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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아 PORA Aug 06. 2021

까만 밤, 빨간 토마토의 시간

조금은 추운 여름 01

  한밤중에 빨간 토마토를 꺼내 삶기 시작했다. 생토마토에는 거부감이 있는 나지만 살짝 익혀서 냉장고에 넣어둔 토마토는 우적우적 시원하게 잘도 먹는다. 새로 산 뽀얀 스테인리스 냄비를 꺼내 물을 적당히 붓고 불 위에 두어 물이 팔팔 끓으면 빨갛고 통통한 토마토를 넣는다. 그리 크지 않은 냄비라 주먹만 한 토마토 네 개가 알맞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파스타 면을 삶을 때 쓰는 구멍이 뚫린 국자로 토마토들을 둥글둥글 굴리다 보니, 이 파스타 국자를 선물해 준 친구가 생각난다.

  이사하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기별도 없이 도착한 택배 박스 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 혼자는 절대 생각지도 못할, 그렇지만 없이 살면 한 번쯤 애를 먹을 것들로만 잔뜩. 예를 들어 와인따개라던가, 지금 쓰고 있는 구멍이 뚫린 국자 같은 것들 말이다. 보낸 사람의 다정함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남아있다. 물건들을 보고 쓸 때마다 친구의 귀여운 얼굴과 밝은 마음의 따스함이 계속해서 되살아난다. 까만 밤, 빨간 토마토와 끓는 물에서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따뜻한 온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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