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웨이 프롬 더 하드코어 or 비욘드 더 포스트 (2)

Unwound / Leaves Turn Inside You

by 감상주의

| Leaves Turn Inside You: 우리는 당신을 초대한다

Pitchfork

Magrecone에서의 헌톨로지(Hauntology) 생활과 Replikants에서의 무작위적 노이즈 플런더포닉스로부터 그들은 과연 무엇을 산출해내고 싶었던 걸까. 당최 무엇을 향한 야심이었더란 말인가. 이제는 그 정체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알릴 때가 됐다. 또한 기어코 요리조리 우회를 거듭해 온 나의 글도 더는 꾸물거리지 않고 본론에 접어들 때가 됐다. <Leaves Turn Inside You> 이야기는 이제부터 진정 시작이다.




예전의 언와운드가 아님을 알게 되는 지점은 첫 2분 안에 확연히 결정된다. 기타가 아닌 멜로트론에 의한 신사사이저가 그저 무율적으로 흐르기만 한다.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 일방향적인 드론은 어느 세계가 도래하기에 앞선 장막이다. 아무런 정보도 지니지 않은 채 입장했다면, 과연 이토록 희뿌연 안개에 끝이란 있을지 불안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의식이 탁해져 내가 지금 누구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지조차 분간이 서지 않을 즈음, 장막이 걷히고 인고를 감당한 당신의 걸음은 보상받는다. 희미한 중량감을 감지하고 나면, 이윽고 고독히 앉은자리에서 무심하게 연주되고 있는 기타가 마중 나온다. 도중에 돌아서거나 헤매지 않고 잘 건넜으니, 이리로 오지 않겠느냐는 접객의 손짓이다.


축하한다. 그들은 당신을 초대한 것이 맞았으며, 당신의 응답은 헛되지 않았다.




당신의 무사한 도착을 확인한 그들은

마침내

감춰두었던 소리들을 봇물 터뜨리듯 모조리 꺼내 들며 당신을 열렬히 환영한다. 비장함 가득한 킥과 탐과 스네어, 백색의 하이햇과 심벌즈, 그리고 당신이 있는 이곳이 몽환과 천상 사이 어딘가임을 알리는 사이키델릭 보컬과 함께

드디어 선포한다.


어쩌면 우리가 우려했던 대로 영영 돌아설 수 없는 본질로부터의 작별일지도 모를,

그러나 선조들과 자신들의 노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후세에게 증명해 내고야 말

완전히 새롭게 창세한 머나먼 제국의 1장을 말이다.



| 악기와 음향 실험의 집대성을 요약하는 인트로

@Staggvillainy / Reddit(r/Unwound)

느닷없는 2분 간의 드론은 2CD에 걸친 대규모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암시한다. 자그마치 3년의 공백을 단일한 코드에 함축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존 케이지의 우연성만큼이나 허무맹랑한 파격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목적을 드러내는 이 비가시적인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뚜렷하고 강력한 어필을 성취한다.


드론의 여러 속성들과 그들의 구현을 앞으로 펼쳐질 록 음악의 무브먼트에 넓게 적용해 나가기 위한 일종의 머리말로 보도록 하자. 그 구성을 악기, 그리고 조음 및 진행 등으로 면밀히 파헤쳐 보건대, 일단 어떤 측면에 의해서든 각각은 공통적으로 음향학(Acoustics)을 공략하고 있음에 집중해야 한다.




Mellotron MKII / Azure Hills Music

<Mellotron>

일반적인 신시사이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들리겠으나, 해당 구간에는 멜로트론이 사용됐다.


추측컨대, Steve Fisk에게 빌려 썼을 것이다. 언와운드의 대부분의 앨범에 총괄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본작에서는 이례적으로 일부 악기 연주와 레코딩 관련 조언만을 보탠 인물이다.


아마도 그가 자신의 솔로 앨범 <999 Levels of Undo>에서 사용했던 제품을--구체적으로 어떤 모델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대신 쓰도록 한 것일 테다.




