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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명 Jun 25. 2021

런던의 그리움을 잊지 못하는 이유 #2

수많은 도시 중 왜 런던일까?



#3 영국인


 각 나라에 대한 인상은 현지인들의 태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풍경이었어도, 말도 안 되는 인종차별과 불친절을 경험했다면 최악의 나라로 기억에 남을 것이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던 곳일지라도 현지인들의 미소와 친절함을 마주했다면 다시 가고 싶은 나라로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첫 유럽 도시인 런던에서 아름다운 경관과 내가 애정을 가진 문화, 친절한 사람들까지 함께 경험했으니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울에서 지옥철과 빨리빨리의 지옥에 파묻혀 이리저리 치이던 내가 런던에서 겪은 가장 큰 '컬처쇼크'가 있었다. 바로 "Sorry" 문화였다. 그들은 쏘오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 길거리에서 약간만 스쳐도 쏘리가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놀라며 잇츠 오케이를 말했지만, 몇 번 겪으며 이들만의 입버릇, 문화구나 눈치챈 후에는 나도 그들을 흉내 내고자 노력했다. 이를 유럽 여행하는 내내 입에 붙였더니, 나도 모르게 한국행 비행기의 줄에서 한국인과 스쳤을 때 쏘..까지 튀어나왔던 민망한 기억도 있다.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몇 영국인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영국식 악센트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자연스럽게 스몰 토크를 하는 걸 보니 정말로 서양 국가라는 것이 실감 났다. 기념품으로 산 에코백을 보고 한 할머니가 예쁘다며 어디서 샀냐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기도 했고, 한국 래퍼를 알은 체하며 내 다음 행선지가 암스테르담이라는 것을 듣고 '대마'를 적극 추천하기도 한 레스토랑의 서버도 있었다.


 기차 플랫폼을 잘못 찾아서 길을 물어보던 내게 친절하게 설명해준 영국인도 있었다. 열차에서 좌석 때문에 멘붕이 왔던 나를 먼저 도와주던 할머니의 멋진 "포티 에이트" 발음이 잊히지 않기도 한다.


 마지막까지 런던의 인상을 좋게 만든 것은 한 젠틀맨이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공항으로 가야 했는데, 빅토리아역에서 코치 스테이션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어서 방향치인 나는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때 어떤 남자분이 오더니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대충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는 따라오라고 한 뒤, 나를 스테이션 근처까지 데려다주며 저쪽으로 쭉 따라가면 된다고 알려주고는 쿨하게 사라졌다. 여행 내내 이런 웰커밍하고 젠틀한 영국인들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이 어떻게 남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 아닌가. 그것이 지금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4 문화


 유명한 뮤지션, 영화, 브랜드 등 영국이 "문화 강국"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내가 잊을 수 없는 영국에서 경험한 문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해리포터"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해리포터 소설책을 읽고, '죽음의 성물'의 출시를 손꼽아 기다려 읽고, 영화의 마지막 편까지 영화관에서 챙겨 본 확실한 해리포터 세대다. 주말 내내 날을 잡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주행 하거나, 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까지 아이맥스 3D, 4DX 3D로 챙겨본 '해덕'이기도 하다. 그런 내게 해리포터의 본고장 영국에 가게 됐으니 '해리포터 스튜디오'로 향해야 하는 것은 마치 서울에 오면 남산타워를 가본다는 것 이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부터 미리 예매일을 정해 결제한 후 사진을 마음껏 찍기 위해 함께 갈 동행까지 일찍이 구해놓은 채였다. 당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가는 길까지 철저히 미리 검색해놓고, 당일에 기다리던 그곳으로 향했다. 셔틀버스 티켓부터 나를 설레게 한 스튜디오에서는 본격적인 입장 전 대기할 때부터, 하늘을 나는 자동차부터 해리의 계단 밑 벽장까지 덕후가 벅차오를 수밖에 장식해놓은 곳곳의 포인트를 만날 수 있었다.


