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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주 Jun 06. 2021

아이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해요.

대상 영속성과관련된 놀이는 '대인관계'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대상 영속성"은 아기의 인지발달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대상 영속성', 지금 바로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뭔가가 거기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는 겁니다. 대상 영속성이 인지적으로 발달했는지 확인하는 실험은 이런 식으로 진행합니다. 아주 어린 아기에게 엄마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아기가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하면, 아기의 눈을 가립니다. 그럼, 아기는 방금 봤던 엄마의 얼굴이 사라지는 걸 경험합니다. 그러면 아기는 엄마가 사라진 줄 알고 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기가 좀 더 크면, 눈을 가려도 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엄마가 아까 있던 그 자리에 있는 걸 인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대상 영속성은, 엄마가 지금 내 눈 앞에 없지만, 엄마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걸 그냥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상 영속성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하면, 엄마가 지금은 화를 내고 있지만, 따듯한 엄마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그냥 알고 있는 것도 대상 영속성에 포함됩니다.


자, 그럼 갓난아기가 처음 접하는 놀이인 "까꿍 놀이"를 좀 살펴볼게요. 위에서 언급한 실험을 잘 보시면, 실험 자체가 "까꿍 놀이"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렇습니다. 이 "까꿍 놀이"는 놀랍게도, 이 자체가 대상 영속성의 발달을 촉진하는 최초의 놀이입니다! '까꿍 놀이'를 하면, 아기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 잠깐 사라졌다 - (까꿍 소리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이 '까꿍 놀이'를 처음 경험하면, 아기는 엄마 얼굴이 갑자기 사라지면 당황합니다. 어떤 아기는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엄마 얼굴이 다시 나타나면 활짝 웃지요. 이렇게 [엄마 얼굴 있다 - 없다 - 있다] 과정을 아기가 즐겁게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엄마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게 대상 영속성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이 '까꿍 놀이'를 해오고 있다는 겁니다. 참, 오묘하고 유익한 놀이죠.

 

'까꿍 놀이'와 비슷하게, 대상 영속성의 발달을 촉진하는 놀이가 또 있습니다. ‘숨바꼭질’, '보물찾기'가 가장 쉬운 예시가 될 거예요. 나아가, 만국 공통의 연인들이 하는 ‘나 잡아 봐라’는 대상 영속성과 관련된 놀이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놀이입니다. 숨바꼭질과 보물 찾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아마도 거기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기본 전제로 하는 놀이들이죠. 이런 놀이들을 즐겁게 반복하다 보면,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겁니다. 내 친구가 지금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가 찾는 그 친구가 여전히 거기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그러면, 내가 찾는 게 지금 당장 눈 앞에 없어도 딱히 불안하지 않겠죠. 거기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친구와 보물을 찾는 과정이 긴장되기도 하지만 설레기도 하고요. 언제, 어디서,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라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놀이들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대상 영속성의 기본이 되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별로 놀랍지 않게도, 숨바꼭질과 보물찾기 같은 놀이는, '까꿍 놀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는 놀이들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발달심리 수업이나 놀이치료 관련 수업이나 워크숍을 들으면, '까꿍놀이'와 이 놀이의 변형된 형태의 '대상 영속성과 관련된'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 배웁니다. 그리고 실제로 놀이치료를 진행하다 보면, 정말 놀랍게도, 거의 모든 아동이 상담자를 상대로 숨바꼭질을 하고, 장난감을 감춰뒀다가 상담사가 찾도록 유도하는 종류의 놀이를 매우 빈번하게 시도합니다. 그러니까 놀이치료에 참여하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때로는 상담자가 (암묵적으로) 술래가 되는 잡기 놀이를 뜬금없이 시작합니다. 아니, 진짜, 놀이치료 회기 시작할 때 아이들이 그렇게 숨습니다. 그것도 거의 매번 비슷한 장소에 뻔히 보이는 거 이미 아이들이 다 알면서 그렇게 숨고, 상담자가 찾아줄 때까지 키득거리면서 기다립니다. 또는 모래 속에 장난감을 감춰두고 찾는 놀이를 한 시간 내내 또는 몇 회기에 걸쳐 반복하기도 합니다. 어떤 아동은 이런 류의 놀이를,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해가면서 꽤 오래 합니다. 정말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이 놀이를 즐기는 아동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안 하나 싶다가도,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류의 놀이를 하면 할수록, 상담자는 아동과 더 친밀해짐을 느낍니다. 상담자도 이런 류의 놀이가 반복될수록, '이렇게 아동과의 관계의 질이 좋아지는구나'를 경험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사실, 상담자 입장에서 아동이 이런 류의 놀이를 시작하면, '이제는 아동과 쫀쫀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되는구나.' 싶은 감이 옵니다. 이미 이런 놀이의 의미를 수업시간에 배우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어도 관계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진짜 들거든요. 저 만의 착각인가 싶어서, 놀이치료를 하시는 다른 상담자 분들께도 여러 번 여쭤봤는데, 다들 비슷하게들 말씀하시더군요. 그냥 그 놀이가 시작되면, 아동과의 관계에서 느낌이 달라진다고. 


