먹보와 털보>를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경험한 MBC가 보여줄 세계 또한 못지않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