 입장한 후에는 잘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귀 기울여 스태프의 설명을 듣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해봤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밖에 없는 체험공간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도 어린이가 된 것 마냥 그 틈에 잘도 끼어 놀았다. 이곳에 오면 반드시 사기로 마음먹었던 기념품들까지 알차게 사모은 채로, 만족스럽게 스튜디오 투어를 종료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있는 테마파크와는 또 다른 디테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다시 영국에 간다면 재방문할 곳 1순위이지 않을까.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 하면 '셜록'을 빼놓을 수 없다. 221B Baker Street. 영드 '셜록 홈즈'를  인상 깊게 본 시청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실제 런던에서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Baker Street'에 내리고, 출구로 나와 우두커니 서 있는 셜록 동상을 마주치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역 이름과 셜록 홈즈 박물관, 바로 만날 수 있는 동상까지. 문화 셀링을 진정으로 잘하는 나라였기에 '문화 강국'으로 자리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당시 셜록홈즈 박물관에 있는 기념품샵에 들리는 것이 내 목표였다. 가서 파이프 담배도 구경했고, 기념품으로 딱 알맞게 아름다운 라이터도 있었지만, 비흡연자인 내 손에 들린 것은 뱃지와 키링, 셜록 다이어리였다. 다이어리는 아직도 내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고, 키링은 대학생 때 들고 다니던 백팩에 달려있으니 꽤나 유용한 기념품을 골랐다는 뿌듯함이 있다. 다음에 가면 꼭 북마크를 종류별로 사야겠다는 욕심을 지니고 있다. 이런 끝없는 기념품 물욕은 덕후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내 기억에 남는 '문화' 중 마지막은 바로 뮤지컬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뮤지컬의 매력을 눈치채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저 런던에 가니 유명한 웨스트엔드를 경험해보고는 와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다른 공연들은 영어 대사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객관적인 판단 하에, 동물을 사랑하는 내게 걸맞고 영화로도 익숙한 '라이온 킹'을 선택했다. 주말 관람이었기 때문에 자리가 없을듯해 한국에서 미리 예매하고 갔다. 동물들이 입장한다는 통로석으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백하자면, "아 그랬냐"로 잘 알려진 'Circle of Life'가 나올 때 약간 눈물이 났다. 런던에서 '라이온 킹'을 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서 벅차올랐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이는 이후에 한국에서 뮤지컬 장르에 스며들게 될 것이라는 운명의 복선이었을 수도 있겠다. 무튼 강렬한 오프닝넘버를 시작으로 뮤지컬은 순식간에 끝났고, 동물들의 생생한 움직임 묘사에 감탄의 연속이었던 나의 웨스트엔드 체험은 만족 그 이상으로 끝났다. 당시에 MD로 있었던 팔찌를 괜히 짐이 될까 구매하지 않았는데, 이를 한국에 온 후로도 내내 아쉬워했다. 2년쯤 후, '라이온 킹' 내한 공연이 왔을 때 동일한 팔찌가 있길래 눈을 반짝이며 냅다 구매해버렸다. 아직까지도 가끔 회사에 착용하고 출근하며 런던을 떠올린다.




#5 다인종


 이전까지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며, 다녀왔던 여행지도 일본이 전부였다. 이런 내가 런던에 가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다인종 도시가 이런 곳이라는 것을 실감해서였다. 물론 관광객도 상당히 많았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서버들이나 그냥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둘러봤을 때 백인, 흑인, 동양인, 아랍계 등 인종이 고루 섞인 것이 눈에 확연하게 보였다.


 런던은 백인보다는 이민자 비율이 훨씬 높은 곳이라고 그저 스쳐 지나가듯 들어보기만 했는데, 실제로 가서 겪어보니 다인종 국가에 있어본 적이 없던 내게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인종으로 유명한 다른 대도시에 갔을 때 겪었던 인종차별도, 런던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다(물론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고, 런던 인종차별 스토리도 수없이 많다). 그 때문인지 나도 나중에 런던에 섞여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상상 내지 환상 같은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구구절절 런던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고 나니, 꽤나 문화 사대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명하자면, 나는 한국의 장점을 자랑스러워하고 단점을 아쉬워하는 다수의 청년 중 하나일 뿐이다. 여행자이자 이방인으로서 한국에 들려본 일이 없으니, 그저 관광객으로서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런던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만 적어나갈 수밖에 없을 따름이다.


 런던의 길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듯이 눈에 재빠르게 담던 풍경들을 기억한다. 잊히지 않을 것만 같던 어떤 순간은 기억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다가 당시 적은 일기들을 풀어헤쳐서야 기억이 났고, 눈이 깜빡인 것 같은 찰나의 순간들이 추억 속에 곧게 뿌리내려 몇 년 동안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글에는 당시 내가 느꼈던 새로움과 아름다움, 비와 구름에 젖은 얼룩진 감상이 고스란히 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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