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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Apr 05. 2022

봄나물, 향긋한 봄을 부르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은 겨우내 잠들었 나물들을 푸릇푸릇 움트게 한다. 아침을 깨우시계 알람처럼 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나물, 향긋한 소리로 언니의 발길을 부른다. 소쿠리 옆에 끼고 나와 얼른얼른 자기네들 데려가 달라는 듯 말이다.


"카톡! 카톡!"

요란하게 울리는 가족 단톡방에 파릇파릇한 쑥과 냉이 사진이 올라와 있다. 시골 친정집에 다녀온 작은 언니가 올린 사진이다. '우리 언니가 또 열심히 봄나물 캐러 다녔구먼. 이제 진짜 봄이네'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있는 곳까지 봄이 오는 소리가 전해져 다.

 "카톡! 카톡!"

두 번째 카톡에는 쑥과 감자를 넣은 된장국, 맛깔스러운 초록빛이 도는 냉이무침 사진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나물을 찾아다니던 언니는 지금까지도 봄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나물을 캐러 다닌다.


 언니는 요리 DNA를 갖고 태어난 듯 어려서부터 유달리 음식 하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식사 준비를 할 때마다

 "나도 당근 한번 썰어볼래. 오늘은 내가 쌀 씻을래."

하며 뭐라도 해보려고 용을 썼다. 5, 6학년 때부터는 밭에 나간 엄마를 대신해 밥도 하고 종종 간단한 밑반찬도 만들어 놓았다. 어느 날은 모내기를 앞두고 하루 종일 논에 나가 계신 엄마 아빠를 위해 부친 김치전과 파전을 직접 배달하기도 했다. 조그만 여자 아이가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무거운 소쿠리를 안고 20분 넘게 걸어서 새꺼리를 갖다 주었다는 것 자체가 어디 소설에 나올법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것이다. 언니는 여태껏 자기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사람이다.



 

 따뜻한 봄이 오면 나는 추운 겨울 동안 주춤했던 활동성을 여기저기 발산하러 다니기 바빴다. 산으로 들로 골목으로 하루 종일 쏘다니며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니는 봄만 되면 쑥, 냉이, 달래, 취나물 등의 나물을 캐러 다니기 바빴다. 혼자 다니면 좋으련만 갈 때마다 꼭 싫다는 나를 억지로 잡아끌고 협박하고 회유해가며 기어이 데리고 나섰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했던 나는 가끔 심심할 때를 제외하고 언니가 나물 캐러 가자고 할 때마다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갖은 꾀를 냈다. 하지만 끝내는 언니에게 붙들려 씩씩거리며 억지로 뒤따라가곤 했다.


 언니는 초록빛의 비슷비슷한 수많은 풀 중에서도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을 쏙쏙 잘도 가려냈다. 선별된 나물들을 엄청나게 빠른 손놀림으로 캐다보면 소쿠리 하나가 금세 찼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번 언니를 따라다니다 보니 나도 쑥이랑 달래는 제법 잘 캐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냉이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풀들이 많아 종종 먹을 수 없는 엉뚱한 것들을 캐기도 했다.

 "언니, 이거 냉이 맞지?"

하고 물을 때마다 언니는

"야! 너는 내가 몇 번을 말해줬는데 아직도 냉이를 구분 못하냐? 봐! 냉이는 이렇게 생긴 거라고!"

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 언니의 쓴소리를 듣고도 집에 지 않고 나름 열심히 따라다닌 걸 보면 나도 좀 착한 구석이 있는 동생이었던 것 같다.


 여덟, 아홉 살 아이가 3월의 쌀쌀한 봄바람을 맞아가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물을 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열심히 해서 바구니를 채우면 언니는  매의 눈으로 철저한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냉이를 캐라고 했는데 먹지도 못하는 걸 캤다며 혼내기도 했다. 그런 언니가 밉기도 했지만  시간이 아주 싫지만은 않았던 건 언니랑 떠는 수다가 은근히 재미있기도 했고, 바구니 가득 채워지는 나물들을 보며 나름 뿌듯함도 느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뭐든 잘 먹고 많이 먹었던 나는 봄나물 요리 중 달래 양념장과 들깨가루를 듬뿍 넣은 쑥국을 좋아했다. 가스불에 살짝 구운 바삭바삭한 생김에 고슬고슬 갓 지은 쌀밥을 올리고 그 위에 달래 양념장을 얹어 먹으면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다. 달래 양념장과 김으로 한 공기 뚝딱 비우고 나면 향긋한 쑥과 고소한 들깨가루를 넣은 쑥국에 밥을 말아 또 한 그릇을 비워냈다. 먹을 때마다 입안 가득 봄 향기를 머금은 듯했던 달래 양념장과 쑥국, 봄이 찾아들 때마다 그 맛이 그리워진다.


 이번 주말에는 시장에 가서  달래, 쑥, 돌나물, 냉이를 사와 봄내음 가득한 나물들로 맛난 밥상을 차려내리라. 

그리고 내년 봄에는 추억 속 그날처럼 언니와 함께 봄나물을 캐러 가야겠다.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엉뚱한 녀석 대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진짜 냉이를 아주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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