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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수레 Jul 08. 2021

결혼이 뭔지 모를 때 결혼을 했다.

 철저하게 계획된 비혼 주의자로 살고 싶었다. '그냥 결혼하기 싫었어'라는 이유도 멋있지만 누가 왜 결혼 안 해?라고 물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대답할 수 있는 계획된 비혼 주의자 말이다. 어쩌면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다. 결혼을 언제 할 것이냐고 누가 물으면 '안 할 거야'라고 답했고 왜 안 할 거냐고 물으면

내 기준 설득력 있는 대답을 늘어놓았다. 그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두 번 묻지 않았다. 그것이야 말로 내가 계획된 비혼 주의자라는 반증이라고 여기고 살았다. 


 부모님은 내가 열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다투고 싸우고 울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열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싸우다 이혼을 했고, 이혼하고 나서도 종종 약간의 갈등이 없지 않았다. 이혼을 하면 서류상 남남이 되지만 이렇게 장성한 자식이 있는 한 완전한 남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부모님을 보고 알았다. 내 기억의 시작이 열세 살일 뿐이지 어쩌면 그전부터 부모님은 함께 오래갈 수 있는 운명이 아니었을 거다. 다만 그걸 너무 늦게 알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이미 시작한 인생, 살아는 가야 하니 살았을 뿐이지.


그 십 년간 무수히 많은 광경을 보고 겪고 나는 비혼을 다짐했다. 아니 결혼을 내 선택지에 두지 않았다. 서로가 의지가 되지 않는 사이에 평생을 결혼이란 고리에 묶어 사는 것은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혼자 살며 직장생활을 하는 게 분명 즐거웠는데, 결혼을 염두하지 않은 연애를 꾸준히 해왔는데, 외로움이나 괴로움 없는 청춘이었다. 분명. 그런데 결혼은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사주팔자의 하나인지 이제는 함께 하자는 남편 말이 내 괴로웠던 유년기를 씻어 줄 주문인 양 나는 그렇게 홀려버렸다. 


 남편은 나의 10년 지기 대학동창이었다. 스무 살의 치기가 귀엽기만 했고 또래와는 다른 조금은 진지한 그와의 대화가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좋게 보자면 좋은 것만 보이는 게 남녀 사이 아니던가. 그렇게 약간은 애매한 감정을 주고받았지만 우리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남-여 관계로 진전될 기회가 없었다. 다른 이성이 생기고,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그렇게 서로 각자 갈길을 지그재그로 걸어가다 비로소 결혼하지 않으면 우린 이제 다른 이성을 위해 평생 보지 않아야 할 애매할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냥 결혼을 해버렸다. 


 생각했던 대로였다. 결혼을 하니 외롭지 않았다. 심심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생각보다 진지한 사람이 아니었고 중요한 상황에서는 자리를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모여 만든 부부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의 결정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지루하지도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거기다 나에겐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또 다른 부모님 두 분, 나의 형제는 아니지만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또 다른 여동생이 생겼으니 어떻게 심심할 수 있을까. 


 아주 많은 부침이 있었다. 너도 나도 처음이었던 결혼,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와 결혼을 하면 또 다른 내 편이 생긴다고 믿었던 너의 멋모르던 결혼이 순탄할 리 없었다. 신혼 땐 다 그래..라는 글들을 읽고 또 읽고, 주위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그제야 우리 이렇게 조금 살다 이혼하는 거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잠시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지.. 아이를 낳고 나서가 진정한 인생 2막이라는 걸. 


 흔히들 이야기한다. 결혼을 아주 일찍 하거나 아니면 아예 늦게 해야 별 일 없이 "그냥" 살게 된다고. 아주 일찍 한 사람은 멋모르고 결혼해서 결혼이 원래 이렇구나 하고 그럭저럭 참고 살다 보니 시간이 흘렀을 거다. 그리고 비혼도 생각해보고 이혼도 생각해보고 아 정말 이렇게 저렇게 살아도 별거 없구나 하고 살다 뒤늦게 결혼 한 사람들은 어차피 별 거 없어~ 하고 그럭저럭 살게 될 테고 말이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애매한 순간 결혼을 하게 된 나란 사람.. 그래서 아주 오래 방황했다. 오랫동안 생각해왔으니 비혼이 뭔지 알았고, 부모님을 보고 컸으니 이혼이 뭔지 알았지만 결혼만은 뭔지 몰랐던 그때, 결혼이 뭔지 모를 때 결혼을 했다. 


 그렇게 한 결혼이 벌써 10년을 향해 간다.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었던 내 인생 가장 큰 이벤트였던 결혼, 그리고 또 거기서 이어진 임신과 출산, 더 늦기 전에 한번 줄 세워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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