멜로트론 외에도 <Leaves>의 여러 트랙에는 ARP 2600 신시사이저,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 전자 오르간 등의 여러 전자 건반이 쓰였다. 그중에서도 멜로트론은 여러 곡에서 빈번하게 사용됐다.


우선 범용성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구태여 좁은 스튜디오에 관현악적 편성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샘플러이기 때문에 현악기, 관악기, 신시사이저 등 무엇이든지 악기에 이식된 테이프와 모듈의 적정한 조율을 통해 연출할 수 있다.


즉, 매우 효율적으로 방식으로 록 외의 요소들을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제한된 환경 안에서도 록을 탈피하기 위한 시도에 훨씬 적극적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해당 악기의 사용에 관해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비틀즈의 "Strawberry Field Forever"처럼 획기적인 의외성을 발휘하기에도 유용하다.



<Sustain & Microtonal Tension>


드론에서 서스테인(sustain)미분음적(microtonal) 변동은 무엇을 유도하기 위해 발현되는 것일까. 그것은 텐션이다. (0)에서 언와운드의 차별화된 장기라고 설명한 바 있는 그것이다. 앞으로 그들은 <Repetition>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확장된 방법들로 이완과 수축, 증폭과 감쇠, 반복과 반전을 거듭할 것이다.


그들이 여러 악기--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 가짓수의 전자악기를 통한 여러 소리--를 빌린 데는 기초적인 밴드 편성과 6현 악기만으로는 끄집어낼 수 없는 팀브럴(timbral)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모든 트랙들이 풍성함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 테지만, 그러나 확실히 복잡해질 것이다. 당신의 집중력과 예지력을 끊임없이 시험하려 들 테니까.


또한 이토록이나 개별적인 분리를 허용하지 않는 조밀하고 균일하게 흘러가는, 그리고 어떠한 멜로디나 리듬조차 발견되지 않는 톤 클러스터(tone cluster)는 모든 악기, 화음, 각 음표, 리듬, 호흡 등이 우열을 가릴 것 없이 자율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음악이론 하몰로딕(hamolodics)을 역설한다.




이것이 Replikants((1) 참고)가 연이은 두 작품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노이즈 및 샘플링을 두고 장난질하듯 배설해 오던 것의 결과적 당위다. 어쩌면 그들이 여태껏 수집해 온 데이터들은 지극히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것들인 듯하다. 그것을 보란 듯이 적용해 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드코어 음악에서 때 아닌 힙합, 재즈, 전자음악, 인더스트리얼, 클래식, 아방가르드 등을 마구 탐닉하고 비교해 온 일련의 과정들이 그 목적의 진위를 드러낼 때가 왔다. 그리고 그 모든 진위가 함축된 이 문제적 인트로는 어디까지나 전주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것은 그야말로 대규모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 1막: 이탈의 과정을 아울러 그린 모식도

eBay


단순히 방대한 실험 데이터를 모두 포함하기 위해 2 Disc 형식을 취한 것으로만 보이지만, 각 디스크에는 분명한 역할이 지정돼 있다. 그중 (2) 챕터 전체를 할애해서 파헤쳐 볼 파트는 1막이다. 서사적 장치로 볼 수도 있으나, 오히려 본글에서 이 측면은 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보다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장르적 측면, 즉 하드코어에 관한 것이다.


"Look a Ghost"부터 "Off This Century"까지의 전개는 지극히 순행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기 위한 진행인가. 아무래도 나의 견해로는 본 작의 갈래를 '포스트-하드코어'가 아닌, 보다 정확한 명칭이 필요하겠다. 여기에는 약간 오류를 범할지도 모르는 모험/융통성이 필요하다만, 그래도 나는 기어이 이렇게 부르겠다. '안티-'라는 개념을 활용하고 싶다. 즉, 1막은 '포스트-하드코어'에서 '안티-하드코어'로 가는 여정인 셈이라고 치자는 것이다.




