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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Oct 17. 2022

제주의 엄마 말

엄마라서

말은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더니.  말은 히히힝, 따그닥 말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예쁜 말이었을까? 제주에 오니 내게서 나오는 엄마 말이 바뀌어 간다.

“숙제하지 말고 꽃 보러 가자.”

“오늘은 노을 보이는 서쪽으로 데려가 줄게.”

“날도 따뜻한데 이제 바닷가 가야지.”

“게 잡으러 갈래? 엄마가 알아온 데 있다.”

숙제가 있다고? 아이고, 엄마가 학원을 등록해 버렸구나. 미안해.”


떠나오기 전에 내가 제일 자주 쓰던 엄마 말은 “수고했어.”였다. ‘해야  일을 잊지 않았구나. 수고했어.’, ‘시간 안에  일을 마쳤구나. 수고했어.’, ‘짜증 내지 않느라 노력했구나. 수고했어.’ 얼핏 자식을 인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자식의 수고가 기울여지는 일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면  말의 성격은 어디까지나 이기적이다. 학교 숙제가 밀리지 않도록, 학원 숙제를 완벽히 끝내도록,  와중에도 어린아이가 감정을 다스려 가족 간에 예의마저 갖추도록 요구하는 명령이었으니까 그렇다. 아이가  명령을 하나씩 해낼 때마다, 나는 관리자의 마음으로 ‘수고했어.’라고 마무리 지었다. 아이가 내일도 말을  듣도록 길들이려면 그편이 좋았다.


하루하루 아이를 길들여 가는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학교 친구들과의 학업에서 전반적으로 앞서는 동시에, 신출귀몰한 재능도 하나 갖추고, 가정 내에서는 투정도 짜증도 없이 단정한 어느 아이 하나를 그려놓고 있었겠지. 그러니  그림의 조각 하나가 완성되는  보이면, ‘수고했어.’라고 확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아이를 그림 같은 아이 하나로 길들여 가는 일상이 흔들린 것은, 아이들이 나의 명령을 너무나  해내고부터이다. ‘엄마, 엄마가 바라는 , 시키는 일은  했어요.  다음에는요?’하고 묻는  아이의 표정을 마주했다. ‘ 다음엔?’ 나는 답을 몰랐다. 내가  길들인 아이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미래가 오고 있는지  아이들보다 편견 없는 눈으로 보고 있을까? 아이들의 시간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말들이  입에서 나올 때마다, 말들은  마음을 죄고 숨을 막았다.

 이런 엄마  하겠어.’


다른 엄마가 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학교와 집 사이 자연이 있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장 커다란 세상 두 곳을 오가는 사이 숨돌릴 수 있도록, 선생님도 엄마도 보지 않는 곳에서 소록소록 자기 자신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사방에 산과 물과 초록이 있는 곳이기를 바랬다.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엄마만 쳐다보기 전에 지천에 널린 생명으로 눈 돌릴 수 있도록. 내가 다른 엄마로 살아 볼 수 있는 곳을 직접 보자 마음이 바빴다. 당장 짐을 싸서 제주로 왔다.


제주의 하루는 여명과 지평선이 시작한다. 조명이 켜지는 무대 같다. 나는 아이들을 깨우고 관람을 시작한다. 울창한 나무에 숨은 새들이 짹짹도 아니고 꽥꽥 떠들어 대서 엄마의 아침 잔소리는 끼지도 못한다. 아이들이 걸어 들어간 학교 주변에는 엄마와 아빠들이 출근하러, 커피 마시러, 산책하러 종종종 나타나는데  모습이 꽃망울처럼 조심스럽다. 마을을 둘러싼 왕벚나무들이 아이들의 하루가 시작됐으니 어른들은 - 조용조용 다니라고 타일렀나. 곧, 제주의 자연이 세상에서 가장 값나가는 물감을 들이부은 듯한 의상을 휘감고 사방에서 등장한다. 청명한 하늘 , 흐릿한 바다 , 어두운 오름 , 윤이 나는 귤잎 , 검은  , 일렁이는 비단  .  한번 들이쉬는 것조차 새롭고 찰만큼 풍경이 쏟아진다.  현란함도 오후의 태양이 드세지면 서서히 경계를 흐리다가 잠깐 사이 둔탁한 덩어리가 되어  배경으로 물러난다. 이제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걸어 나온다.  친구를 사귀어 보려고 리저리 바쁘다. 언제는 받아들여지고, 언제는 퉁겨 나온다. 친구 만들기에 실패한 날은  옆으로 와서 바람, 햇빛, 나무, 온도 등을 조용히 감각한다. 걷기 좋은 날인지, 차를   가지고 왔냐고 투정을 부릴지  마음을 흔들어 본다. 그러느라 아이의 상상은 이미 집에 가는 길을 걸어도 보고 차에 실려도 봤다. 상한 마음은  길에서 많이 흘렸나. “엄마, 갈까?” 묻는다. 나는 이제 아이 등을 밀어주는 바람과  마음이 되어 걷는다. 속상하냐는 , 친구한테 이래 보지 그랬냐는 ,  얄미운 친구 옆에는 가지도 말라는  관객 난입은 필요 없다.


아이가 식탁에 앉았다. 학교에서 바짝 살아내느라 아침보다 똥그래진 , 집까지 걸어오느라 살짝 젖은 머리카락을 하고, 내가 차린 간식을 먹느라 자꾸자꾸 입을 벌린다. 오후  시의 태양  아래 자연이 잠시 주춤하다. 이제  아이가 주인공이다. 새벽부터 보았던 가장 좋은 무대로 아이들을 부른다.

“우리 놀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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