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크라비 여행
동생과 공항에서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일부터 5일간 크라비를 나와 함께 여행할 친구가 도착하였다.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 친구는, 종종 내가 떠나는 여행에 즉흥적으로 함께 하였던 경험이 있다.
(5일간의 시칠리아 여행을 취소했다가 하루라도 함께하겠다고 뒤늦게 여행지를 쫓아온 희한한 친구이다.)
늘 무언가를 앞서서 계획하고, “즉흥”과는 거리가 먼 나의 삶에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중한 인연이다. 다른 듯, 같은 우리의 앞에 앞으로 어떤 여정이 있을지 출발 전부터 무척 기대되었다.
방콕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크라비로 이동.
나의 기존 여행 스타일과는 다르게, 여행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보지 않았다.
다만,
1. 해변을 끼고 있으며
2. 조용히 자연 속에서 사색할 수 있는 곳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한적한 여행지인 것 같았다.
공항에서 내리자, 방콕과는 완전 다른 뷰의 마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산의 단면이 끝을 모르게 하늘을 횡으로 종으로 가로지르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를 온갖 열대 식물들이 빈틈없이 메꾸고 있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태국 여행을 떠나고, 이곳을 추억하는지 알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비가 꽤 왔음에도, 불쾌한 습기마저도 잊을 정도로 커다란 이파리 아래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가 아이러니하게도 청량감을 주었다. 크라비의 숙소는 방콕에서처럼 5성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휴양지와 걸맞은 스타일의 숙소와 야외 수영장이 단박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진 출처: 본인 촬영)
비에 젖은 수영장의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내일 비가 오지 않으면, 꼭 이용해봐야지.
크라비 숙소에서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정말 게으른 여행이라고 보일만하다. 이른 아침부터 크라비를 간다고 비행기를 타고 부산을 떨었던 탓에, 빠르게 곯아떨어졌다.
단잠을 자고 일어난 크라비는 생각보다 조용한 마을이었고, 관광객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아무리, 우리가 한적한 곳을 가고 싶다고 이곳에 왔지만, 생각보다 텅텅 빈 길가에 둘 다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의 즉흥적인 친구는 대단히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둘 다 앞으로의 4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난감한 탓이었다.
또한, 크라비에서 새삼 느꼈던 것은, 우리에게 모두 한국어로 인사한다는 것.
독일에 있으면, 아시아인 = 중국인으로 인식해, 니하오 (간혹 가다 곤니찌와)로 인사하는 경우가 많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국적을 단정 짓고, 다짜고짜 특정 국가의 언어로 인사를 한다는 것이 “무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인종 차별로 느끼지는지 아닌지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 염증을 느끼는 나로서는 내가 한국인인지 물어봐준다는 것, 한국어로 상냥하게 인사를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 줄 모른다. 태국이 한국에 대한 높은 인식과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음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런 일상에서의 마주하는 타인의 사소한 태도들이 삶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를 오랜만에 느껴봤던 것 같다.
안타까웠던 것은, 크라비는 거의 관광업에 수입을 의존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을 받지 않으면서,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한창 저녁 식사 시간에도 손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들이 태반이었다. 바, 클럽, 레스토랑 모두 한산했다.
아무리, 도시를 떠나왔다고 했지만, 이렇게 조용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생각하면서도, 언제 여유롭게 사람 없는 바에서 재즈 음악을 들었던가를 떠올리며, 그 무료함과 빈 시간을 부유하였다.
사람 하나 없는 레게 바에서 친구와 듣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신청하고, 타인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여유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 주어진 여유를 마음껏 채운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