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로, 작가 이슬로
ART TECH
어느 때보다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아트테크’라는 이름으로 그림 구매를 재테크의 수단으로 보기도 하고요. 관심은 있지만 어떤 그림을 구입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을 위해 <SRT매거진>이 요즘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서울미술관을 건립한 안병광 회장은 “그림 한 점을 소장한다는 것은 인생에 여유와 여백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상에 예술 한 점, 그리고 여유한 점을 들여놓는 것은 어떨까요?
즐거움, 다정함, 웃음. 이슬로 작가가 만드는 세상은 이런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성종윤
“아~ 이 그림!” 이슬로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이런 탄성이 먼저 터져 나올지 모른다. 아이돌 오마이걸의 앨범 재킷, 노티드 도넛의 패키지 등으로 우리 눈에 친숙한 바로 그 그림이라서다. 그에게는 내로라하는 브랜드들로부터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사랑하니까’.
화사한 파스텔 색감, 미소를 주고받는 꽃과 동물들과 소녀, 몽글몽글 구름을 닮은 부드러운 곡선들로 가득한 이슬로의 작품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특유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의 그림은 판타지의 세상이지만 허구의 세상은 아니다. 일상에서나 작업에서나 즐거움을 제1의 동력으로 삼는 이슬로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의 삶과 작품이 같은 정체성을 띨 때, 우리는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첫 작업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언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학원을 다닐 수 있는 나이부터 쭉 미술학원에 다녔고요. 당연히 미술대학 진학을 생각하면서 입시를 준비했는데, 그게 저만의 작업을 시작하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소위 ‘입시 미술’에서 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100% 내가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서 쉬는 시간을 보냈거든요. 컴퓨터 모니터, 가방, 신발에다가 마음대로 색칠하고 낙서하곤 했죠.
경쟁의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해소하는 창구가 저에게는 그림이었죠. 동시에 제 그림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해서 싸이월드 시절부터 꾸준히 업로드를 했어요. 후에 인스타그램으로 플랫폼을 옮겼고요. 그러면서 제 작업을 꾸준히 지켜봐 주는 분들이 생겼고, 지금 여러 활동을 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도 퇴근 후에는 저만의 작업을 계속했어요. 그렇게 쌓인 작업들을 모아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핸드메이드 페어’에 나가게 됐죠. 누군가에게 팔 생각으로 갔던 것은 아닌데 첫날 들고 간 작품이 모두 판매되어버렸어요. 급하게 부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의도치 않게 ‘라이브 페인팅’을 하게 되었고, 많은 분이 찾아와 주셨죠. 이때 브랜드 관계자분들의 협업 요청을 많이 받았어요. 한동안 직장 생활과 개인 브랜드 디자이너로서의 작업을 병행하다가,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는 시점에 브랜드 매장을 열게 되었죠.
노티드 도넛은 이슬로 작가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예요.
SNS로 제 작업을 오랫동안 지켜봐 오시다가 협업 제안을 주셨어요. 원래는 매장에 걸린 거울에만 그림을 그릴 예정이었는데, 마음에 들어 하셔서 패키지와 매장 외관에도 그림을 그리게 됐죠. 처음 작업할 당시에는 노티드가 폐업을 생각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이후에 성공을 거두면서 저 역시 시너지를 얻고 있어요.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작가로서의 작업에는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나요.
제 그림과 어떤 브랜드가 만났을 때 새로운 화학작용을 하듯이 새로운 창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어느 매체든 균일한 작품을 구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들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재현이 아니라 제 붓이 가죽에 닿았을 때, 종이에 닿았을 때 다른 물성과 만나 질감 특유의 새로운 느낌이 나오는 게 재미있어요. 같은 캔버스라도 크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고요. 수익 부분에서도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죠. 그래서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정말 손이 가는 대로 그려요. 물감도 오원색만 짜고, 계속 섞어가며 그려요. 염두에 두는 게 있다면 전체 구조와 균형이에요.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부분이 여기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즉흥적인 작업인데도 작업 간에 공통점이 생기더라고요. 그림 속 캐릭터들이 모두 걷고 있고, 시선은 반대 방향을 향하고요. 어떤 이유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을 담은 그림을 ‘섬웨어 언노운’이라고 정했어요.
맞아요. 털동물은 이슬로 작가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입니다.
제가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캐릭터인데, 얼마 전 어릴 적 사진을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제가 그 친구들과 똑 닮은 인형들을 안고 있더라고요. 그전까지는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오히려 나에게 집중하면서 무의식 중의 오랜 기억을 꺼낸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슬로 작가는 그림 속 꽃과 동물을 ‘친구들’이라고 부른다작가 이슬로의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인가요.
즐거움이요.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요소예요. 만약 뚜렷한 목적이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노동처럼 느껴져서 즐겁지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 계획 없이, 저 빈 캔버스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신나거든요. 그래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맛있는 것도 잘 챙겨 먹는다거나 하면서요(웃음). 일부러 작업실을 여러 곳에 만들어두었는데, 언제든지 기분 좋을 때 작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예요. 제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마 제가 정말 기분 좋은 상태에서 즐기고 재미있어하면서 작업하는 그 에너지가 전달되어서인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것이 있다면요.
즉각적인 감동이에요. 저 역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연작’을 처음 봤을 때였죠.
‘어쩌면 저렇게 물방울을 똑같이 그렸지?’ 하면서 정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런가 하면 교과서에 실린 명화를 실제로 보자마자 눈물을 흘린 적도 있고요. 색감이 주는 감동이 대단했거든요. 저도 누군가에게 즉각적인 감동을 주고 싶어요. 삶에는 어두운 면이 많고 저 역시도 그렇지만, 저 하나만큼은 이 기분 좋은 에너지에만 집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을 보자마자 좋은 기분을 느낀다면 좋겠어요.
이슬로의 작품을 소장하는 이들이 어떤 느낌을 받기를 원하나요.
작가가 누군지 어떤 화법인지 떠올리기 전에, 보자마자 ‘예쁘다’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아침에 눈떴을 때 예쁘고 귀여운 것이 눈에 들어오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즉각적인 행복을 주는 것에 집중해보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