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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대리 May 29. 2021

'알맹이'없는 하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기만 한 데 왜 나의 기분은 먹먹한지

서른. 4년차 직장인

 어느 새 서른. 그저 시간이 흘러 나이만 먹어버린 나는 오늘도 여전히 서성이는 어른에 불과하다.


 서른이 되면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던 스무살의 기대와 달리 현재 나의 하루는 '알맹이'이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내맡긴 듯이 하루를 지나치고 있다. 누군가는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직장을 신의 직장이라 칭하며, 너는 짤릴 일이 없어 고민이 없겠다는 친구들의 농담과 달리 사실 썩 괜찮은 하루를 살고 있진 않다. 


 매달 다소 쥐꼬리만한 월급을 부여잡으며 셀프-디벨로프먼트(self-development)을 위해 운동, 영어공부, 꽃꽂이 등 많은 것을 도전했지만 여전히 나는 제자리에 머물러있다. 사실 그 모든 취미시간들이 회사를 잊기 위해 업무에서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낸 변명들에 불과했을 뿐 전부 오래가지 못했다. 터널과 같은 취준기간을 버텨내면서 맹목적인 자소서 던지기를 실시하고 그나마 재능이 있었나 싶었던 NCS의 허들을 통과한 결과 공기업에 들어왔지만 결국 나는 다른 의미로 실패했다. 



'이럴려고 나의 이십대를 치열하게 버텨내었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숨에 한 마디가 섞여나왔다. 


 돌이켜보면 이십대의 나는 지금보다 빛나던 사람이었다. 기자의 꿈을 갖고 있던 스무살의 나는 목표의식이 뚜렷했고, 모든 과제와 발표 그리고 시험들에 큰 열정을 부었다. 노력을 쏟은 만큼 점수와 학점은 나에게 과수석이라는 보상을 주었고, 그 보상심리에 취해 나는 못할 것이 없을 거라는 희망만을 품었다. 언론고시를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한 적은 없지만 그 땐 정말 많은 기사와 글을 읽었다. 엄청난 경쟁률과 한 시간의 동문특강으로 나의 꿈은 물거품으로 잊혀졌지만, 그 순간만큼 내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결국 타인의 말 한마디에 한 없이 흔들리는 4학년이 되면서 나의 꿈은 다소 얌전하게 바뀌어있었다. 공무원과 노량진은 생각만해도 끔찍했고, 문과생에게는 특히, 어문계열에게 대기업의 문턱은 한없이 높았다. 현실의 벽 앞에서 내가 쌓아온 것들과 내 성향과 능력치를 고려하여 타협(?)한 지점이 바로 '공기업'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내뱉을 것이다.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취업에 성공했고, 그것도 공기업이면 감사해야하는 거 아니냐.' 


 참 많이 들은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현실은 역시나 기대와 달랐기에, 반짝거렸던 나의 눈은 초점을 잃어 흐릿한 동공으로 바뀌었다. 무수한 매너리즘 속에서 내가 택한 것은 다른 물고기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수족관안에서 얌전히 버텨내는 것이었다. 다소 많은 유휴인력들이 존재하는 조직에서 스스로 터득한 것은 '사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법'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가방 한 켠에 영어 원서 서적이 자리잡는 이유는 나만은 나태함에 같이 퐁당 빠지지 않기 위한 발악이라고 해두자. 


 여섯시 퇴근길. 


 해가 길어졌는지 하늘은 아직도 파란데, 내 기분은 왜 이리도 먹먹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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