1막에서의 순행적 구조는 또한 포물선의 형태를 띤다. 우리가 기존에 숨 쉬며 누리고 있던 지상의 영역을 '포스트', 그리고 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수면 깊은 아래에 곧 향해 갈 미지의 영역을 '안티'라고 가정하자. 언와운드는 지금 수중 로켓을 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발사 직후 로켓이 잠깐동안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근접한 초점(焦點)에 도달하기까지의 구간을 "Look a Ghost""December"로 보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두 곡에 걸쳐 펑크 특유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의 농담(濃淡)으로 담았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 후 "Treatchery"의 도입부로 하여금 막 수면을 통과했음을 알리는 특정 신호가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악곡의 구조를 가지고 기존 펑크의 형식에 대해 어떻게 대적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Terminus"에 이르러 안티적 성격이 심층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긴 타임랩스의 양상으로 관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정의하기 모호한 "Demons Sing Love Songs""Off This Century"에 이르러 막이 종결된다.

아마 구조, 편곡, 음향 등의 다방면에 있어서 얼마나 복잡하고 비정형적으로 변화됐는지, 경계를 가늠하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 '그들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경로를 거의 완전히 이탈했다는 점에 대한 인지' 하나만을 남겨둔 채로 말이다.



| "Look a Ghost" ~ "December": 알고 있던 세계로의 일시적 도약, 그러나 곧 아래를 향한

Genius

"Look a Ghost""December"로 말미암은 1막의 초반부는 그들의 실험이 어쨌든 펑크 록을 골자로 하고 있음을 안내하는 파트라 할 수 있다.


묵직한 베이스가, 저돌적인 에너지와 거친 카리스마가 응축된 리드 기타를 충직하게 뒷받침한다. 물론 이전보다는 훨씬 절제되고 정교하게 텐션을 조절하면서 리프의 두 가지 속성을 마일드한 농도로 표출하는 방식으로.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곡이 당시의 골수팬들에게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연주에 있어서는 "<Challenges> 전의 그들로 돌아간 것인가"하는 잠깐의 오해마저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들이 상당히 순해졌고, 인디 록스럽게 중화됐다고 여겼겠지. 그런 경우라면 경험이 쌓인 포스트-펑크 밴드들에게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레퍼토리니 대수롭지 않게 다가왔지 않았을까.




그러나 앞서 트랙별 진행에 관한 개략적인 가이드라인을 나열하며, 두 곡에서 중요한 점으로 에너지를 담아내는 농담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즉 '마일드해지다', '순해지다'라는 인상이 이미 그 자체로 포인트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클래식 펑크 밴드 중 상당수가 80년대 이후 현저하게 *뉴웨이브(발생학적으로만 보면 둘은 동시적이지만) 사운드로 옮겨간 일련의 현상, *밀레니엄 리바이벌가 고전 회귀를 목적으로 일어난 무브먼트임에도 원본 그대로의 고전보다 현대적인 인디 록과의 크로스오버에 주안점을 두던 일련의 경향과 비교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요컨대 각자의 목적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리고 어떤 경유를 통해서든지 간에 '포스트'로서의 행보를 지속할수록 거리가 멀어지거나, 농도가 옅어지거나 둘 중 하나이기 마련임을 수긍케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운명론은 '결국 일련의 무브먼트를 관통하는 고질적 한계--본질의 수호를 탈본질적 시도의 거듭으로 이루려 한다는 논리는 애초부터 터무니없는 어불성설이라는--그뿐이지 않느냐는 체념'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Look a Ghost"의 가사 콘셉트에서, 유령이라는 상실된 존재로서의 무의미한 배회나 결국 멀어져 버린 연에 관한 실패조차 이들 존재론의 자조 및 권태로 비치는 것도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조화되지 못하고 고된 순간들을 거듭하는 관계를 그린 "December"의 씁쓸한 한탄도 마찬가지고.


여기에 저스틴의 시원한 울부짖음이 아닌 "We Invent You"에서 초연했던 고스/사이키델리아의 속연 또한 펑크에 다른 톤을 이식했을 때의 반응을 보기 위한 일종의 스트레칭으로서가 우선이겠으나, 결과적으로 자꾸만 옅어질 수밖에 없는 코어의 농도를 의도적으로 되묻도록 하는 모습이 됐다.


