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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희 Dec 23. 2021

나의 내향 육아에 대한 고찰.

내안의 내향성. 그럼에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육아이야기.


혼자 밥 먹고 혼자 차 마시고 홀로 쇼핑하는 게 익숙하고 편한 나.


그런 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마치 거미줄이 얽히고설켜 집을 크게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점점 커져가는 관계의 연속들.

아이도 인간이고 그 조그만 아이도 인간관계가 생기고

내가 택하고 결혼한 남편도 하나의 실타래

남편이라는 매개체로 남편 쪽 가족들과 새로운 가족의 인연을 맺고 그렇게 살아간다.

나에게 모두 마주쳐야 하고 적응해야 하는 내향성 인간에게 남겨진 과제랄까..


다른 내향적 주부들은 어떨까?

나처럼 어색하고 힘겨웠을까?


물론,

반평생 이상을 내성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지만

어릴 때만큼은 나도 진취적이었고 상냥했으며 또래 앞에서는 늘 보이시한 여자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엔 해마다 반장선거에 꼭 출마해서 뽑히려고 갖은 애를 쓰곤 했는데, 반 아이들 앞에서 선거공약까지 준비해서 나갔던 나. 나대는 거 참 좋아했다.  그런 용기와 패기는 지금 개나 줬는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엄마는 속상해하신다. 네가 왜 이렇게 변했지? 넌 안 그랬는데. 사람도 이렇게 극적으로 변한다.

나도 가끔 궁금하다.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하고 내향적일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엄마가 혹은 주변 친지들이 기억하는 내 어린 시절은 조금은 반대의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다섯 살 때쯤이었을 거다.

어렸을 때 살았던 성북동의 여자 골목대장 바로

나였다.

아침에 쏜살같이 튀어 나가 때 꼬질 땀내 폴폴 풍기는 모습으로 매일매일 친구들과 놀이터고 골목이고 뛰놀았다. 천지분간 못하는 사고뭉치.

한 번은 언니 오빠들도 무서워하는 길바닥의 죽은 쥐의 꼬리를 잡아 휘휘 돌리며 "뭐가 무서워!!"라며 아이들에 둘러 둘러싸여 으스대는 내 모습이 기억 한편에 또렷이 남이 있기도 하고. 오빠가 동네 불량 형들에게 괴롭힘 당하면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라면서 분을 못 이 겨울며 씩씩대며 무서운 것이 없이 동네 오빠들에게 대들던 당찬 꼬마였다.


늘 주목받길 원하고 사랑받길 갈구하던 아이.

아침에 나가 친구랑 놀다 해가 뉘엿 질 무렵 지는 해봐라 보며 집에 들어오던 아이.


사춘기 무렵이었던가.

뚜렷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인생의 첫 지점을 지나자 무딘 듯 조금 민감하게 나는 많이 변해가고 있던 것 시기였던 것 같다.

사춘기 때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 딴엔 큰 상처가 됐기도 하고 또, 집에서는 집대로 엄하고 무섭고 가부장적인 게다가 다혈 기질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주눅 듬과 동시에 말수가 줄면서 성격이 급하게 바뀌어 갔다. 이건 마치 장작불에 기름 붓는 격으로 내향성의 깊이는 깊어지고 침묵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던 때다. 지금 생각하면 맘 한편이 짠해지기도 하네. 다그치면 다그칠수록 멀리 도망가는 나의 모습 가득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나의 무지갯빛 청소년기는 흑백으로 그렇게 빛바랜 흑백사진이 되어버렸다.

어떤 정도냐 하면 그냥저냥 40명 되는 반 아이들 중에 그냥 묻혀있는 게 좋았고 튀는 게 싫었고

혼자라도 맘대로 돌아다니고 학교도 안 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시간을 빨리 돌아가라

돌아가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내향인들은 잘 알 거다. 수업시간에 발표라도 할라치면 가슴이 쿵쾅대고 앞이 노래지는 느낌.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발표시킬 때 그날 날짜로 번호를 불러 발표를 시켰는데, 내 번호는 20번. 20일이 다가오면 전날은 잠 못 자는 날이었다. 나는 내가 일어났을 때 같은 반 아이들이 뒤돌아 쳐다보는 게 너무 싫고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대학 졸업 후, 어쩌다 보니 마케팅, 영업 일을 하게 되었지만 용기만 있으면 잘할 거라던 내 용기도 젊은 날의 치기에 불과함이었음을 느꼈다. 그것도 하필 사람도 많이 대하는 직업이었는데 일의 경중을 떠나 사람을 상대하는 게 마음이 너무 지치는 거다. 그러게 직업도 운빨이 있어야 하거늘 지지리도 안 맞는 직업과의 궁합으로  너무 지치던 나날들의 연속이었고.. 그러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맞아.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더니 날 닮은 아이만 하나 내 옆에 생겼을 뿐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심지어 한 예로 아이를 낳고 하필 선택한 조리원도 다 같이 식당에 모여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구조였다. 처음같이 밥 먹던 날 어색함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체 코 박고 후딱 먹고 방에 들어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호르몬의 영향일지도. 주변 출산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조리원서 이유 없이 울었단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조용히 있고 싶은데 아이가 복작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나 홀로 독박 육아로 남는 마음의 고통은  나 혼자 보내는 시간으로 힐링해야만 하는데 난 그게 절실한데.. 그게 안되니 답답해 미칠 노릇. 아이는 내가 쏘는 화살의 화살 판이되었달까.  지구의 내핵까지 파고 들어가는 우주선이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마치 그 우주선처럼 나는 자꾸 안으로 파고들었다.


