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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T 매거진 Mar 31. 2022

배우에서 감독으로, 별들의 변신

메가폰을 잡은 배우가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이유들. 

칼럼니스트 정시우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직접 만드는 것이다.” 배우이자 평론가이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였던 프랑수아 트뤼포가 한 말이다. 그의 말을 마음을 품은 이들이 많았으니, 여기엔 배우들도 포함된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던 배우들이 ‘디렉터스 체어’로 자리를 옮기는 풍경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이젠 감독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방은진을 비롯해 유지태·문소리·하정우·김윤석·정진영 등 연기와 연출을 오가는 배우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나 올겨울은 배우 출신 감독들의 작품이 줄지어 쏟아진 시즌으로 기록될 것이다. 조은지가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것을 시작으로, 유태오가 팬데믹 선포로 벨기에의 낯선 호텔에 고립된 자신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로그 인 벨지움>을 선보였고, 박정민·손석구·이제훈·최희서는 <언프레임드>라는 옴니버스 영화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왓챠를 통해 공개하며 ‘감독님’ 타이틀을 부여받았다. 연출은 아니지만, 정우성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며 영화 완성에 크게 기여했다.


2022년에도 배우들의 연출 도전은 이어진다. 가장 이목을 끄는 건 ‘충무로 단짝’ 정우성과 이정재다. 20여 년 전부터 장편 데뷔에 대한 의지를 공공연히 밝혀온 정우성은 <보호자>를 통해 드디어 꿈을 이룬다. 작품은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영화로 후반 작업이 한창이다. 이정재는 영화 <헌트>로 감독 타이틀을 단다. 제작비 100억 원규모의 대작이다. 안기부 에이스 요원이 남파 간첩 총책임자를 쫓으며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첩보 액션 영화로, 정우성·주지훈·김남길·박성웅·조우진 등이 출연한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배우들이 카메라를 드는 이유

배우들이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작열 높은 배우들에게 연출은 자기 목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탐나는 세계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작품의 디테일들은 감독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 배우 입장에서는 주도권을 잡고 관객과 소통해보고 싶은 열망이 생기기 쉽다.


여러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쌓은 경험이 연출에 좋은 밑천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도 연출 행(行)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익힌 현장 시스템과 촬영 메커니즘은 배우 출신 배우들에게 그 자체로 유용한 자산이 된다.


스타시스템의 성장과 이로 인한 스타들의 영향력 확대 역시 배우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더 열어주는 분위기로 작용한다. 영화에서 스타는 투자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스타와 좋은 관계를 맺거나 오랜 파트너십을 이어가기 위해 투자사가 배우에게 연출을 제안하는 경우가 이렇게 발생한다. 왓챠를 통해 공개된 <언프레임드>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 플랫폼과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는 현상도 연기와 연출의 경계를 지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창구의 다양화는 앞으로 이러한 흐름을 더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출연 기회가 줄어들자 직접 발 벗고 나선 경우도 있다. 


차인표가 대표적이다. 상업영화 대본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자 차인표는 영화를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었는데, 넌버벌 코미디 팀인 ‘옹알스’의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 도전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옹알스>가 그렇게 차인표 연출·제작으로 세상에 나왔다. 문소리는 대학원 시절 과제용으로 만든 3편의 단편이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옴니버스로 묶여 극장 개봉하면서 공식 감독 타이틀을 단 특별한 케이스다. 단순한 과제용이라는 편견으로 감상한다면, 영화의 완성도에 미안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연출 도전에 대해 문소리는 “연출은 평생 할 영화에 대한 애정을 더높이는 방법”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프랑수아 트뤼포가 밝힌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과 일맥상통한다.


배우 출신 감독들이 지닌 미덕

그렇다면 배우 출신 감독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일단 그들에겐 돈으로 살 수 없는 막강한 섭외력이 있다. 톱스타 정해인을 <언프레임드>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정해인과 연출을 맡은 이제훈의 두터운 친분 덕이다. 영화 <태양이 없다>(1999) 이후 21년 만에 정우성과 이정재의 재회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 또한 같은 이유다. 이정재는 <헌트>를 준비하면서 절친 정우성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정우성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하정우의 <허삼관>처럼 스타 배우가 자신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것 역시 투자사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그림이다.


배우 출신 감독이나 제작자가 지닌 또 하나의 미덕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연기자에 대한 이해’다. <고요의 바다>에 출연한 배우 유희제는 “제작사 대표가 배우여서 그런지 몰라도 배우 복지가 정말 좋았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외적인 부분 외에도 배우 출신 연출자/제작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배우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감정을 끌어내는 데 용이하다. 이에 대한 좋은 사례는 <미성년>을 연출한 김윤석. 김윤석은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들은 물론, 잠깐 등장했다 퇴장하는 조·단역 배우들에게도 개성을 달아주는 성취로 극을 풍성하게 했다.


물론 배우들의 감독 겸업에 대한 시선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연기를 돌보다가 전체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적잖이 발견되기 때문. 연기와 달리 연출은 ‘후반 작업’까지 책임감 있게 끌고 가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 출신 감독 가운데 만족스러운 흥행 성적을 거둔 사례가 없다는 점 역시 아직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이는 벤 애플렉·그레타 거윅·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배우 출신 감독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더욱 아쉬운 부분. 올해에는 연기자 출신 감독의 성공 사례가 한국에서도 나올지, 영화계 안팎의 관심이 모아진다.


칼럼니스트 정시우 

‘놀 궁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일하기 위해 열심히 노는, 자발적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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