이들의 신세계는 현 인간 세태에 대한 회의와 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 "Treatchery" ~ "Terminus": 안티적 영역의 심층으로

Discogs


"Treatchery"으로 넘어가자마자 ARP 신시사이저의 요란한 고주파 화음이 느닷없이 등장한다. 트랙 가이드라인에 언급한 특정 신호가 바로 이것이다.


멜로트론과 마찬가지로 스티브 피스크에게 빌린 것일 테다. 그러나 "We Invent You"의 2분과 다르게 이번에는 멜로디가 뚜렷하다. 진행이 예측을 빗나가서 그렇지.


예측을 빗나가는 진행. 이번 두 곡에서는 이 점이 포인트다.




Treachery는 평균적인 팝 음악의 러닝타임 안에서 구조적인 측면을 가지고 어떻게 청자와 교활한 심리전을 벌일 수 있는지에 관해 집요한 도전을 펼친다. 4/3 박자도 충분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이것만으로는 펑크의 틀을 벗어났다고 보기 힘들었던 것일까. 45초부터 엉뚱한 추임새("T-t-t-... treachery")를 동반한 뉴웨이브 스타일의 차징 구간왜곡된 강한 리프가 원래 제 역할을 하는 분출 구간이 불규칙한 간격의 병렬식으로 반복된다.

이처럼 익숙한 배열을 과감히 무너뜨리는 괴랄한 구간을 감히 용인했다니. 그 순간에 이미 곡은 하드코어로서의 관습과 규칙에 반항한 것이나 다름없다. 밴드는 처음부터 이를 노렸다. 씬은 굳이 구조를 가지고 장난을 일삼는데 변태적일 만큼의 관심까진 갖지 않았으며, 그것은 오히려 장르의 본래 목적을 방해하고 원칙을 배반하는 행위라 여겼다. 포스트-하드코어 밴드들마저 혁신의 필요성에는 동의했으나 그들을 유미주의자로 헷갈릴 정도로의 해체를 요구하진 않았다.


다시 말해 이들의 도발적 시도가 처음 이안 맥케이 등의 선구자들이 추구했던 교리마저 벗어나는 일종의 농간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될 수 있다. 본작이 '포스트-'보다 '안티-'라는 접두사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견해를 내놓은 것도 그런 이유다.




HHV

아이러니한 것은 안티적 영역의 심층으로 가는 과정이 생략 없이 기록된 "Terminus"에서, 포스트록의 형식과 구조를 취했다는 것이다.


마치 제목 그대로 여태껏 혼을 바쳐 온 일련의 연구실 생활 및 질긴 하드코어의 역사 가운데, 진보의 종착역은 포스트록이라는 결과론을 선포한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는 다소 허망하다. 씬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혁신은 신대륙의 개척이라는 황홀한 낭만과 자유로운 쌍방의 통행로에 대한 기대가 아닌 '모두가 갓스피드유 블랙 앰패러나 스완스처럼 돼야만 길이 완성된다'라는, 이미 있던 세계로 가는 일방적이고 종속적인 운명만 확인한 셈이지 않은가.




3부로 구성된 곡의 흐름 중 2부를 볼까. 연주에 맞춰 한 걸음씩 내려가는 행위와 바로크식 현악으로 암층을 드릴처럼 뚫어대는 행위를 번갈아 반복한 뒤 다다른 곳의 풍경이 어떠한가. 젖 먹던 힘까지 전부 쥐어짜 내면서 당도한 곳에는 첼로의 구술픔만 들릴 뿐 남은 것이라곤 니힐리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힘찬 기타 플레이와 매섭게 계속 쏘아붙이는 노이즈로 하여금 마칭 밴드의 에너지로 묵직하게 전진하던 1부와 황량한 기타에 얽힌 로드 피아노가 머금은 냉소로 말미암은 3부의 무기력한 드림팝은 완전히 대조된 감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심경의 변화가 의도된 것이라면, 언와운드가 이토록 연극적인 대곡 구성을 취해가며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이었던 걸까. 왜 연극의 종착지가 니힐리즘일 수밖에 없었는가. 자신들의 비전에 자조나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했던 것일까. 혹은 그것이 기어코 모험하고야 만 이탈의 대가라는 것을.



| Demons Sing Love Songs ~ Off This Century: 이탈의 광경

Bandcamp

안티 영역으로의, 탈본질의 극단적 영역으로의 완전한 입관식을 치르고, 그가 서 있는 곳에는 더 이상 어그레션과 분노가 남아있지 않는 듯이 보인다.