반대로

다행히 딸아이는 참 활달하다. 호기심도 많고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게 어릴 적 내 모습을 꼭 닮았다. (더 이상 닮지 않기를 바랄 뿐 ㅎㅎ) 그래서 나도 억지로 문화센터도 다녀서 어울려보고

아이가 좋아하니 일주일에 세 개 강좌를 들으면서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아기띠에 배낭을 이고 지고 차라리 바쁜 게 낫겠다 싶었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원하니까 무엇이든 맞춰줘야 하는 게 나의 의무이니까.

아이는 좋은 친구다.

이젠 많이 커서 다섯 살이 되었고 말귀도 알아듣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참고 참으니 머리 위에 작은 무지개는 뜨더라. 어제는 아이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요즘 힘드니까. 힘내" 하는 친구가 하나 생겨서 나는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내향 형님들아... 우린 일단 나가야 한다.)



우리는 둘이 참 많이 다녔다. 내가 말을 많이 받아쳐주지 못하는 소위 사회성이 덜 발달한 엄마이기에 엄마 말고도 세상은 넓고 넓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다. 닥치는 대로 동물원, 박물관, 미술관, 공원 , 백화점 , 쇼핑몰, 카페 (주로 코로나 전) 등등 오만군데 쏘다녔다.

친구가 없어도 어때. 엄마가 있는걸. 둘이만 다니면 어때 네가 행복하면 됐지.


내등 배낭에 한 짐 짊어지고 둘이 소풍 나가듯 그렇게 이 년여를 지냈다.

처음에 이고 지고 나가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울지 내 몸은 힘들지.. 운전도 못해서 택시고 대중교통이라도 타고 다니는 날엔 왜 나왔나 싶고. 혼자 뭐 하는 건가 화도 나고.

그러다가 몇 번 해보니까 외출 노하우도 생기고 아이도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탄력을 받기 시작해 잠시 쐬는 콧바람이 나의 힐링이 되었다.  나는 나대로 밖에서 마음이 풀고 아이는 아이대로 답답함을 해소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할 바에 아이에게 맞춰주는 게 백배 낫다.


우린 거실 책장 앞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다. 둘이 각자 꽁냥 대고 복작복작인다. 나는 그런 소소한 시간이 행복하다. 아이를 껴안고 살 냄새도 맞고 서로 셀카도 찍으며 낄낄대는 우리의 하루가 안정되고 좋다.

그림도 그리고 나는 나대로 책을 고르기도 하고 블로그 글도 쓰고(아이에겐 엄마 공부라고 소개했다ㅎㅎ) 아이도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어디에나 스케치북도 두고 크레용과 색연필도 두었다. 아이가 답답할 때 그림으로라도 표현하게 해주고 싶은 맘.


억지로 나를 변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저 나는 나일뿐. 재빠른 인정과 극복만이 살길이다.

나와 아이가 더불어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내가 좀 살 거 같기도 하고 아이도 자유로운 생각 속에 정상 발달을 할 게 아닌가. ㅎㅎ


그리고 꼭 말하고 싶었던 건, 아이를 키우며 억지로 인맥을 넓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도 많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난 살면서 그렇게 느꼈다. 억지로 만든 인연은 곧 마무리되고 만다. 그 시간에 나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면 추후에 사람들이 생기는 건 따라오기 마련. 가끔 전업주부인데 집에서 뭐하세요?라는 글들을 동네 커뮤니티에서 보곤 하는데, 그냥 나에게 집중하면 되는 것 같다. 책, 요리, 베이킹, 쇼핑, 등산 등등... 뭐가됐든 날 위한 시간은 한두 시간은 꼭 있어야 내가 있음을 느끼고 내 자존감을 지키고 더불어 몰입을 하며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이지 않아도 되니까. 감정 소모가 덜하다.



세상은 참 좋아졌다. 블로그라는 매개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다. 어차피 코로나로 언택트 시대 아닌가.

내가 내성적이라고 내향적이라고 부정적인 마음과 자책감은 나와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조금은 알 것 같다. 힘들면 말해야 하고 싫으면 싫다고 해야 하고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 아이도 그렇게 자라야 한다. 내향적인 성격은 외톨이가 아니라, 내가 만든 단단한 나의 울타리를 잘 지키는 사람 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고 고민하고 있다면 다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내 마음을 한 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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