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에게 가장 큰 숙제이자 고민은 학급 운영이다. 교과 수업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일 년간 함께 지내야 하는 학급을 잘 꾸리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패스한 후, 첫 발령을 받을 때까지 아무도 이걸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시간표에 맞춰 교과별로 한 시간짜리 수업을 완벽하게 준비해 가는 일이 교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어 수업 한 차시를 위해 한 시간을 준비한다고 해도, 보통 6교시까지 있으니 매일 수업 준비로 6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나면 2시 30분, 그때부터 저녁 식사도 거르고 준비한다고 가정할 때, 8시 30분이 되어야 끝난다. 이런 생활을 매일 일주일동안 할 수 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난 초임 때 했다. 매일 저녁 6시, 7시까지 학교에 남아 수업 준비를 했고, 미처 못다 한 것은 집에 싸들고 와서 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최고라고 생각했고 난 최고의 교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오판이었다.
아이들은 교사가 보이는 틈을 귀신같이 안다.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고 학급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진행된 수업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관객 없는 원맨쇼'와 같았다. 아이들은 아무도 듣지 않고, 오히려 수업을 방해하다 보니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첫 해 맡았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큰 이유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나면서 학급을 안정적으로 잘 만드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 건물을 짓는다면 기초공사와 같은 학급 운영의 기틀을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좀 더 탄탄하고 안정적인 학급을 만드는 일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학습은 저절로 된다. 쉽게 말해 면학 분위기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하고, 질서 있게 학교생활을 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수업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아니, 이게 쉬운 사람도 있겠지만 난 이런 걸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정해진 규칙과 틀 안에서 학급을 운영하려면 내가 먼저 그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좀 더 정확하게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걸 어려워하고 벗어나려고 하는 아이들을 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일이 버거웠다. 그냥 좀 내버려 두고 싶었다. 하지만, 한 명이 벗어나기 시작하면 두 명, 세 명으로 늘어나면서 결국 학급의 질서가 무너져 수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걸 처절하게 경험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라 부득불 힘들어도 이 악물고 질서를 잡아나갔다.
이렇게 첫 한 달을 버티면 아이들도 어느 정도 맞춘다. 물론 끝까지 안 맞추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맞춰간다. 이것이 '상생하는 길'이라는 걸 아이들도 안다.
정한 규칙을 일 년 동안 꾸준히 지키도록 교사가 챙겨야 하지만, 규칙 지키는 걸 잘하는 아이들이 많이 도와준다. 이걸 학년이 끝날 때까지 잘 유지하는 교사가 운영하는 학급은 끝까지 질서 있고 차분하게 운영된다.
난 원래 그런 기질이 아니다 보니 학기 말이 되면 아이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수업 중에 우스갯소리를 해서 아이들이 와~~ 웃게 만들어 수업의 흐름을 깨거나, 계속 떠들면서 수업을 방해한다. 주의를 주면 잠깐 조심했다가 또다시 틈을 노린다. 아이들과 관계형성도 되어 있기에 나도 조금 느슨해지다 보니 다시 고민을 한다.
'규칙과 틀 안에 다시 넣어두어야 할까, 조금 어수선하지만 편안하게 해주어야 할까?'
그러다 읽은 책이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였다.
이 책에 작은 사찰에서 있었던 일이 나온다. 작가가 오래된 석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주지 스님은 이야기했다.
"이곳에 있는 석물은 수백 년 이상 된 것들이 대부분이야. 이런 탑을 만들 땐 묘한 틈을 줘야 해.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러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길게 봤을 때,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무너질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기주 작가는 말한다. 틈을 채우고 메우는 것보다 틈을 만드는 일이 어렵다고......
그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건, 내가 틈을 메우는 것보다 만드는 일을 좀 더 쉽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