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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맥스 Aug 13. 2021

고양이 꼬리처럼

나를 건들지 마라

우리 집 고양이 콩이는 내가 머리나 턱을 만져주면 가만히 있다가 손길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면 어김없이 꼬리가 움직인다. 처음엔 천천히 살랑살랑 움직이다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탁! 탁! 소리가 날 정도로 꼬리로 바닥을 친다. 그래도 내가 손을 떼지 않으면 드디어 내 손을 앙 하고 물어버린다.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이나 관심이 많은 분들은 아시리라. 고양이가 꼬리를 움직일 때는 강아지처럼 좋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기분이 안 좋다는 뜻이라는 거.  꼬리가 살살 움직이기 시작하면 손을 뗄 시간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쓰다듬다가 꼭 물리고 만다. 


내가 꼬리를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대화하던 중에 싫은 소리를 들었거나 내게 충고하거나 질타하는 얘기를 들을 때면,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일단 기분이 안 좋고 속상하다. 그렇지만, 얘기하는 당사자 바로 앞에서 표시를 못 내고, 그냥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때가 많다.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성격이지만 어쩌겠나. 그럴 때 내 꼬리가  살살 움직이는 거다. 살랑살랑~ '음 기분이 좀 나쁘네'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이어간다면 이번엔 꼬리로 의자를 탁! 탁! 치는 거다. '음 지금 안 멈추고 계속 얘기하다간 물어버릴지도 몰라' 그때는 그만두겠지. 표정에도 살짝 드러날 터이지만 그래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말이다. 

나의 꼬리가 계속 움직이며 사인을 주는데도 더 나간다면 꼬리로 테이블 위에 있는 물 잔을 잡아채서 얼굴에 확 붓는 거다. 마치 드라마의 시어머니처럼!  아니면 사자처럼 머리를 앙 하고 물어버릴까?


내게 이런 지인이 있다. 먼저 전화를 걸어오고, 만나자고 하는 것도 아니면서 전화 통화만 하고선 끊곤 한다. 처음엔 나랑 시간 보내는 것이 편한가 보다 생각하고 얘기를 길게 했다. 나는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면 숨기지 않고 털어놓는 편이다. 물어보는 데 답해야지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전화를 오래 붙들고 있는 건 사실 불편했다. 용건 없이 긴 얘기를 하는 건 어느 순간 내 시간을 방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 한잔 하면서 얼굴 보며 얘기를 해도, 집에 들어올 때는 뭔가가 편치 않았다.

 

왜 그럴까 내가 지인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뭘까 곰곰 생각해보면, 항상 좋은 얘기만 하는 게 아니니, 시댁 얘기도 하고 남편 흉도 좀 보고, 아이들 공부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면, 언제나 끝은 나에 대한 훈계다. 뭐 처음엔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랑은 다른 사람이네. 보통 얘기하다 보면 나랑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고 넘어가는 편이지. 그 앞에서 내가 옳다고 주장하거나 그건 너의 잘못이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그런데, 그 지인은 아니었다. 나하고 달랐다. 매번 훈계를 해 줄 정도로 자신과 스타일이 다른 사람이라면 왜 굳이 먼저 전화해서 근황을 묻는지 모르겠다. 전화비 들여가면서 말이다. 


이번 그 지인을 통해 나는 끊어져도 괜찮은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관계는 목적이 없어져버리면 연락도 같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또 생겨나곤 했다. 친구가 아닌 이상 아이들 친구 엄마들 모임이나 같이 공부하며 매일 보던 사이도, 공부가 끝나거나 학년이 바뀌거나 하면 잘 모이지 않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중에도 개인적으로 꾸준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있을 때 내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남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면 행복감이 넘친다. 가족 외에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잘 듣고 있다는 리액션도 필요하고, 좋은 일이면 같이 기뻐하고, 안 좋은 일이면 거친 언어로 도원결의의 사이란 것도 보여줘야 한다. 때로는 같이 울기도 한다. 대화를 한다는 건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지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충분히 남을 대해주는 사람이었던가. 


어느 순간 지인의 전화를 안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안 하는 사이가 되었다. 혹 다음에 만나서 또 그런 상황이 되풀이된다면 그때는 나의 꼬리가 아주 많이 움직일 것이다. 탁! 탁! 눈치 없이 계속 훈계를 하다가 나의 꼬리에 일격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상대방 꼬리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대화를 해야겠다. 물색없이 내 생각만 늘어놓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상대방의 꼬리가 내 꼬리보다 더 길고 재빠를지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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