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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T 매거진 Mar 31. 2022

<설강화> 역사 논란이 보여주는 것들

드라마를 향한 분노는 정말 과열되었나? 

칼럼니스트 오찬호


드라마의 시대다. 한국인들의 드라마 사랑은 익히 알려졌지만, 넷플릭스에 10부작 드라마가 금요일에 공개되면 토요일에 리뷰가 올라온다. 일부 평론가만이 독점하던 감상평의 영역에도 재야의 고수들이 뛰어들었다.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평을 내놓고 이를 시청한 이들은 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주장에는 거침이 없고 자신감은 가득하다. 모두가 전문가다. 


드라마에 대한 비판도 달라졌다. 강도는 강하고 방향은 다양하다. 시놉시스‘만’으로도 논쟁한다. 문제가 있다면서 방송국에 항의하고 제작진을 추궁한다. 출연진에게 입장을 요구하고 연출가와 작가의 전작을 분석하여 ‘그럴 것 같았던’ 개연성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나아가 방영 자체를 막겠다는 움직임까지, 모든 게 자연스럽다.


일종의 프로슈머(prosumer)처럼 시청자가 대중예술의 생산과 소비 안으로 들어가는 ‘긍정적인 개입’이다.

일각에선 소비자운동의 확장이라고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예술은 마트에 진열된 상품이 아니기에 따져볼 지점이 많다. 망한 제품은 망하면서 끝나지만, 예술은 당시에 망하더라도 후일 명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니 이 ‘개입’이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라면 경계해야 한다.


찢기고 밟히고 찬양받는 것이 예술의 운명이라지만

논란 때문에 드라마 <설강화>(JTBC)를 알게 된 사람이 많을 거다. 방송을 금지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화제였고, 그게 또 기사화되면서 논의는 산으로 갔다가 바다에 빠지기도 하면서 커지고 커졌다. 드라마가 방영되니, 실제로 어땠는지를 놓고 후속 논쟁도 활발했다. 논란이 정당했다, 과했다 등 의견들이 차고 넘쳤다.

‘역사’라는 키워드가 그 안을 관통했기에 더 시끄러웠을 거다.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와,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영로의 사랑 이야기”로 소개되었는데 저 주인공이 하필 북한 사람이라는 게 논란의 시작이었다.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 안기부를 미화했다 등 화난 사람들의 입장은 단호했고 제작진은 억측 말라는 입장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내 생각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면, 드라마가 엉망이라고 ‘그 이유로’ 세상에 등장하지 말라고 할 순 없다는 거다. 평가는 자유다. 하지만 그 평가가 드라마를 규격화할 순 없다. 역사왜곡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말자는 게 아니다. 설사 왜곡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접근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가부장적 남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것이 문제는 아니다. 폭력을 일삼는 ‘그렇고 그런’ 인간을 통해 말할 수 있는 내용은 무궁무진하니까 말이다. 무슨 드라마도다 괜찮다는 게 아니라, 대중예술이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로부터 찢기고 밟히고, 때론 지나치게 찬양도 받는 게 그저 예술의 운명이라는 거다.

표현의 자유는 이를 평가하는 시장의 수준이 상식적이라면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설강화>도 배경을 그렇게 설정한 것에 대해서, ‘납득이 간다’와 ‘이유를 모르겠다’ 사이에서 진저리 나게 언급될 것이다. 그 도마 위에 올라갈 기회를 봉쇄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기서 끝날 간단한 논란은 아니었다. 도대체 역사에 ‘어떤’ 지점이기에 이렇게 난리가 났는지를 짚어야 한다. 왜 역사적 상상이 예술의 필연적 조각으로 이해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공포이고 불안이 되어 드라마 한 편을 이토록 붙들고 흔들었단 말인가. 분노의 결과가 과잉되었다고, 분노의 이유를 과소평가할 순 없다.


1980년대가 가벼운 소재가 될 수 없다는 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 지옥을 애꿎은 운명의 장난처럼 받아들이고 묵묵히 좋은 세상을 위해서 벽돌 하나라도 쌓고자 했던 이들은 여러 상흔을 남기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몸으로 느꼈다.


그 과정은 민주화 ‘폄훼’의 역사와 마주하는 고통이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은 정교했다. 집권 이후 끊임없이 전라도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간첩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일가족 간첩단, 배 타고 고기 잡는 척 지령을 받는다는 어부 간첩 등 버전도 다양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1980년 5월의 광주’를 의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믿을 개연성을 국가가 진두지휘해서 조작했다. 그리고 이런 끔찍한 추론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부유했는지는 익히 알지 않은가. 누군가에겐 끝나지 않을 악몽이 되었으리라. 그 세대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부채의식을 지니며 산다. 그런 미안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잊어선 안 되는 한국의 역사다.


그런데 최근 기득권이 된 586세대를 비판하면서 논의가 지나친 경우를 본다. ‘세상을 위했던 사람들이 왜 변했느냐?’는 정당한 탄식과 ‘저게 운동권 빨갱이의 특징이지!’라는 부당한 비하가 구분되지 않는다. 1980년대 활약상을 우려먹지 말라는 말들이 많아지면서, 차라리 그때가 무탈했었다는 착각도 당당하게 등장한다. 대통령 후보들조차 5공화국의 공을 과와 함께 보자고 습관적으로 말한다. 이것이 정말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일까? 민주화의 정당성을 이야기할 때 민주주의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언급해야 한다면 그건 기계적인 중립에 불과하다. 그 우려가 <설강화>라는 드라마를 매개 삼아 강력하게 분출되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오찬호

사회가 상식적이어야 개인도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회학자. 제주에서 책을 읽고 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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