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수레 Mar 24. 2022

시작하는 것에 대한 용기

누구누구 엄마말고 나의 시작.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 지 딱 1년이 지났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때는 출산 후 새롭게 시작하는 '첫' 도전이었기에 모르는 사람 없이 구석구석 소문을 냈었다. 그 결과물이 보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느 만큼 의 가치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다시 용기를 내서 무엇인가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 


임신 12주에 퇴사한 회사생활 이후로 4년 만에 가사, 육아가 아닌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게 처음이었다. 아이는 하나였지만 남편은 출장이 잦았고 항상 바빴다. 육아를 전담하고 집안 대소사를 처리하는 게 5년간 나에게 가장 최우선이기에 다른 걸 시작할 용기도, 여력도 되지 않았었다고 변명해본다. 그러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 갑자기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부재는 내가 무엇이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어딘가에 몰입할 것이 필요했으며 아이가 잠든 후 남은 시간에 약간의 강제성을 갖고 매달려 있을 만한 게 필요했다. 직업적 소명을 갖고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하시는 보육교사님들께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나에게 보육교사 자격증이 최선이었다. 뭐랄까  몇 년간 단절된 경력을 가지고, 밤이고 낮이고 내가 가능한, 이를테면 아이가 잠든 시간 무언가를 이뤄낼 만한 것 중 가장 낮은 장벽을 가진 시작이었달까.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이 재미있어 어쩌다 전자상거래 1세대가 되어 MD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때도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한때는 비혼을 꿈꾸던 비혼러였으니 경력이 단절될 것에 대한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계획이라는 것은 바뀌라고 있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도 이름만 대면 알법한 회사에 8년이나 다녔건만 결혼 앞에서 그리고 임신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이사로 인한 퇴사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보다 50이라도 더 버는 남편을 따라 지방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이름만 대면 알법한 회사에 다닌 덕에 지방에서도 그럴듯한 회사로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임신을 하자마자 내 입덧은 맹렬했고 육아휴직까지 버텨보자니 남편은 다시 취업하면 되지~라는 쉬운 말로 나를 굴복시켰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키우고 몇 년을 돌고 돌아 자격증을 취득하는 1년 6개월 동안 완벽히는 아니지만 나의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거의 사라졌다. 때맞춰 들어야 하는 온라인 강의가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나가면 다시 퀴즈와 토론 과제물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과제를 내고 숨을 고르다 보면 정기시험이 시작되고 그러다 보면 한 계절이 가고 한 학기가 끝나 있었다. 아이는 내 새로운 시작을 축하라도 해주듯 중요한 시기엔 가벼운 병치레도 하지 않았다. 아파도 주말에 잠시 아프고 말고, 중요한 대면 수업 날엔 말끔히 나아 아빠와 시간을 곧잘 보내주었다. 심지어 운명처럼 실습이 모두 끝나는 날 국내에서 코로나 19 첫 확진자가 나왔다. 


그렇게 하늘이 돕는 것처럼 1년 6개월의 과정이 끝나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아직 아이는 어렸고 당장 직업을 갖고자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에 자격증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빠른 시일 내에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일을 없애고자 시작한 일들이 좋은 방향의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격증을 가진 후 채 6개월이 안되어 바로 집 앞 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식으로 따지자면 마지막 회사를 그만둔 지 꽉 채운 5년 만의 일이다. 


오랜만에 시작한 사회생활은 말이 통하는 어른보단 아직 말을 못 하는 아이가 많고 정해진 루틴보다 변수가 많은 직장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새롭게 시작했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었고 내가 다시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게 생활 속 큰 활력소가 되었다. 또 아이 친구의 엄마들이 자격증 취득부터 취직까지 지켜보면서 "대단해요~"라고 칭찬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되었다. " 시작만 하면 어떻게든 되더라구요~ ㅇㅇ엄마도 해봐요!"라고 가볍게 훈수를 두는 것도 즐거웠다. 재미있는 결과라면 그로 인해 동네 친구 몇몇이 내 뒤를 이어 자격증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또 1년간 일하면서 나에게 생긴 변화라면, 어떤 시작도 두려워하지 않는 심리적 한계점이 매우 높아졌다. 예전엔 아이의 기관이 바뀌거나 담임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분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부담스러워 미리 걱정을 하곤 했다. 사실 전업주부의 생활이라는 것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배우거나 수강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접하기 굉장히 어려운 포지션이다. 나도 사회생활을 할 땐 몰랐다. 수 없이 받는 전화통화, 하릴없이 주고받는 거래처와의 대화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사회적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내 감각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어쩌면 가사와 육아로 점철된 몇 년간의 내 생활 속에서 다른 것보다도 새로운 시작을 갈망해왔던 것 같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 남편이 승진하는 것, 새로운 가전제품을 들이는 것보다 더 짜릿한 '나 자신의 새로운 시작' 말이다. 누구든 시작하고 싶은 고민이 있다면 또 훈수를 두고 싶다. "시작하는 용기만 있다면 어떻게든 되더라구요" 라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개인주의자의 엄마 표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