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한 줌의 고래

3화 한 줌의 고래

by homeross

'한 마리의 고래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한 줌의 흙이 되었다.'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의 무사히 동굴 안으로 귀환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허기와 피로감이 거의 동시에 폭도들처럼 들이닥쳤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 위에 포개져 그저 안도감과 배고픔과 피로감만을 느낀다.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리는 잠자리와 같은 의식을 부여잡고는 감기는 눈꺼풀을 참아내며

비척거리며 침대에서 겨우 몸을 떼인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얼어붙은 음식물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남은 배달음식, 국물만 남은 김치, 말라비틀어진 단무지 조각 말라붙은 반찬들

아무리 둘러봐도 도무지 먹을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라면이라도 끓여 볼까 싶어 냄비를 찾다가 개수대에서 발견했다.

차갑게 식은 어제 먹다 남은 라면 찌꺼기와 함께 말이다.

설거지를 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차라리 굶으면 굶었지 말이다.

배달을 시켜 먹을까 하다가 음식값에 3분의 1 만큼 나오는 배달비를 합치면

내일은 정말 굶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내 포기한다.

재촉하듯 꼬르륵 대는 배와 자꾸 감기는 눈꺼풀에 성화에

개수대에 있는 냄비를 집어 들고는 하수구에 남은 찌꺼기를 버리고

물로 대충 헹궈낸후 물을 올린다.

물을 데우고 있는 가스불이 오늘따라 아름답고 어쩐지 아늑하게 느껴진다.

물이 끓기도 전에 라면 한봉을 넣고는 면이 채 익기도 전에 불을 끄고 냄비채 먹기 시작한다.

후루룩- 라면의 장점은 언제 먹어도 일정한 맛을 보장한다는 점에 있다.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낸 냄비는 또다시 남은 국물과 함께 개수대에 버려진다.

끼니를 때우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진다.

나의 둥지 나의 피난처 따스하고 더러운 그곳에서 나는 씻지도 않은 채 눈을 감고

꿈인지 현실인 모를 세계로 나도 모르게 들어간다.

그곳에서 나는 커 다한 한 마리에 고래였다.

푸르고 깊은 바닷속에서 나는 춤추듯 헤엄치며 자유를 만끽했다.

햇살이 수면 아래로 비추어 따사로웠고 눈앞에는 오로지 푸르고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곳에서 나는 고독하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그저 춤을 추듯 헤엄칠 뿐이었다.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그때 수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수많은 나의 동료 동굴인들이 타고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모두

제멋대로 생긴 작살들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중간관리자'가 그들에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동굴인들은 그 소리에 놀라며 서둘러 나를 향해 작살을 던져대었다.

나는 놀라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려 했지만 수십 개의 작살 중 몇 개의 작살이

내 등과 꼬리를 꾀뚤었다.

나는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질렀다.

동굴인들은 커다란 고래를 해변으로 끌어올리고는

각자의 톱과 망치와 칼로 고래를 조각내었다.

그들은 불을 피우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거대한 사냥감을 사냥한 성취에 들떠있었다.

중간관리자는 더욱 신나 모든 공을 자신의 것으도 돌렸다.

핏빛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오기 전 동굴인들은

토막 낸 조각들을 짊어 지고는 각자의 동굴로 돌아갔다.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기를 수백 번이 지날 동안

나는 뼈만 남아 해변에 버려진 채로 있었다.

고통도 외로움도 더는 남아있지 않은 채로

그 수백 번이 다시 수백 번 지난 후

커다란 고래는 한 줌의 흙이 되었다.

나는 두 번 다시 꿈에서 깨지 않은 채

한 줌의 고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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