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서막
나는 속된말로 약팔이다.
조금 상투적인 말로는 대한민국 의약품 시장의 일선에서 영업사원들과 의료진에게 정확한 약물정보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제약회사 마케팅 PM(Product Manager)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13년 제약회사 품질보증팀에서 근무하기를 시작해서 영업, 그리고 지금의 마케팅 PM에 정착하기까지 제약회사에서 만 8년을 넘게 근무했다.
품질보증팀에서 근무했던 첫 직장의 2년 안되는 시간동안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대학 선후배 관계로 졸업 후의 인연으로 연인이 되었지만, 아내는 서울에서 나는 그당시 세종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제약회사 특성상 공장이 대부분 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어쩔수 없이 나는 수도권 내 직장으로 자리 잡아야 했고 영업을 거쳐 지금의 마케팅 포지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제약회사에서만 근무하며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의약품의 기획, 생산, 영업, 마케팅 그리고 CS까지 모든 내용을 일정부분 이상 알고 있었고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한 만큼 생산부터 판매까지의 흐름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때양볕이 내리쬐던 2016년의 여름, 친구가 갑자기 창업을 한다고 했다. 내 또래 주변사람이 처음으로 사업이란 걸 해보겠다는 얘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꼬치꼬치 캐물어 그러면 안된다고 훈수를 두고 싶었지만 꾹 참고 왜 시작하게 됐는지와 왜 화장품인지를 물었다.
자세한 내막은 얘기안했지만 그 친구의 아내가 화장품 만들어 팔고 싶다고 했다. 속으로 참 무모하다 생각했다. 아니 잘 알지도 못하는 화장품의 원가를 들먹이며 쉽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줍지 않은 짧은 지식으로 훈수질하고 싶었던 내 속내의 배경지식은 바로 우리 아내에게서 건내 받은 정보들 이였다. 아내는 화장품회사 상품기획업무를 오랫동안 해왔다. 서로 업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모든 상품이 단순히 만들어지고 쉽게 팔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화장품을 안만들어본 사람이, 그걸 만들어서 팔겠다고? 하. 한숨만 나왔지만 좋은게 좋은거라고, 입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던 많은 말들과 함께 묵혔다.
그리고 무모하단 생각의 한편으론 그 친구의 용기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친구 잘되길 빌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만날 때 종종 가벼운 안부와 함께 사업에 대해 물었었다. 그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직장생활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했다. 그래도 니 사업하니깐 부럽다 라고 했지만 사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회사생활이 그 친구의 관심사항이 아닌 것 처럼.
그러다 2019년. 무려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동안 난 회사생활에 지쳐 있었다. 마치 사회 부적응자라도 된 듯 2년 이상 한 회사에 머물지 못하는 병이 생겨버릴걸까. 직장 내 정치, 상급자에 대한 과도한 예우, 보고의 보고를 위한 보고서, 삼척동자가 와도 아니라고 말할 일들의 일상화, 이젠 그만좀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회식문화 등등 서술하기도 많은 것들이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그 답은 누구나 아는 것 처럼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이 아무런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뭘해야 할까. 막연하게 사업이 떠올랐고
그때부터 내 생각엔 사업이란 것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배운거라곤 의약품을 제조단계부터 세일즈 하는 일, 이 것밖에 없었다. 마케팅부서에서 영업과 유통을 배웠고, 품질보증부서에서 생산과 개발관련 업무에 대한 정보는 있었지만 관청주도사업인 제약업에선 내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전문의약품은 약사법상 광고가 불가하고 인터넷 판매가 불가하기 때문이였다.
아 있긴 있었다. 도매상을 차리면 되지만 나에겐 내 품목을 팔아줄 거래처가 없었고, 의약품을 구매해서 재고자산으로 쌓아둘 자금도 없었다. 그럼 뭘 해야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때 즈음 불연듯 떠오른게 화장품 사업을 한다는 그 친구였다. 당장 전화해서 인천 송도에 있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놀랐다. 아니 부러웠다.
지난 3년간 난 제약회사 마케팅 부서의 중간관리자급이 되어 있었고, 그 친구는 약 10명정도의 직원을 지닌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아 그동안 난 뭘한걸까'. 약간의 자책과 큰 부러움을 몰래 숨기고 지나가다 들렀다고 얘기하며 사업의 근황을 물어봤다. 철저히 내가 너랑 똑같이 하고 싶어서 라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으며 말이다.
하지만 어떤식으로 파는지, 시작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답은 심플했고 친구가 내게 지나가며 했던 얘기들을 더듬어 추억하던 그 사업구조가 맞았다. 시작은 파워블로거에게 공동구매 형식으로 마스크팩을 판매했고 그러다 사업이 커져 지금은 인스타그램 공동구매를 지속적으로 한다고 했다. 심플한 답처럼 심플하게 느껴졌던 사업구조였다. 나도 충분히 사장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순간 스쳤다.
제약업으로 따진다면 위탁판매 아닌가? 화장품 제조? 기획? 그거 아내가 매일 하는일 인데?
이 친구와 친구의 아내는 화장품의 '화'자도 모르는데 성공했는데 나는 제약업의 '마케터', 아내는 현업 '기획자'인데? 시장분석만 잘하면 충분하겠는데?
아. 이거다 싶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을꺼 같았다. 그 날 바로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우리도 도전해보자고.
돌아오는 답변은 당연히 'NO' 였다. 리스크를 싫어하는 아내는 주식도 펀드도 싫어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소소하게 평범한 삶을 추구했던 아내에게 패가망신의 지름길 이였겠지. 그런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2019년 01월부터 시작해서 03월까지. 사업계획서를 PPT로 만드는 나름의 열정(?)이 통했는지 도전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었지만 전재조건도 있었다. 조건은 사업이 망할 수 있으니 한명은 현 직장을 유지하자였고 그 때 상황상 난 직장생활과 사업을 병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최종적으로 우린 2019년 05월, 사업자를 내고 본격적으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