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5년 차, 처음으로 총을 쏴보다
국가는 내 성적지향성(게이)을 인정하지 않으며 내 정체성의 일부를 부정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국가는 나보고 너도 온전한 법적 시민이므로 국가안보를 위해 살인교육을 받으러 오라고 공지했다.
이에 나는 올해 비동원예비군으로서 노고산훈련대(교현예비군훈련장)로 향했다.
내가 예비군을 가는 날이면 항상 비가 온다.
올해 상반기에 주민센터로 예비군을 갔던 날도 비가 왔다.
작년에 동원예비군으로 2박 3일 갔을 때도 비가 왔다.
(그래서 총도 안 쏘고 훈련도 안 했다. 나는 퇴소할 때 만족도 조사에 "이러면 우리 전쟁할 수 있어요?"라고 쓰고 나왔다.)
재작년 2022년에 동원예비군으로 갔을 때도 비가 왔다.
(훈련이 너무 적어서 그때도 퇴소할 때 만족도 조사에 "우리 전쟁할 수 있어요?"라고 쓰고 나왔다.)
나는 예비군 5년 차이지만 올해 처음으로 총을 쐈다.
2020~2021년에는 코로나로 인한 원격교육을 들었고,
2022~2023년에는 비가 와서 사격 훈련을 진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올해는 비가 와도 실내 사격장이 있어서 사격을 실시할 수 있었다.
다른 훈련들은 우천으로 인해 실시되지 않았다.
그 대신, 교관들은 영상교육을 실시하고 배운 내용을 모두 시험으로 출제했다.
그리고 시험 성적을 잘 받으면 예비군들이 조기퇴소를 할 수 있다며 유혹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놈의 시험 만능주의, 성적순 서열주의가 군대까지 침투했다니...
국방부 및 관계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겠다만,
청소년 시절 점수로 너무나도 서열화되던 사회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나에게 거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나는 운이 안 좋게도 분대장으로 걸렸다.
리드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캐리하는 몇 분들이 계셔서 앞에 내세우고 숟가락을 좀 얹었다.
나는 영상교육이 진행될 때면 청소년기 시절 뇌를 가동하여
출제에 매력적인 부분들을 모두 분석하며 되새김질하며 교육을 이수했다.
그렇게 실제 훈련은 받지 않고 지식 훈련만 열심히 했다.
나는 정치 색깔이 진보적이지만, 안보적인 면은 다소 보수적인 편이다.
예비군 갈 때마다 "우리가 과연 전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 온다고 전쟁 안나?
비 온다고 총 안 쏴?
비 온다고 화생방 안 해?
예비군 5년 차에 처음으로 총 쏴보는 게 말이 돼?
성적으로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게 전쟁 준비에 도움이 될까?
대통령은 미필에다가 국정철학도 비전도 생각도 없는 것 같고
남북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예비군 훈련은 이게 뭘까 싶고
심지어 시험/성적 만능주의를 보며
나는 오늘도 극딜을 날리며 쓰디쓴 코웃음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