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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혁 May 31. 2021

PROLOGUE 머릿말

이제는, 아이의 말을 들어볼 차례입니다.

 막연히 교육에 관한 글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중고생 시절에도 가끔 했지만, 그것을 굳게 마음먹은 것은 대학교 1학년 가을쯤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동네 바깥으로 던져진 후,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겨우 적응을 마친 어느 시점이었을 겁니다. 거의 모두가 똑똑하고 성실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 안에 속해 있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같이 게으르고 정신머리 없는 놈이 대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는가. 
 지금의 나는 언제,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이 의문이 제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였습니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의문을 해결하려다 보니 예상대로 이 책은 교육서가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최준혁이라고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저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내세울 것 없는 ‘자녀교육 부문 작가’일 겁니다. 평생을 바쳐 교육만을 연구한 박사도, 대치동을 주무르는 일타강사도 아닙니다. 하물며 자식을 보란 듯이 잘 키워낸 부모도 아닙니다. 한낱 스물셋 애송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역으로, 제가 아무것도 아닌 학생이라는 점이 이 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잠깐 제가 만든 이 종이 뭉치의 가치를 자랑해 보겠습니다. 


 교육 현장의 한편에는 가르치는 이(부모, 교사, 강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배우는 이(자녀, 학생)가 있습니다. 여기에 포함된 양편이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만 그것은 교육이라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는 이는 대부분 입을 다물고 배우기만 합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며 본인이 받았던 교육의 양이나 질에 관해 비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체 어떻게 20년이나 맹목의 상태로 목소리조차 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끝에 저는 두 가지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하나, 힘겨움을 마땅한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둘, 교육자에게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학생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힘겨움을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거나,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자세로는 우리나라 교육이 당면한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난 후 어렸을 적 품었던 수많은 불만과 답답함을 잊고 살아가거나, 이 감정들을 상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고통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몫으로 이양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는 대한민국 학생이 느낄 수 있는 애환을 다루었고, 그것들이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담았습니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학생이나 강사들이 써낸 ‘XX일 만에 서울대 보내기’와 같은 부류의 공부법 전수 서적을 자녀교육서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책들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 책들은 '육아'나 '교육'이 아닌 '공부법' 카테고리 아래에 묶여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부와 성적은 교육이라는 범주 아래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자식의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최초의 자녀교육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약 20년 동안 받아온 교육을 돌이켜 보며, '피교육자'의 시선에서, 다양한 교육 형태 -가정 교육, 공교육, 사교육 등- 로 접했던 공부 외적 요소들에 대한 관점까지 이 글에 담아 내려 노력했습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제 이야기를 토대로 글을 풀어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며 내용이 너무 당연하다거나 공허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감정이 서투르게 묘사된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이 내 아이의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공감해 주시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아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군에서 책을 쓰는 2년이라는 시간동안 휴가증을 받아든 날이면 집보다 서점에 먼저 달려갔습니다. ‘혹여 내 주제와 맥을 같이 하는 책이 먼저 나오지는 않았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컸지만,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그토록 얻고 싶었던 ‘가장 내세울 것 없는 자녀교육 부문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군 생활동안 지쳐 널부려진 게으른 놈을 일으켜 책상에 앉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쓰게 한 것이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내기도 버거운 군인이라는 신분에서 책 한 권을 쓴 것은 제게 큰 자랑거리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나를 채찍질했던 나를 견뎌준 스스로에게 칭찬 한 마디를 건네주고 싶은 순간입니다.  


 이 책은 미흡하지만, 
 내가 나의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고, 
 과거의 나를 지금의 기억으로 기록해 본 일기이자, 
 여러분께 드리는 자녀교육 지침서입니다.  

  




1.     경기의 시작 - 탄생 

  태어나서부터 열한 살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못 듣고 못 느낄 것 같은 어린아이도 그들 나름의 생각을 해가며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복기하려 당시의 사진이나 기록물 등을 찾아보았고 부모님과 당시에 대해 대화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며 써 내려갔습니다. 어렸을 때 받은 교육들이 후에 내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려 했고, 집안의 교육법이 내게 잘 기능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또, 그렇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담았습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바르게 생활했던 어린아이의 삶 속 행복과 고통, 그리고 애환을 고루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경기 중 - 탈피 

 가족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열두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가족이라는 보호막을 거추장스러운 허물로 오해하고 벗어던지려 애쓰는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알기 쉽지 않은 아이들의 일탈을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집 안에서 보이는 아이의 모습과, 바깥 세상 속 모습이 얼마나 놀랍도록 다른지 설명했고, 그들의 대문 밖 치열한 일상을 세세하게 정리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를 이해할 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3.     경기 막판 - 성장 

 학생과 부모 모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3년, 열일곱부터 열아홉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중학교 교육과정도 제대로 떼지 못한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한 학습법이나 노하우도 물론 담았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기초 하나 없는 아이’가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책상에 앉아 스스로 하나씩 일구어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평범한 아이가 철이 들고 홀로 서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역할이 중요함을 설명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4.     종료 후 분석 - 훼방 

 1.에서 3. 이 시기를 나누어 전개된다면, 이 장은 어린아이들의 성장에 훼방을 놓는 요소들을 다룬 장입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맹점과,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훼방을 담았습니다. ‘자식을 다른 교육자에게 일임하는 입장’이 아닌, 부모에 의해 누군가에게 맡겨진 ‘아이의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보았습니다. 뒤에서 배움을 지원하는 부모의 입장과 현장에서 배움을 경험하는 아이 입장의 온도 차를 느끼실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어린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어른들이 흐트러지는 상황에서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다 큰 어른들에게는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련의 행동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숲을 보여드렸으니 이제 그 안에 자란 나무들을 감상해주세요. 

 

P.S] 

 참고로 저는 이 책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높임표현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저의 부모님을 존경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교육을 다루는 책 안에서 꼬박꼬박 존칭을 써가며 나의 부모님을 높이다 보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없이 높은 사람이 되어 감히 비판할 수조차 없는 절대자처럼 묘사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책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부모를 예찬하는 글에 불과할 겁니다.

 저는 책을 읽고 난 여러분의 감상이 ‘그래, 결국 부모가 잘 키웠다는 거네.’로 귀결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와 가장 가까운 교육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객관을 포기하면 이 책은 존재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여느 에세이와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제가 이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어제도 침대 위에 엉겨 저와 살을 부비던 이십사 년지기 친구지만, 이 찰나의 순간만큼은 버릇없는 아들이 되렵니다. 두 분은 충분히 이해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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