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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Oct 19. 2022

어이 양서방 우리 라이도나 갔다 오지 그래

영국인 장인어른과의 첫 만남

리로이는 내 장인어른이다.

그는 거의 매일 라이도에 간다.

라이도(lido)는 보통 해변가에 딸린 야외 수영장을 뜻하는 단어인데, 영국에선 일반인에게 개방된, 그리고 난방이 전혀 안 된 야외 수영장을 가리키는 조금 더 좁은 의미로 쓰인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채 24시간이 안 된 내게 리로이가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예전에 영국에 가면 리로이가 꼭 한번 날 라이도에 데려 가려할 것이라고 아내가 언질을 준 적이 있었다.

리로이는 그냥 자기가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자는 건데, 나 혼자 괜히 장인어른과 목욕탕에 가서 내 됨됨이를 평가받는, 지극히 한국적인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에헴, 어이 양서방, 우리 저 앞에 가서 때나 좀 밀고 오지."

약간 이런 느낌으로다가.


그날은 영국 날씨 답지 않게 따뜻했고, 비몽사몽이었지만 잠도 깰 겸 쭐래쭐래 따라갔다.

라이도가 있는 햄스티드 히스 공원으로 가는 길에 리로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느 날 직장을 관두고 한국으로 떠난 지 3년 만에 한국인 남편과 손녀를 데리고 귀국한 둘째 딸의 남편인 내게 궁금한 게 많으셨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한국의 문화는 어떤지, 해외생활을 오래 한 내가 동서양 문화 사이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는지.

"아 참고로 말하면 우리 가족은 가벼운 잡담 같은 건 안 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진지한 대화'가 우리 가족의 유일한 대화방식이야."

아내가 귀띔해준 대로 리로이는 날씨가 참 좋다라든지 비행기는 괜찮았냐 등의 예열 과정을 싹 제끼고 바로 본얘기로 들어가셨다.


20대 중후반까지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어딜 가도 그곳의 가치관 평균치에서 한발 벗어나 있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 '다름' 때문에 부모와 갈등이 생기고, 면접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소개팅이 산으로 가고.

따라서 관계를 맺고 사회에 융화되기 위해선 내 일부를 숨기거나, 그게 싫으면 주류를 겉돌 거나, 양자택일의 길로에 선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다르기' 때문에 외국어도 할 줄 아는 것이고, '다르기' 때문에 가족들 보러 영국에 오는 것이고, '다르기' 때문에 순천으로 이사가 주택에 사는 것이라고. 세상사가 다 그렇듯 이 '다름'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내 구미에 맞는 게 있으면 안 맞는 것도 있는, 취사선택이 불가능한 세트메뉴인 것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리로이가 입을 열었다. 자신도 러시안 어머니와 아이리쉬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햄스티드 히스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을 끼고 걷다 보니 어느덧 라이도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선 리로이는 자연스럽게 수영가방 안의 멤버팔찌를 꺼내 창구 안 직원에게 건넸고, 내 입장료를 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여긴 일수. 우리 사위. 내 딸 줄리아 남편. 한국에서 왔어."

안물안궁 표정이 역력한 직원은 억지로 웃으며, 아 그러냐고,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내게 건넸다.


라이도 안 탈의실

탈의실은 벽을 따라 1인 탈의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한국 캠핑장의 샤워실을 연상시켰다.

바닥과 칸막이는 전부 해질 대로 해진, 색이 바랠 대로 바랜 나무로 돼 있었는데, 84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했다.

1938년에 개장하여 84년이란 세월을 견뎌낸 것치곤 굉장히 준수한 상태로 유지돼 있었다.

라이도는 원래 돈 없는 노동자층이 부담 없이 수영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기 위해 지어진 시설물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흘러 이젠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즐기는 북런던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라이도 한쪽 구석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리로이는 주 4-5일 라이도로 출근하는 단골답게 벤치로 가는 길에만 친구 네다섯 명과 인사를 했고, 그들에게 나를 "한국에서 온 사위, 내 딸 줄리아의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Son-in-law(사위)"라는 호칭이 처음이라 굉장히 낯간지러웠지만, 한편으론 정식으로 Murray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았다.