"Demons Sing Love Songs"에선 램수면에 빠진 듯 연하고 희미한 트로스퍼의 크루닝과 고딕과 사이키델릭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하모니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유령과 폐허의 광경에 가까웠던 스튜디오, 혹은 그것들의 존재성과 흡사해버린 문화와 거의 일체화가 돼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하드코어로부터 이탈한 세계 = 분노가 사라진 세계'로 귀결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를테면 응축된 열을 모조리 발산하고 잿빛만 남아버린 지대가 된 것이고, 악마들은 그런 세계를 좋아하며, 잔존해 있던 예술가들은 의식과 정처 없이 잿더미 근처를 배회하는 망령이 돼버렸다.


영광을 안고 새로운 제국에 초대를 받았지만, 애석하게도 막상 당신이 기대했던 광경이 전혀 아닐 확률이 높다. 적어도 당신이 이제까지 믿고 있던 본질은 여기에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니힐리즘의 세계를 원했던 것은 아닐 테다.


또한 그런 의심도 가져볼 수 있을 테다. 핏대를 세워가며 외쳐댔던 목소리와, 세명만으로도 격렬한 연주를 멈추지 않던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 작심하여 다른 목적을 내세운 것이지 않은가. 긴 세월 은둔지에서 지독한 실험을 강행하고 귀 찢어질 듯한 노이즈(Replikants-<This Is Our Message>)를 견디고, 수많은 음악을 참고하며 좇았던 원대한 혁신의 결과란 무엇인가. 지난 응어리와 활기를 모조리 내려놓은 채 망령을 노래하게 되는 것뿐이란 말인가? 정녕 그것이 하드코어의 운명이란 말인가?




그러나 'Off This Century'로 이어지는 클라이맥스까지 끝마친 후 1부를 보내고 나면, 안티-캐피털리즘으로 하여금 사회를 향한 날 선 시각에 의거해, 펑크 밴드로서의 저항 의식마저 포기한 것은 아닌 듯싶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느낄 감정이 일차적으로는 희망일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붙여보겠다.


그 저항을 담아내는 방식에 있어서 그들은 이미 절충과 변혁이란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어그레션과 분노를 부정하는--정확히는 내려놓은--시도를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작품의 이해를 위해, 혹은 그들을 비롯한 문화 전체를 향해 견지해야 할 시선은 낙관이나 안도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회의를 철회해야 하는 지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나는 의구적 태도를 가중할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혼란을 범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저항/비판이라는 본질적 정신과 그 정신의 그릇된 고착화를 타파하기 위한 탈본질적 반발, 혹은 하드코어는 벗어날지라도 펑크를 저버릴 수 없는 최후의 뚝심--어쩌면 양심--사이에서 말이다.


그 처절한 고뇌의 흔적은 여전히 진행될 것이다. 일단 우리에겐 아직 2부가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아지트에서의 수련으로 말미암은 그들의 인고, 그것의 가치를 기대하고 있다. 그것이 대안이라곤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하드코어를 향해 체념하는 것이 아닌, 포스트를 향해 원망하는 것이 아닌, 펑크를 향해 절망하는 것이 아닌 방향에 대해 골몰할 여력이 남아있다. 언와운드는 번뜩이는 담론을 나누기 위한 시공간을 마련했다. 마치 타임캡슐인 것 마냥 그 초대장을 다름 아닌 지금 2020년대의 나와 여러분들이 받았다. 이 부질없는 혼란 속에 기어이 초대에 응한 이유가 이곳에 있길 바란다.


(3)에서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웨이 프롬 더 하드코어 or 비욘드 더 포스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