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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T 매거진 Mar 04. 2022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드라마 ‘퀸’들의 컴백, 그 성적표는?

칼럼니스트 정시우


누군가는 ‘퀸들의 귀환’이라 했고, 누군가는 ‘여인 천하’라 했다. 전지현부터 고현정·이영애·송혜교로 이어지는 톱여배우들의 컴백에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대부분 작품이 종영하거나 종영을 앞둔 현재 반응이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다. 저조한 시청률을 두고 ‘부도난 흥행수표’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으로 시청 패턴이 다양화된 만큼 시청률만으로 드라마와 배우를 평가하는 건 한계가 있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들을 조명해봤다.


전지현, 산업을 움직이는 힘

전지현보다 연기를 잘하고, 예쁜 여배우가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압도적인 스타로, 텐트폴 영화(영화산업에서 지지대 역할을 하는 흥행 기대작)를 책임질 수 있는 주역으로 군림하는 여배우는 전지현 외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는 그냥 스타가 아니라, 스타 위에 존재하는 초특급 스타다.


이를 증명하듯 <지리산>은 전지현 복귀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해외에 선판매됐고, 광고도 빠르게 팔렸다. 하지만 스타의 권력은 뒤집으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지리산>만큼 작품보다 PPL이 이슈를 선점한 경우는 드물다. 대중의 시선은 모순적인 면이 있어서 동경하는 동시에 냉엄하다. 작품이 잘되면 '완판녀'가 되지만, 안 되면 원흉이 된다. 자본을 끌어모으는 힘을 지니는 대신 위험부담도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극이 흥미로우면 뜬금없는 PPL도 눈감고 보는 게 시청자지만, 전지현과 김은희 작가의 만남은 기대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전지현이 산업에 미치는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리산>은 그녀의 존재감을 역으로 확인시키기도 했지만. 그러나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국립공원 레인저라는 직업을 통해 장르의 보폭을 넓힌 점은 전지현의 다음 행보를 궁금하게 하는 부분이다.


송혜교, 멜로 여신의 생명 연장을 꿈꾸며

멜로와 송혜교의 조합은 이제 식상하다는 평이 많다. 그러나 송혜교가 같은 장르를 되풀이하는 것이 정말 흠일까. 그는 멜로에 최적화된 재능이 있는 배우고, 여전히 독보적으로 아름답다. 작품의 유치한 대사와 지나치게 통속적인 전개가 아쉽긴 하지만, 이 역시 송혜교에겐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다. 돌이켜보자. 그녀를 톱스타 자리에 올린 <가을동화>와 <풀하우스>도 통속적이고 빤한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이들 드라마가 큰 사랑을 받은 데에는 통속성을 무장 해제시키는 송혜교의 힘이 있었다.


<태양의 후예>의 오글거리는 대사 역시 송혜교를 통과하며 흥미로운 리듬을 얻곤 했다. ‘멜로의 여신’이란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왜 식상하다는 느낌을 줄까. 그것은 장르가 아니라 ‘연기 톤’과 ‘캐릭터’의 반복에 있지 않을까. 하나의 장르를 꾸준히 잘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일을 지금껏 잘해온 송혜교가 이 분야에서 오래도록 생명 연장하길 바라는 입장에서, 이번 작품을 통해 지난 몇 년간 반복한 연기 톤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현정, 멈추지 않는 모래시계

지우고 싶었던 과거가 어느 날 불쑥 걸어 들어와 과거를 청산하려 한다면? <너를 닮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의 만남으로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또 다른 여자의 팽팽한 대립을 다룬다. 여기엔 치정과 배신과 타락과 복수가 뒤엉켜 있지만 소위 막장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너를 닮은 사람>은 사뭇 문학적이다. 사건보다 사건 안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에 더 관심이 많고, 비유도 강하다.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죄의식을 파고드는 집요함도 있다. 이런 드라마는 배우들에겐 고난도의 연기를 요구한다. 특히 본심을 숨기고 사는 정희주(고현정 분)는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 쉽지 않다. 그러나 고현정의 연기는 이 모든 부담을 이겨내고, 극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다만, 고현정 하면 떠오르는 <모래시계>의 윤혜린, <선덕여왕>의 절대 권력자 미실, <대물>의 여자 대통령 서혜림 캐릭터만큼 매력적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고현정의 연기력과는 별개로 작품 톤이 너무 무겁게만 흐르면서 시청자의 진입장벽을 높인 부분이 있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매력이 충분히 이야기될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


이영애, 밀당의 귀재

“이상한 드라마여서 <구경이>를 선택했다”는 이영애의 말은 덜어낼 부분이 없다. <구경이>는 정말로 이상해서 더 끌리는 드라마였다. 시청률은 부진했지만,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순위에선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마니아 팬층도 확보했다. 


드라마가 내세운 제1의 매력 요소는 캐릭터다. 이영애는 게임중독에 시달리는 은둔형 외톨이 형사를 능구렁이처럼 해치웠다. 사실 이영애는 ‘산소 같은 여자’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렇지, 도전적인 선택을 자주 해온 배우다. 세련된 이미지를 뒤로하고 선택했던 <내가 사는 이유>의 작부 역할이 그 출발. 이후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희대의 작업 멘트를 영화사에 길이 남겼고, <대장금>으로 넘어가 단아한 수라간 궁녀로 안면을 바꿨다. 


장금이로 아시아의 별로 올라섰을 때도 이영애는 안전한 이미지를 반복하는 대신,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로 뛰어들어 ‘천사 금자’와 ‘마녀 이금자’라는 공존 불가능해 보이는 양극단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 <사임당> 이후 4년 만에 선택한 B급 감성의 <구경이> 역시 이러한 행보의 일환. 그러니까, 이 배우는 ‘산소 같은 여자’ 이미지를 유려하게 밀고 당기는 ‘밀당의 귀재’다. <구경이>는 이영애가 자신이 여전히 확장 중임을 천명하는 작품이다.


칼럼니스트 정시우 

‘놀 궁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일하기 위해 열심히 노는, 자발적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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