햄스티드 히스 라이도

리로이는 언제 들어갈지 타이밍을 재고 있는 내게 슬며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일수, 물이 꽤 차가울 거야. 무리하지 마. 다들 한 바퀴 하고 나와서 쉬고, 또 한 바퀴 하고 나와서 쉬고, 이런식으로 찔끔찔끔하니까 너도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차가우면 얼마나 차갑길래 몸소 오셔서 언질을 주시나 싶어 가서 발가락을 퐁당 담가보니, 웬걸, 차갑다기보다 거의 뜨겁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드라이아이스에 살갗을 댄 느낌이랄까.

갑자기 이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이 도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참지?

아니, 이걸 '왜' 참지?

여기서 수영을 했다간 자칫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온 지 하루도 안 돼 앓아눕긴 싫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리로이가 물안경끈을 조절하며 물속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민에 빠졌다.

지금 입수 포기를 선언하고 벤치로 돌아가 옷을 입는다면?

그것보다 모양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미 다수의 라이도 단골들이 내 정체를 알고 있고, 저 멀리서 "그래 한국에서 온 리로이 사위가 어느 정도 인물이지 한번 보자꾸나"하며 날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아무도 관심없다).

그렇다면 물에 들어가지 않는 건 내 장인어른 얼굴에 똥칠을 할 뿐만 아니라, 한국사람들은 다 쫄보라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

한국으로 치면 장인어른이랑 목욕탕에 갔는데 탈의실에서 부끄러워 팬티도 못 벗고 쩔쩔매다 목욕탕 밖으로 뛰쳐나가는 셈이다.

그럴 순 없지.

결심했다.

물에 들어가기로.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몇 대 치고, 어깨를 몇 바퀴 휘휘 저어준 후 점프했다.

너무 차가워서 뇌가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얼얼한 정도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은 몸이 물에 닿는 순간 산산조각났다.

너무 차가웠다. 아니, 너무 아팠다.

이 아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미친 듯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한 바퀴는 너무 쫄보 같고, 두 바퀴는 살짝 애매하고, 세 바퀴는 해줘야 '라이도 물맛 좀 봤다'할 수 있을 거 같아 꾸역꾸역 세 바퀴를 완수했다.

물 밖으로 나와 턱을 덜덜 떨어대며 간신히 벤치로 돌아왔다.

옷 입고 15분쯤 기다리니 오늘치 수영루틴을 마친 리로이가 돌아왔다.

"일수,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요."

"ㅋㅋㅋㅋㅋ 물 차갑지?"

"하... 아마 라이도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 같네요."

"ㅋㅋㅋㅋㅋ"

"계속 오다 보면 적응이 되나 봐요?"

"아니, 매번 고통스러워."

"아니 그럼 이걸 왜 하는 거예요?"

"....."

"내가 예전에 캐나다 살 때, 막 이혼하고 어린 딸 둘을 혼자 키우느라 너무 힘들었던 때가 있었거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애들 저녁 챙겨주고 집 근처 호수에 가서 밤수영을 했어. 내 숨소리밖에 안 들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호숫가였지. 물이 너무 차가워서 몸은 고통스러운데, 정신은 깨어나더라고. 수영하는 동안만큼은 일상의 고통을 느낄 새도, 암담한 미래를 걱정할 새도 없이, 그저 얼얼해진 팔다리로 물의 저항을 느낄 뿐이었지. 거의 매일 그렇게 했어. 그게 버릇이 돼서 영국 와서도 계속하고 있네."


장인어른의 예상치 못한 속얘기에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수영장 안에서 어푸어푸하는 저 사람들, 처음엔 도대체 제정신인가 했던 저 사람들에게도 이런 사연이 하나씩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도를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30분 동안 뼛속까지 스며든 추위는 가시질 않았다.

집 앞 카페에 들러 리로이는 카푸치노, 난 핫초코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리로이에게 물었다.

"이런 추위는 또 처음 느껴보네요... 추운 건지 뼈가 아픈 건지... 지금 옷 입고 나온 지 벌써 40분이 넘었는데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네요?"

"ㅋㅋㅋㅋㅋ 맞아... 한참 가... 내일 되면 괜찮을 거야."


핫초코를 홀짝이니 그제야 몸에 온기가 조금 돌기 시작했다.

영국에 있는 동안 라이도를 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지만, 오늘 리로이를 따라 간 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어른과 친해지는 속성코스를 밟은 느낌이랄까.

리로이와 함께한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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