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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맥스 Jul 20. 2021

이제 시작? 이미 시작 : 나이듦

나의 자궁 이야기

지금 여기는 마치 우주의 한 공간 같다. 

영화에서 보듯 수많은 별들이 점점이 찍혀 있고, 시간도 안 보이고 공간도 안 보인다. 컴컴하지만 나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다. 

나의 얼굴은 긴장도 기쁨도 슬픔도 안 보인다. 나의 몸은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아래위를 분간할 수 없는 그곳에서 수영장 튜브 속에 머리와 다리를 걸친 듯 둥둥 떠가고 있다. 갑자기 나의 다리 사이에서 페트병 로켓이 날아가듯 뭔가가 쑥 빠져 날아간다. 어.. 이것은 주먹만 한 자궁이다. 자궁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 탈출이다 ‘

 곧이어 방광이 슝 탈출한다. 시간 차를 두고 나의 신장이 날아간다. 창자의 끝에는 위와 식도가 사이좋게 붙어있다. 폐 2개가 짝 맞춰 날아가고, 심장과 함께 교과서에 보던 작은 장기들이 슉슉슉 러시아워를 이루듯 알차게 빠져나가고 있다. 

음. 이게 무슨 일이야? 나의 얼굴은 뭐지? 아무 표정이 없네? 이 상황을 모르는 건가?

둥둥 떠다니던 몸에서 더 이상 탈출할 것이 없어진 상태가 되자 서서히 바람이 빠지기 시작한다. 어린 아이가 다 불고서는 묶지 못해 놓쳐버린 풍선처럼. 슉슉슉.

그때 뭔가가 나타난다. 뭔가가 슉슉 달아나던 나를 붙들고 다리 사이의 질에 펌프를 대고 바람을 넣기 시작한다. 음, 나의 몸은 서서히 천천히 단단해진다. 피부가 아주 매끈해질 때까지 바람이 들어간다. 내부의 모든 장기들이 빠진 자리를 공기가 채워주고 있다. 이제 나는 다시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이번엔 웃는 얼굴인데? 자유를 찾았다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우주의 어느 공간을 유영하기 시작한다. 다 비웠지만 아 개운한 기분.     

그 순간 잠에서 깼다. 아래 부분의 축축한 느낌이 먼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얼른 일어나 살펴본다. 아이보리 리넨 소파에 빨간 장미가 피었구나... 딱 장미 송이 크기의 선명한 핏자국을 내려다보며 하아. 한숨만 나왔다. 이런 제길...

지금 방에서는 자퇴한 아들이 잠을 자고 있고, 집안일을  마친 나는 점심 식사 후 잠시 티브이를 보다가 나른하니 잠이 들었었나 보다. 생리를 시작한 지 3일이나 지났건만 오늘 뭉텅뭉텅 나오기 시작하더니 잠든 사이를 노렸나 보다. 그 짧은 순간 이렇게 선전할 수가...


아 나는 덩치 큰 소파의 좌방석을 끄집어내어 옷을 벗긴다. 이런 오리털 내솜에도 장미가 활짝 피었구나. 커버야 손으로 애벌빨래해서 세탁기에 넣을 수 있을 테지만, 이 커다랗고 들기도 무거운 솜은 어쩐다.. 덩치 큰 아들을 시킬 수 있는 일일까? 그냥 내가 하기로 한다.

일단, 커버 먼저 비누칠을 해 피를 빼고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좌방석을 질질 끌어 부엌 싱크대에 어찌어찌 올려두고 피 묻은 부분만 주방세제로 지우기 시작한다. 음 번진다.  물을 무조건 부을 수도 없고 물이 좌방석을 타고  싱크대 아래로 주루룩 떨어진다. 대충 마무리 짓지만 얼룩이 남는다. 어쩔 수 없다. 질질 끌면서 베란다로 빼냈다. 스탠드 건조대에 올려 말려본다. 

아 정말 힘들다. 이미 지쳐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잠에서 깬 아들은 거실에 나와 보고 소파가 왜 이런지 묻는다. 응. 뭘 좀 흘렸어...

아이보리색 리넨 소파라고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남자들에게 잔소리를 해댔던 나였다. 

“흘리지 마 이거 드라이해야 된대”

아들은 흘겨보듯 날 쳐다보곤 아직 남아있는 쪽 좌방석에 앉는다. 




사실 2년 전부터 자궁근종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왔었고, 1년 전부터는 자궁이 아래로 내려와 있음을 느끼고 지내고 있었다. 

나의 자궁은 자신의 우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려 한다.

