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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혁 Jun 23. 2021

욕심일까. 사랑일까.

Chapter 1. 경기의 시작 - 탄생 誕生 [열 번째 이야기]

- 욕심일까. 사랑일까.


 여러 유형의 사랑들 중 부모와 아이 사이의 사랑은 특히 끈끈하고 진하다. 그래서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욕심을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밝은 모습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등의 바람들. 부모님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모습의 크고 작은 욕심들을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사는 것 같다.


 다만 우려할 점은 이 욕심이 과해지면, 아이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는 마음이, 아이를 향한 집착과 강요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있다. 특히 학업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염려를 거둘 수 없다.


 가령, 부모는 ‘내 아이가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무시받을 수도 있으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학업 면에서만큼은 아낌없는 지원을 하며 키워야지.’라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만하다. 그리고 이것은 본인의 분신과도 다름없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자, 배려이자, 헌신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를 기필코 명문대에 진학시켜 사회의 주류로 살게 할 것이다.’와 같은 다짐은 얼핏 보면 위와 비슷하나, 집착이자 강요일 수밖에 없다. 차이는 이렇다. 


 학업 면에서만큼은 아낌없는 지원을 하며 키워야지.’ 
  → 부모의 마음가짐에 따라 노력해야 할 주체 : 부모 
  ‘기필코 명문대에 진학시켜 사회의 주류로 살게 할 것이다.’ 
 → 부모의 마음가짐에 따라 노력해야 할 주체 : 부모, 그리고 자녀


 이게 무슨 문제냐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정말 큰 문제다. 한 사람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 타인의 결심에 따라 바뀐다면, 얼마나 비참해질까. 개인의 결심에 따라 수반되어야 하는 노력은, 오롯이 그 결심을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한다. 그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운다면 즉, 한 사람의 결심으로 다른 사람이 힘들어진다면 그 결심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자녀가 본인보다 윤택한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모가 하는 권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부모의 ‘자녀 소유욕’이 강한 나라가 없고, 심지어는 아이마저 본인이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잦다. 


 부모가 아이에게 은연 중에 반복하여 내비치는 바람에는 욕심이 함유되어 있을 확률이 높고, 어린 아이는 부모가 드러낸 바람을 '내 부모의 기대치', 더 나아가서는 '내 주인의 최소 요구치'로 내재화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가 꿈꾸는 대로 삐뚤빼뚤하게 그려놓은 화살표는 이내 곧게 한 방향만을 바라보게 된다. 



 자신의 부모가 본인이 자라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부모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식은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에 비추어보았을 때 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 얼굴에 침뱉는 격이 될 수도 있고, ‘콩가루집안’이라는 오명을 감수해야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부모를 비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불어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무뎌져버린 어린 시절의 감정을 되새기는 과정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을 낳고 길러준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미화되어 버리는 경향이 짙다. 분명 부모는 사람이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인데, 그 실수들마저 아름답게 묘사된다. 더 치우치면 ‘우리 부모의 그 언행은 마땅히 필요한 것이었다.’ 식의 정당화 과정을 거쳐 감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절대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고 비난하라는 것이 아니다.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아야 하는 첫째 이유는, 현재 스스로가 가지고 사는 모습이 만들어진 곳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자신이 어떠한 영향을 받아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안다면, 단점을 보완하기 쉬워짐은 물론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부모가 미숙했던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미래의 내 아이에게는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물며 길에 기어다니는 벌레들도 진화를 거듭하듯 교육방식도 진화해야 한다. 진화라는 말이 무언가 거창한 것 마냥 느껴질 수 있겠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기존에 내가 물려받은 것들 중 필요한 것을 취하고 부족한 것들을 보완하여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전부이다. 힘들겠지만, 늦지 않았으니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서둘러보시기를 바란다. 조금씩, 조금씩 본인의 과거를 떠올리려 하다 보면, 머릿속에 아무렇게나 널부려져 있던 ‘본인의 모습에 관한 의문’이라는 주제의 퍼즐 조각들이 맞추어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다 맞추어지면 그 퍼즐은 분명 여러분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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