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돌을 며칠 앞두고 첫 번째 경련을 했다
둘째 임신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첫째 아기가 어떻게 자랄 것인지 늘 두려움 속에 전전긍긍하는데 둘째를 어떻게 낳고 키울까..... 너무 막막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첫째 아이 혼자 자라는 것보다는 동생이 있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도 생겼다. 아마 친정 엄마의 전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여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살림을 맡아서 해주며 큰 아이를 돌보고, 일주일에 세 번씩 버스를 타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녀주는 엄마가 든든한 백이었다.
여름 방학 내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1급 정교사 연수를 무사히 받고 이수했다. 그 와중에 시험 본다고 공부라는 것도 했으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의지력이었다. 3월 초에 둘째 출산 예정이라 3월부터 산휴에 들어갔다가 이어서 다시 육아 휴직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첫아기가 뱃속에서 뇌가 손상되어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의사에게 '둘째가 생기게 되면 둘째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냐'라고 물었다. 답변인 '아니다'였다. 유전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둘째는 정상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답해주었기에 아마 둘째가 생겼을 때 낳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첫아기 임신했을 때 다니던 동네 산부인과로 정기 검진을 다녔다. 첫째 때, 초음파 보면서 태아 뇌에 이상 있는 걸 찾아낸 의사였기에 또다시 그곳으로 갔던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둘째 출산까지 무사히 마쳤다.
2009년 11월, 결혼기념일 전 날이었다. 남편이 케이크를 사들고 와 우린 축하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의 촛불도 껐다. 아이도 좋은지 신났다. 같이 케이크도 먹고 들뜬 기분으로 조금 늦게 잠들었던 것 같다.
평상시처럼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이가 약간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더니 갑자기 몸이 축 늘어지면서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이름을 불렀더니 대답은 하는데 고개가 돌아가 있어선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다.
친정 엄마는 "얘가 왜 이러지?" 하시기만 할 뿐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단 생각은 안 드셨던 것 같다. 내가 부랴부랴 바로 택시를 불러 다니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아이의 고개와 눈동자는 점점 더 한쪽으로 쏠렸다. 응급실에서 접수하고 아이 상태를 얘기했더니 뭔가 심상치 않은 듯 의사들끼리 소통하며 다급하게 움직였고, 바로 주사를 놨다. 한번 맞고도 돌아간 고개와 눈동자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한 대 더 놓았더니 서서히 고개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싶더니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아이는 몇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서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 한 명 붙잡고 물었다.
"아이가 안 깨어나요. 왜 안 깨죠?"
간호사는 기다리라는 대답만 했다.
아이는 다음날이 돼서야 일어났다. 깨어나고 나서도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리더니 또 하루가 지나서야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그게 우리 아이의 첫 번째 경기였다.
만 두 돌을 며칠 남겨두고 아이는 뇌전증 환자가 되었다.
23개월, 경기의 첫 시작이었다.