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하기 전에 마시는 김칫국이 미치는 영향
2019년 05월, 오후 5시 30분이면 모두가 떠나는 사무실에 앉아 조용히 그리고 몰래 사업자등록을 했다.
평소 야금야금 찾아놨던 정보들과 한시간 정도의 웹서핑을 통해 불꺼진 사무실에서 내 사업의 첫번째 과업을 달성했다. 온라인 유통을 위한 통신판매업신고, 화장품 판매를 위한 화장품책임판매업까지 모두 해결했다.
계획한 일들을 모두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린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내 몸만큼이나 평소보다 더 오래 일한 PC를 쉬게해주고 밤 9시쯤 불꺼진 사무실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새로웠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신기한 감정들에 무척이나 생경했다. 늦게까지 일을 한 뒤 돌아오는 한숨섞인 푸념이 아니라 내일이, 미래가 보였다. 그 미래는 사회생활의 매운맛을 없애줄 우유였고 앞으로의 물질적 달콤함을 만들어줄 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실패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였다. 아니 사업을 구상하는 순간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들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들로 가득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이 있었다.
사업을 하게된 이유. 목적.
수직적이고 고압적인 직장 생활의 염증이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린 스스로에겐 탈출구가 필요했다. 이유모를 히스테리를 부리는 상사가 싫었고, 자기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한 임원이 싫었고 부모로 부터 물려받아 아무것도 모르는 오너가 싫었다. 그 사람들속에서 그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이 싫었다. 탈출하고 싶었고 그 탈출구는 사업이였다.
2019년 3월 아내와 함께 사업을 결심하고 사업을 구체화하기 시작하면서 수직적인 인간관계의 탈출구라는 목표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업계획이 마찮가지겠지만 장미빛 미래의 가정으로 인해 직장 급여수준보다 더 높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조직에서의 자유로움'이 어느덧 '경제적 자유로 인한 시간의 자유'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시작했고 그 생각은 마치 진화하듯 '경제적 부유함'으로 바껴져 있었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지만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었다. 정말 그게 시작이자 끝이였다.
그래도 이 망상의 순기능은 있었다. 직장생활과 사업을 병행하는 현실 속에서도 망상속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피로를 보상받곤 했다. 당장이라도 남들이 얘기하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미 상상만으로 부자가 된 것만 같아 미리 행복했다.
이정도 매출이면 사무실은 어디로 할까. 차 리스는 뭘로 하지. 아 국산차는 타기 싫은데 비용이 더 들더라도 외제차를 해야하나. 이정도 마진에 월 예상 판매수량이 이정도면 금방 이사가겠네? 제품 나오고 3개월안에는 그만둘 수 있겠다.
이 따위 생각밖엔 안들었다. 허황된 꿈은 더 큰 망상으로 번져 갔고 어느덧 망상 속 내 모습은 성공한 스타트업(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자영업 레벨이겠지만) 대표였다. 신문기사 속 회사 CI를 배경으로 팔짱을 낀 당당한 그 모습들처럼.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키다보니 사업에 대한 청사진만 그렸다. 스타트업 5년 생존율이 30% 미만이라는데, 난 그 30%라고 스스로의 최면에 빠져 있었다. 믿음과 확신이 성공으로 갈 수 있는 열쇠라고 누가 말했는 진 모르겠지만 잘못 끼워진 단추가 올바르다 믿었다. 그 성공에 대한 과신과 자만 속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실제로 진행하는 동안 망상속 나는 국산차를 타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독일 3사 외제차를 보유한 사업가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실패라면 실패라 할 수 있는 이 경험의 씨앗은 그 때 뿌려지지 않았을까?
다시 사업을 도전하는 입장에서 절대 돈을 쫓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순간,
지난날의 실패가 어디서 부터 였는지 꼽으라면 난 글러먹은 사업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