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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T 매거진 Mar 04. 2022

'올림픽'이 브랜드라고?

위기와 리스크를 넘고 넘어 성공한 브랜드가 되기까지 

칼럼니스트 박찬용


올림픽은 ‘브랜드’다. 이 말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최고의 재능들이 국가의 명예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공정하고 아름다운 경쟁. 그 모든 순간이 전인류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올림픽이 한낱 브랜드라니. 올림픽 정신에 대한 모독 아닌가?


그러나 이런 생각이야말로 올림픽 브랜딩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CES 같은 전자쇼나 월드컵 등의 이벤트는 모두 각자의 목적과 수익을 위해 만들어진 이벤트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은 세계의 이벤트 브랜드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올림픽의 팬은 미국에서만 3270여 만 명이 있다고 집계되며 올림픽 생중계를 전 세계에서 지켜보는 팬층은 수억 명 단위로 추산된다. 올림픽은 독자적인 파트너 제도를 통해 글로벌 기업에게서 수익을 올리고, 전 세계의 콘텐츠 기업에게 값비싼 중계권료를 팔고, 특정 도시의 브랜딩에 기여하며 전 세계의 도시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올림픽의 영향력은 1988년과 2018년 올림픽을 개최해본 한국 사람들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느 브랜드처럼 올림픽도 승승장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위기와 리스크를 딛고 일어나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한 것이다. 보통 남의 역사는 지루하기 마련이지만, 올림픽 역사는 꽤 흥미로우니 잠시 짚고 가자. 올림픽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올림픽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라고 하지만, ‘현대의 올림픽’에서 상징성을 빼면 그리스의 실질적인 지분은 거의 없다. 올림픽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건 영국과 프랑스다.


일찍이 영국은 스포츠로 대표되는 신체 단련과 엄격한 규율을 중요하게 여겼다. ‘워털루 전투의 승리는 이튼의 운동장에서 시작됐다’는 격언이 이런 정신을 대표한다. 1815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격퇴한 영국의 장군 아서 웰링턴이 남긴 말이다.


어설픈 스타트업, 초기의 근대 올림픽

이렇게 영국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스포츠를 가슴 깊이 부러워한 프랑스 귀족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쿠베르탱,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다. 그 역시 스포츠가 국력의 근간이라 믿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근대 영국의 시스템을 섞어 올림픽을 19세기 말에 부활시키려 했다. 지금이야 대단해 보여도 쿠베르탱이 살아 있을 때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남다른 브랜드가 태어날 때는 으레 광기의 창립자가 등장한다.


위대한 브랜드가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초기에 고전(苦戰)한다는 법칙이다. 초기 근대 올림픽은 스타트업에 가까웠다. ‘대기업스러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는 얘기다. 초기 올림픽에서 3위는 아무것도 못 받았다.

예산이 없었다. 종목도 혼란스러웠다.


예를 들어 ‘열기구 타기’는 정식 종목이었는지, 이벤트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기록을 재는 방식도 허술했다. 육상의 1등 기록은 맨 먼저 도착하는 선수가 가슴으로 케이블을 치면 그 케이블에 연결된 스톱워치가 기록을 재는 수준이었다. 2위나 3위 기록은? 없다. 이런 걸 보다 보면 사업이든 혁명이든 브랜딩이든 기획보다 실행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개최 측도 할 말은 있다. 초기 근대 올림픽은 철저한 아마추어리즘의 산물이었다. 여기서의 아마추어리즘이란 전업 운동선수가 아님을 뜻한다. 실제로 초기 올림픽에는 잠깐 그 지역에 와 있던 사람이 출전하거나(심지어 우승까지), 혹은 본업이 의사인 선수가 한 종목에 여러 번 출전해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끊임없이 변해온 올림픽의 역사에서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국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이다.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나 테니스 투어를 떠올려보라. 윔블던에서 페더러와 조코비치가 승부를 펼칠 때 그걸 스위스와 세르비아의 대결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올림픽은 다르다.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대표하는 팀이 국가 간대결을 벌인다’. 이것이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종합 선물세트를 관통하는 핵심 규칙이자 원동력이다. 그러니 각 국가 역시 자국의 브랜딩을 위해 올림픽에 신경을 쓴다.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 견고하다. 올림픽에서 높은 합산 순위를 기록하는 국가들의 구성이 강대국 그룹과 별 차이가 없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로의 리스크도 발생한다. 국가 간 경쟁을 브랜드 삼다 보니 올림픽은 필연적으로 외교의 기싸움장이 된다. 냉전 이후 올림픽은 긴장된 순간과 슬픈 사고도 많았다.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은 개최국과 당시 사정에 따라 여러 번 불참했다. 미국 민권운동이 강조되던 당시에는 메달을 딴 미국 흑인 선수들이 메달 수여식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대회는 테러 사건이 일어난 1972년 뮌헨올림픽이다. 팔레스타인의 검은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해 선수를 납치했고, 탈출 작전 과정에서 인질이던 이스라엘 선수 9명이 전원 사망했다. 놀랍게도 IOC는 추도식 거행 후 대회를 진행했다.


올림픽이 지금의 위용을 갖춘 비결은 마케팅과 기술 이용이다. IOC는 올림픽의 성공적인 구축을 위해 최고 수준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세계의 각 도시 및 글로벌 기업을 광고주로 영입하는 전략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더 중요한 변화는 위성방송 기술이다. 위성방송 시대가 열려 전 세계인이 올림픽 중계를 생방송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IOC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중계권을 판매하며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재능들이 벌이는 아름다운 경쟁이 올림픽의 콘텐츠라면, IOC가 콘텐츠 플랫폼 겸 이벤트 에이전시 겸 올림픽 브랜드 매니저 역할을 한다. 그만큼 많이 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올림픽 유행이다. 2010년 미국 조사에 따르면 올림픽은 스포츠 이벤트의 긍정적 인식 중에서도 ‘어린이에게 긍정적 이미지 전달’과 ‘영감 부여’ 면에서 압도적인 1위다. 100년 동안의 단련 끝에 글로벌 톱 이벤트 브랜드가 된 것이다.


잠재 위기가 없는 브랜드는 없다.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곧 시작될 2022 베이징올림픽은 신냉전시대의 징후처럼 이미 주요 국가의 불참 선언이 이어진다. 그 사이에서 올림픽이 어떻게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까? 그걸 지켜보는 것도 올림픽을 보는 재미 중의 하나가 될듯하다.


칼럼니스트 박찬용

각종 에디터. 뉴스레터 ‘앤초비 북 클럽’과 ‘요기레터’를 만들고다섯 번째 단행본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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