정말, 이런 '대상 영속성' 놀이의 중요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더군요.




그런데, 왜 대상 영속성이 사회성 발달에 왜 중요한 걸까요? 이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드려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내 마음의 비빌 언덕'이 한 개쯤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겠지요? 왜, '비빌 언덕'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해도, 내 편을 들어줄 사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마음을 알아줄, 마음으로는 가까운 사람. 이 '내 마음의 비빌 언덕'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이어져 있는 느낌이 있다는 점에서, 대상 영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상 영속성이 안정적으로 발달한 사람은, 좋은 보호자의 이미지가 마음 깊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게 상처를 줘도 상대방의 선함이 여전히 존재하고 나에 대한 호의도 여전할 거라는 걸 그냥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싸우고 마음이 상해도 화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대상 영속성을 마음 깊이 가질 수 있도록, 까꿍 놀이, 숨바꼭질, 보물찾기 같은 놀이들을 많이 해줘야 하겠죠? 우리 아이가 어느 날 느닷없이 숨기 놀이나 잡기 놀이를 시도한다면, 잡을 듯 말 듯 재미나게 호응해 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부모님께 잡기 놀이, 숨기 놀이, 숨기기 놀이를 시도한다면, 약간은 과장된 말투와 행동으로 아이와 놀아주세요. 설사, 이 아이가 질리도록 이 놀이를 시도한다고 해도, 이 놀이는 많이 하면 좋습니다. "네 곁에 없어도 나는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네 편이다."를 체험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요.

그리고 아마도 이 놀이를 잘하는 아이가, 전반적으로 질 좋은 대인관계를 맺게 될 가능성이 높고, 나아가 연애관계에서 밀당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게 될 겁니다.




덧붙여서, 까꿍 놀이, 숨바꼭질, 보물찾기 놀이와 함께 아이의 대상 영속성 발달에 중요한 게 "애착 인형"입니다. 요즘에는 "애착 인형"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들 알고 계시긴 하지요. 그런데 이 "애착 인형"도 대상 영속성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착 인형"이 아이에겐 어떤 의미로는 애착 대상의 대체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애착 대상은 주 보호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애착 인형은 주 보호자는 아니지만, 주보호가 없을 때에도 주 보호자의 존재를 일부 계승하는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이 됩니다. *참고로, '중간 대상'은 대상관계 이론에서 다뤄지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아무튼! "애착 인형"은 '중간 대상'으로서,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합니다. 꼭 인간형의 인형이 아니어도 되고, 포근하고 부드럽고 들고 다닐 수 있으며, 아이가 좋아하는 거면 다 괜찮습니다. 부디,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이불, 인형을 왜 그렇게 물고 빠냐,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다그치지 마세요. 대신 주기적으로 깨끗하게 세탁해 주세요.

엄마와 아빠가 아이의 마음에 완벽하게 비빌 언덕으로 자리를 잡으면, 더 이상 들고 다니고 물고 빨고 하지 않을 때가 자연스럽게 찾아 올 예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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