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추운 여름 01
한밤중에 빨간 토마토를 꺼내 삶기 시작했다. 생토마토에는 거부감이 있는 나지만 살짝 익혀서 냉장고에 넣어둔 토마토는 우적우적 시원하게 잘도 먹는다. 새로 산 뽀얀 스테인리스 냄비를 꺼내 물을 적당히 붓고 불 위에 두어 물이 팔팔 끓으면 빨갛고 통통한 토마토를 넣는다. 그리 크지 않은 냄비라 주먹만 한 토마토 네 개가 알맞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파스타 면을 삶을 때 쓰는 구멍이 뚫린 국자로 토마토들을 둥글둥글 굴리다 보니, 이 파스타 국자를 선물해 준 친구가 생각난다.
이사하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기별도 없이 도착한 택배 박스 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 혼자는 절대 생각지도 못할, 그렇지만 없이 살면 한 번쯤 애를 먹을 것들로만 잔뜩. 예를 들어 와인따개라던가, 지금 쓰고 있는 구멍이 뚫린 국자 같은 것들 말이다. 보낸 사람의 다정함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남아있다. 물건들을 보고 쓸 때마다 친구의 귀여운 얼굴과 밝은 마음의 따스함이 계속해서 되살아난다. 까만 밤, 빨간 토마토와 끓는 물에서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따뜻한 온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