무슨 혹성탈출도 아니고 자궁탈출이라니...


한 병원의 교수는 연세드신 어르신같이 심한 경우가 아니니, 변비를 조심하면서 지내라 했다. 어차피 나이 듦에 따라 또 내려올 것이니 들어 올리는 수술은 본인의 경우 아니한다 했다. 교수는 자신의 일이 아니니 쉽게 말할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경험의 결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까? 물론 죽는 일은 아니다. 암도 아니고.      

다른 병원에서는 자궁을 올려서 골반 뼈에 고정을 하고 아래 그물을 해놓아 더 이상 내려오지 않도록 할 수 있단다. 내막에 근종도 있어서 그동안 생리양이 늘었을 테고 빈혈 수치도 높단다.  자궁을 째서 근종을 잘라내고 다시 봉합하는 수술을 할 수 있단다.      


근종은 피를 내보내고 자궁은 스스로 나오려 하고 심란했다. 원망스러웠다. 그 동안 아들 둘을 키우면서 다 키우고나면 나하고 싶은 거 하고 살 수 있겠지 생각했었는데,  아들들이 자라나는 동안 나는 늙어가고 있었다. 하. 발목이 뻘에 빠져 옴싹달싹 못하고 갇힌 느낌이다. 

빨리 해치우자. 빨리 처리하고 일자리도 다시 알아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앞으로 나의 생활은 자궁이 내려오지 않아야 쭈욱 나아갈 거 같았다. 일정관리 ppt의 굵은 화살표처럼 쭈욱. 

조급해진 나는 결국 수술 날짜를 잡았고, 그 사이 열심히 카페에 가입해 수술 한 후기도 읽어보고 신문기사도 찾아보고 수술 날짜를 기다렸다. 병원은 선견지명이 있어서 수술 날짜를 이리 멀리 잡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많은 수술 예정 환자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걸었던 걸까?      

두 달이나 남아 있던 시간은 나에게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주었고, 드디어 결정적인 기사를 접했다. 자궁을 들어 올리는 데 쓰이는 그물을 만드는 미국 회사가 수술 부작용으로 인한 여성들의 고소에 패소해 위자료를 엄청 많이 물고 현재 미국에서는 그 그물은 사용 금지란다. 음.. 

몸속에 태어나서부터 있던 게 아닌 다른 재질이 들어가 있는 것이니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한 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생각이 들었고, 수술을 상의할 당시 “몸속에 들어가도 괜찮은 건가요?”라는 내 물음에 확신 100%의 표정으로 대답했었던 의사 얼굴이 떠 올랐다. 그 미국 회사 제품을 안 쓴다는 말이었을까?      

자궁이 내려와 올리는 방법이 아닌 적출을 했다는 또 다른 카페회원의 글을 보면, 그 후 또 내려오는 것이 있어 병원을 찾았더니 이번엔 방광이 내려왔단다. 그물을 대는 수술을 잡았단다. 자궁이 없어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나보다. 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을까 고민도 여러 번 했었는데 그 또한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이미 걸어 다닐 때 입구까지 내려와 있는 자궁의 존재를 느끼며 산책하고, 식사 준비를 하고, 뒷물한 지 오래였지만, 앞으로 살아갈 30년 동안 몸속 이물질로 다시 아파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벌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마지막 순간에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을 뒤로 미루었다. 전화로 수술 보류를 묻는 내게 간호사는 수술 전 검사와 교수와의 진료 일정도 취소해 주면서, 왜 그러는지 묻지 않았다. 간호사의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응대에서 여러 환자들이 나와 같았었구나...생각이 들었다. 수술 상담도 친절히, 수술 취소도 친절히. 


조급하고 불안했던 마음도 수술 취소와 함께 쉬는가 보다. 예전보다 자궁의 거슬림도 덜 느껴진다. 남편은 그 느낌이 뭔지 알 거 같단다. 본인은 치질 수술의 경험이 있어 그 거슬림을 짐작할 수 있단다. 하하. 남편이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니 모르는 것보다 훨씬 얘기하기가 수월했다. 수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었지만 내가 원하기에 말릴 수는 없었다고. 아직은 안 하겠다는 나의 결정에 남편은 안심하는 눈치다. 


생리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양도 많아지고 뭉텅뭉텅 실수할까 맘 조리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소파는 아니어도 팬티와 잠옷, 이불 패드에 여전히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나이 듦을 아주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몸의 다른 부분도 표시를 많이 내지만 가장 드라마틱하게 표시를 내고 있는 나의 자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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