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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T 매거진 Mar 31. 2022

옷으로 정치를 말하다

시작부터 보통과 다른 브랜드, 파타고니아

 칼럼니스트 박찬용


“못된 놈들을 몰아내는 투표를.”


2020년 어느 옷에 숨겨져 큰 반향을 일으킨 문구다. ‘못된 놈들’이 누구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으나 이 옷의 브랜드와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못된 놈’이 누구인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 옷이 나왔을 때는 도널드 트럼프 임기 말기인 2020년 9월이었고 브랜드는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는 품질뿐 아니라 다양한 주장으로도 유명하다. ‘못된 놈들을 몰아내는 투표를’ 전에도 파타고니아는 여러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정치 메시지를 반바지에 넣기 전에는 페이스북에도 한마디 했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환경단체에 기부를 해왔다. 회사의 모토가 “비즈니스를 제대로 해서 환경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거들고 고무한다”일 정도다. 진정성의 척도 중 하나는 누적 시간이다. 적어도 사회 문제에 관심을 표한 시간을 계산해보면 파타고니아의 진정성은 충분 이상으로 표출됐다.


보통과 다르려면 처음부터 달라야 한다. 파타고니아도 마찬가지다.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로부터 이 모든 게 시작됐다. 이본 쉬나드 역시 광기의 설립자 카테고리에 들어갈 인물이다.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암벽등반에 빠졌다. 요세미티의 여러 산을 등반했고, 1960년대에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며 북한산 인수봉 암벽 등반로인 쉬나드 A, 쉬나드 B 코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암벽 등반을 하기 위해 대장장이가 되어 자신이 쓸 장비를 만들었다. 그 장비를 판매한 게 파타고니아의 시작이다.


이본 쉬나드는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주한미군 복무 중에는 일과 시간에 산에 갈 수 없음이 당연한데도 산에 너무 가고 싶어서 감옥에 갈걸 무릅쓰고 상관의 책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시위를 했다고 한다. 상관은 쉬나드의 보직을 보일러병으로 변경했고, 쉬나드는 아침에 보일러에 기름을 채우고 산을 타다 돌아왔다. 요즘 세상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을 이야기지만 그때는 이런 사람들도 자기 특징과 품질이 있다면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특히 쉬나드와 파타고니아는 1970년대 캘리포니아의 정서를 대변한다. 반권위, 친환경, 동시에 고품질 추구. 1970년대 미서부에는 이런 사람들에게도 돈을 쓰는 젊은 리버럴 중산층이 많이 있었다.


고객 관리도 정치인처럼

어떤 브랜드의 성공은 개인을 넘어선 특정 집단이 구매라는 의사결정을 통해 해당 브랜드를 상업적 호황으로 이끌었음을 뜻한다. 파타고니아의 고향인 미 서부 해안 지역은 20세기 후반부터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있었다. 항공, 소프트웨어 등 신사업이 폭발했다. 경기가 좋아졌으니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으며 대졸 이상의 고급 두뇌들이 세계에서 몰려왔다. 캘리포니아 와인부터 애플 컴퓨터까지, 기존의 업계와 세계인의 삶을 바꿀 물건들이 미 서부 태평양 연안에서 만들어졌다. 파타고니아는 미 서부 리버럴 중산층이라는 거대한 구매층 벨트에 뿌리내린 비즈니스 모델이다.


파타고니아의 용기 있는 메시지 전략은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정말 브랜드 철학. 파타고니아는 사내에 ‘철학 디렉터’를 둘 정도로 비즈니스의 사상적 근본에 집착한다. 동시에 이들의 선택은 모두 철저한 비즈니스다. “못된 놈들을 몰아내는 투표를” 문구를 반바지 사이즈 태그에 넣자 파타고니아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파타고니아는 개의치 않았다. 신념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불매운동 때문에 줄어들 손님만큼 자신들을 지지하는 손님도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적극적인 사회적 입장 표명도 비즈니스 전략이며 광고 캠페인이다. 역풍이 불 수도 있지만 요즘 세상에 역풍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다. 파타고니아는 가장 영리한 방식, 멋진 말을 하며 세상에 생색내는 방식으로 자기 회사를 알리고 있다.



이쯤 되면 파타고니아의 고객 관리는 정치인과 비슷해진다. ‘새로운 손님이 줄어든 만큼 지지층의 지지가 두꺼워진다’는 논리는 유권자 관리와 크게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파타고니아의 리스크는 잠재 신규 고객을 자극할 때가 아니라 기존 고객의 심기를 건드렸을 때 온다. 그 예가 로스트 애로 프로젝트다. 파타고니아는 미국의 기능성 군복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군인들이야말로 극한의 아웃도어 환경에 직업적으로 노출되는 직군이고, 아웃도어 브랜드의 군 협업이나 납품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안 된다. 리버럴은 군대를 싫어하니까. 파타고니아는 몇 년 후 조용히 프로젝트를 끝냈다. 


파타고니아 말고도 여러 브랜드가 철학을 앞세운다. 여성이나 인종, 편견 등에 맞서는 나이키의 선전 전략도 파타고니아와 비슷하다. 이런 브랜드의 리스크 역시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리스크와 비슷해지고 있다. 철학이 불일치하면 리스크가 된다. 나이키 역시 몇 가지 이슈 끝에 심석희 선수가 등장한 캠페인을 철회했다. 철학이 상품화되었으니 철학의 일관성이 깨지는 게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이본 쉬나드는 낭만적인 이름의 자서전을 냈다.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책의 내용은 굉장히 현실적인 비즈니스 지침서다. 이본 쉬나드는 이 책에서 환경 등의 모호한 이야기보다는 품질관리, 고객관리, 생산관리 등 손에 잡히는 기업경영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이게 파타고니아의 큰 저력, 제품력과 철학력(?)이다. 철학을 상품화한다면 고객에게 제품과 철학이 주는 기분을 함께 판매할 수 있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샀을 뿐인데 ‘지구를 살리는구나’라는 기분까지 준다면 이것도 경쟁력 있는 제품 패키징이다.


요즘 브랜드들은 너나없이 철학을 개발해 제품에 씌우는 중이다. 환경과는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뉴욕의 스트리트 브랜드까지 이 흐름에 동참했다. 슈프림 디자인 디렉터였던 브랜든 바벤지엔은 자신의 브랜드 ‘노아’를 새로 만들며 환경 이슈와 공정 거래 등의 이슈를 굉장히 강조했다. ‘스트리트 파타고니아’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시대정신이 되었으니 앞으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질 듯하다.


칼럼니스트 박찬용

각종 에디터. 뉴스레터 ‘앤초비 북 클럽’과 ‘요기레터’를 만들고 다섯 번째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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