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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맥스 Aug 12. 2021

다 큰 남자 셋과 물놀이 가기

나만 바쁘다

남편은 놀러 다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회사에 개인적인 급한 용무가 아닌 그냥 휴가를 내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사람이다. 어디를 가든 내가 알아보고 가자고  해야 간다. 우리 집은 캠핑하곤 거리가 멀고, 어디 가서 숙박하고 놀러 갔다 온 기억도 많지 않다. 그런 남편과 그런 아빠와 살다 보니 당일치기로 간단하게 다녀오는 일정에 익숙해 있었다. 그나마 어디를 가자 얘기를 해도 아이들이 커버린 지금, 아이들은 언제나 "다녀오세요"였다.   

  

우리 가족이 해수욕을 목적으로 바다를 간 적이 있었던가.

바닷가 근처에 살다 보니 가족이나 친구 부부가 방문했을 때 다 같이 해수욕장에 갔던 적이 있지만 그것도 아이들이 어릴 때이지 근래는 없었고, 우리 가족끼리 바다에서 물놀이를 한 기억을 떠올리면, 안면도에도 갔었고, 지역 해수욕장도 한두 번 갔었지만, 아이들은 이것도 저것도 기억을 못 한다. 

나이 터울이 5살이나 되다 보니, 둘째가 너무 어려서 못 가, 둘째가 자란 후엔 큰 애가 시시하다고 투덜투덜, 아들 둘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이 힘들었다. 실내 워터파크에 다녀온 적은 있지만, 둘째는 기억이 없는 듯했다. 큰 애가 고1 때 둘째는 5학년이었다. 우리도 남들 다 가는 워터파크  한번 가보자고 둘째는 노래를 했으나, 놀러 간 그곳에서 첫째는 썬베드에 눈감고 누워만 있었다. 그 이후 우리의 휴가는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하고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 휴가 때도 남편은 당연히 아무 생각 없었고, 아이들도 놀러 간다는 건 생각도 안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나는 안 그랬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해 휴가는 집콕했었지만, 올 해는 하루치기 물놀이라도 가고 싶어 남편을 꼬드겼다. 큰 애는 신검을 앞두고 있고, 둘째도 내년이면 중3이고, 어쩌면 바다에서 첨벙첨벙 놀 수 있는 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편은 일주일 여름휴가를 이틀 쉬고 나머지는 출근할 거라 했다. 그럼 그 하루를 해수욕장에 가자 공표를 했다. 다 큰 남자 셋이서 아무 생각 없이 대답을 했다.

"그래요 가요"     


아이스박스에 싸갈 음식을 생각하고, 수영복을 어디에 두었나 찾아놓고,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해수욕장 근처에 살면서 캠핑의자 하나 없다고 늘 투덜대었는데, 바로 그 캠핑의자를 사러 갔다. 맘에 드는 칼라로 2개를 사고, 테이블로 쓸 수 있는 폴딩 박스도 하나 샀다.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둘째가 물었다. 

"진짜 가요? “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옥수수와 고구마를 삶고, 냉동 치킨과 양념감자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고, 유부초밥을 만들고, 수박도 썰고 포도도 씻었다. 얼려놓은 물과 음료수를  아이스박스에 담고 수영복과 선크림, 수건을 챙겼다. 낮 12시에 일어나던 아이들을 깨우며 준비를 재촉할 때도 둘째는 물었다. 

"진짜 가요?"     


꾸물대는 아이들을 태우고 돗자리와 캠핑의자도 들고 해수욕장을 찾았다.

11시쯤 된 시간이었지만 붐비진 않았고 좋은 자리의 평상을 잡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큰애와 둘째의 표정은 뚱했다. 그래도 남편은 짐도 잘 나르고 애들의 기분도 살펴주고 했다.

아이들은 평상 옆에 펴놓은 의자에서 꼼짝을 않고 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치킨과 양념감자를 펼쳐놓으며  일단 먹을 걸로 애들을 구슬려놓고 나와 남편은 바다로 들어갔다. 수영을 취미로 하는 남편은 바다에 오기까지는 소극적이었지만 막상 바다를 보니 물안경 챙기는데  마음이 급했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바닷물은 출렁거리고 바닥은 울퉁 불통하니 가만히 서있지도 못하겠어서 튜브를 빌렸다. 발이 닿는 곳에서만 있었지만 튜브에 몸을 맡기고 시원한 물속에 있는 건 정말 행복했다. 마스크를 쓴 채 둥둥 떠다니면서 남들 노는 거 구경하고 남편이 수영하는 걸 보다 보니 어느샌가 둘째가 가까이 와서는 물어본다.

"재밌어요?"

      

둘째는 수영을 아주 잘 하지만 놀 생각이 없었던지라 물안경을 따로 챙기지 않았다. 막상 물에  들어와 보니, 시원하니 기분이 좋아졌는가 멀리 나가려고 하고 수영실력을 뽐내려 했다. 물안경이 없으니 내 튜브를 탐내기에 내어주고 나왔다. 앉아만 있는 큰 애한테 가서, 가지고 온 음식을 같이 먹는데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시원했고 옷이 젖은 상태라서 그런가 덥지도  않았다.


남들은 바닷물에 떠다니며 멀리 나가지 않고 앞뒤로 오르락내리락 노는데, 남편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 사이를 가로로 훑고 다녔다. 멀리서 자유형 하는 팔 동작이 보이면 숱 없는 머리가 쑤욱 올라오는 게 남편이었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띠 로리 리~  손가락으로 쭈욱 가로지르는 모습 같았다.     


둘째와 나는 교대로 튜브를 타고 놀고, 남편은 혼자 잘 놀고, 오며 가며 싸온 음식도 먹고 하다 보니, 드디어 큰 애도 물로 들어왔다. 심심했겠지.. 후후. "발에 물만 묻힐게요" 하다가 뒤뚱거리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으악! 드디어 물에 들어왔구나.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겠네요 흐흐흐" 하며 같이 놀게 되었다. 


애들끼리 놀게 두고 남편과 나는 나와서 쉬었다. 한적하던 바닷물에 사람들이 늘어있었다. 오후가 되니 방문객이 많아졌다. 아이의 튜브를 잡아주는 아빠의 모습이 많이 보였고, 물에 들어가기에 너무 어린 아기를 보는 엄마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예전에 우리도 그랬었는데..

이제 아이가 놀 수 있도록 돌봐 줄 필요도 없이, 스스로 물놀이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정말 아이들은 자라고, 시간은 흐른다. 물속에서 발을 저으며 떠 있는 시간은 정말이지 완벽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간간이 물고기를 잡았다며 물속에서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나를 웃겨주던 남편도, 오늘은 제대로 물놀이를 즐긴 모습이다.     


방문객이 늘어나 3시 정도에 자리를 접고, 집에 와서 짜장면에 탕수육을 시켜 먹으며 다 큰 남자 셋보고 물어봤다. 

”재밌었지 오늘? “

”네 “ 하면서 다 같이 웃는다. 

뚱한 얼굴 남자 셋을 억지로 데리고 간 물놀이지만 대단히 성공적인 이 여름의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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